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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책방 Apr 18. 2020

사랑의 대상

2020. 4. 18. (토)


1.

며칠 걸려서 얼렁뚱땅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온라인에서도 커뮤니티 기능을 하고 싶다고 아주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다.

감염병 탓에 작은 공간에 사람들을 모을 수 없게 되니, 이때야 말로 적기인 것 같다.


기본적인 틀만 손을 봤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이 안와서 책을 사다가 필요한 부분을 따라했다.

레이아웃을 고르고, 버튼 색깔을 바꾸고, 게시판을 만들고, 간판을 달고. 가게를 하나 더 내는 기분이다.

가구를 배치하고, 색을 칠하고, 요리조리 옮겨보고, 간판을 달고 하는 일들이.




가게도 그렇고 홈페이지도 그렇고, 알음알음 주워들은 경험과 검색을 동원해서 스스로 해냈다.

해냈다고 말하니 대단한 일을 성공한 것처럼 들린다.

지금의 나를 가지고서는 내가 생각한 걸 구현하기 어렵다.

능력도, 돈도, 시간도, 에너지도 부족하다. 그러니 어느정도 선에서 타협한다.

이정도면 괜찮다고 내가 나를 위로하면서.


혼자서 최대한 많은 분야의 일을 해내는 게 능력이라고 생각해왔다.

이제는 100%를 해낼 수 없는 능력은 내세울 만한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돈이 더 많으면 내 구상을 100%에 가깝게 실현시켜 줄 수 있는 사람에게 맡길 수 있을까.






2.

가게에 앉아서 하는 일 중 매일 가장 중점적으로 하며, 가장 힘든 일은 사람을 기다리는 일이다.

누가 올 지, 올 지 안 올 지도 모르는 사람을 기다린다.


기다리는 건 약자다. 기다리게 하는 것은 모든 권력의 특권이라고 롤랑 바르트가 말했다.

기다리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라고도 했다.


그러면 내가 사랑하는 건 무엇인가?

오지 않으며 언제 올 지도 모르는 그런 사람들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책을 사러 오는 그들을 사랑하는 걸까.

그들이 지불하고 가는 돈을 사랑하는 걸까.

돈을 사랑한다니. 그런 것도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나.



기다리게 하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서, 어딘가에 나를 기다리는 이가 있는 척을 하기도 한다.

진정으로 기다리는 것보다 초라하고 추하다.

남는 것도 얻는 것도 없다. 갖고 있던 것도 빠져나간다.



나는 앉아있다. 사람들은 밖에서만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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