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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호사K Oct 21. 2023

만나고 헤어지고, 직장 동료들 사이에서 마음의 중심잡기

병원 간호사의 시절 인연


한 과에 오래 있으며 방장을 할 때, 인턴 기간을 독립하기 전에 방에서 트레이닝을 시키며 함께 일한 신규 선생님들이 있었다. 트레이닝 때문에 프리셉터 만큼이나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고 지식과 경험을 전달하며 주고받다보니, 독립한 달에 신규 선생님이 선물을 챙겨주었다. 보통은 프리셉터 선생님께만 소정의 선물과 편지를 써 마음을 전하고, 데이 듀티가 다같이 먹을 간식을 마련해오는 정도다. 그럼에도 잊지 않고 챙겨주는 마음이 고마웠고 또 이렇게 관계를 맺고 이어가고 싶다는 마음의 표현인 것 같아 반가웠다.


그렇게 신규 시절의 희노애락을 함께 겪으며 공감하고 같이 성장해 온 사람들도 시간이 지나면 달라진 모습을 보인다. 어떤 친구는 그래도 여전히 나를 좋아해주고 존중의 태도로 반가이 맞아주는 반면 어떤 친구는 일전에 같이 일한 적도 없는 직장 동료 대하듯 행동한다. 사람이 쓸 수 있는 마음의 범위가 한정되어 있기에, 이제는 그 과의 사람들에게 실력과 인성으로 인정받는 게 중요하니까 그럴 것이라고 이해했다. 일에 치이다 보면 신규 시절 따스히 가르쳐주시며 내게 많은 감동과 고마움을 느끼게 했던 선생님들께 매번 마음을 표할 수도 없는 법이다. 내가 인연을 위해 손을 뻗는 것도, 뻗어진 손을 잡는 것도, 이 두 손이 이어지는 것도 쉽지는 않다.


수술실 내 다른 과로 로테이션하는 아랫연차 선생님과 같이 저녁을 먹고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 선생님이 처음 메이요 상을 싸고 수술상을 차리고 배우던 입사 시절부터 같은 과에서 일하던 친구다. 그간 있었던 크고 작은 고충, 앞으로 생길 변화,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나눴다. 마지막 달까지 같이 일하면서 나름 정이 많이 쌓였는데 총명한 그 친구는 로테이션하자마자 마주쳐도 데면데면하게 행동해 마음 속으로 놀랐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가수 이소라의 가사가 생각났다. 내가 반가워하는 만큼의 추억과 마음이 그 선생님과는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삐 하는 일이 없을 때에도, 그저 이름과 얼굴을 아는 수많은 직장 동료 중 하나로 대하는 모습이 낯설었다.


직장 생활에서 마음을 터놓고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 의지하고 때로 고민과 고충을 나눌 사람이 있는 것이 아주 큰 힘이 되어왔다. 혼자만의 힘으로는 크고 버겁게만 느껴지던 일들도 이야기를 풀다보면 감정의 핵심이 보이고, 지식과 경험의 조언을 얻다보면 실질적인 발전 방향을 알게 되기도 했다. 사회적인 동물로서 감정적 교류를 위해 협력이 필요할 수 밖에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근무표에 따라, 로테이션에 따라, 인사이동에 따라 스치듯 만나고 또 헤어질 것이다. 직장 동료이기에 올 수 밖에 없는 그 한계를 알기에 '그저 지금 함께하는 순간에 충실하고 진심으로 대하기'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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