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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책방 Jan 08. 2020

네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

이철승 <불평등의 세대>


취업하고 싶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는 윗세대들이 움직이는 조직에서 말단으로 잘 살아나가지 못할 거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내 주위 친구들도 그렇다. 조직의 비합리적인 구조는 바뀌지 않고,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 바꿀 수 없어 무기력하게 지내야 하는 것에 회의가 든다고. 


<불평등의 세대>는 한국의 세대를 분류하고, 그 세대의 특징과 특징을 형성한 원인을 제시한다. 그리고 세대 내의 불평등뿐만 아니라 이 사회에는 세대 간에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것을 여러 그래프와 수치화된 자료를 통해 입증한다. 


전후 한국의 산업화를 이끌었으며 그 과정에서 부동산 자산을 마련할 수 있었던 산업화 세대는 나의 조부모가 속해있는 세대이다. 그 아래로 현재 대부분의 기업의 중역에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386세대가 있다. 나의 부모가 속한 세대이다. 그리고 내가 속한 세대인 청년 세대가 있다.   



각 기업 조직이 노령화됨에 따라, 연공제를 고수하고 있는 한국의 기업들은 총 노동비용의 상승 압력에 처했다. 기업의 수뇌부와 중간 관리자까지 장악한 386세대는 어떻게 이 압력에 대처했는가? 기업이 매출과 수익을 통해 그만큼 덩치가 커졌다면 모르겠으나, 다른 조건이 같다면 총인건비를 유지하기 위해 젊은 세대에 대한 신규 채용을 줄일 것이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청년 고용 위기의 한 원인이다. 50대가 늘어난 곳에 줄어든 세대는 40대, 30대, 그리고 20대였다. (237p)  




산업화 세대와 386세대는 동아시아 위계 구조(연차가 쌓일 수록 더 높은 대우를 받는 것)에 의해 사회를 이끌어왔다. 오늘날의 청년 세대는 더이상 이런 구조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우리는 어린 시절에 IMF 위기를 보았고, 사회로 나가기 직전엔 글로벌 금융위기를 보았다. 직장에 들어간다해도 언제까지나 안정적이지는 않음을 배웠다. 대학을 나오지 않은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로 대부분의 청년의 학력은 높아졌다. 기업에서 요구하는 인재상은 덩달아 높아지기만 한다. 여차저차 힘들게 취업을 했는데, 이게 뭔가 싶은 거다.   



나는 직장에 근무해본 적도 없고, 기업에 들어가려 준비한 적도 없다. 내 개인적인 성향 때문이라고 생각해왔다. 개인적인 성향이란 게 따로 떨어져 존재할 수 있었을까.

나를 만든 건 내가 몸 담고 있는 세계다. 내가 하는 말은 내가 만난 사람들이 만들었고, 내가 쓰는 글은 내가 읽은 책들이 만들었다. 내가 하는 생각은 다른 이들의 생각이 담긴 어떤 것들이 만들었다. 내가 하는 행동은 내가 사는 사회가 만들었다.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을 만들고 싶다면 그런 사회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니 우리가 겪는 힘듦은 우리 개인의 탓이 아니다. 취업에 실패하는 친구에게, 직장 생활에서 스트레스 받는 친구에게,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말하고 싶다. 이 모든 어려움은 우리가 잘못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고. 큰 흐름에 나도 너도 모르게 실려오다보니 여기에 온 거라고. 큰 흐름의 각도를 조금만 틀어도 멀리 가서는 방향이 크게 틀어져 있을 테니, 우리가 있는 곳에서 방향키를 조금 틀어보자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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