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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팔남매 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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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모래시계 Oct 21. 2023

62년생 셋째, 현숙

딸부잣집 셋째 딸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데려간다는 셋째 딸 현숙은 팔 남매 중에 가장 말수가 적다. 동네 친구들과도 수줍어 잘 어울리지 않았고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사촌언니가 있는 도시로 내려가 신발공장에 취직했다. 그리고는 바로 손아래 동생 현영과 같이 공장 기숙사에서 지내며 월급날마다 꼬박꼬박 성그렛골 집으로 와 월급봉투를 내밀었다. 


 현숙은 봄이면 주말마다 성그렛골에 와서 엄마의 몸빼바지로 갈아입고 부지런히 벼를 심었고, 여름에는 벼보다 더 잘 자라는 풀들을 땀을 뚝뚝 흘리며 뽑았다. 가을이라 추수가 한창일 때면 밤늦도록 볏단을 날랐고 겨울이면 아랫목에 옹기종기 모인 동생들에게 고구마를 삶아주거나 부침개를 부쳐주었다. 일요일마다 집에 와 동생들을 챙기는 현숙이 아버지와 엄마는 너무 고맙고 예뻤다. 궁색한 살림은 다섯 딸이 도시로 나가 벌어도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아버지와 엄마는 고등학교를 보낼 형편이 되지 않았고, 학력이 짧은 십 대 소녀들의 월급이 얼마나 적을지 알면서도 도시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현숙은 스물한 살에 아랫동네 김 씨의 중매로 도시에서 자신의 목공소를 가지고 있는 곱상한 청년과 두 번 만나고 결혼을 했다. 처음으로 사위가 될 청년이 집에 오는 날 엄마는 솜씨 좋게 국수를 밀고, 양념 잔뜩 넣은 간장과 겉절이로 상을 차려내며 예비사위와 현숙에게 미안했다. 돼지고기 수육이라도 삶을 형편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보기 드문 인물의 예비사위는 칼국수를 세상 맛있게 먹어 엄마를 흐뭇하게 했다. 아버지는 읍내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릴 수 있겠구나 마음이 흡족했다. 더구나 쌀이 많이 난다는 상주에서 예비사위의 집안의 땅을 밟지 않으면 어디에도 갈 수 없다는 식의 중매를 선 김 씨의 말도 한 몫하여 세상 맘에 드는 사위였다. 그러나 중매쟁이의 말은 반은 믿고 반은 믿지 말라는 말은 괜히 생긴게 아니었다.


 상주 땅부자 집으로 시집보낸다는 소문이 성그렛골에 금세 퍼졌고 아버지는 키우던 돼지 한 마리를 잡겠노라 마을 사람들에게 약속했다. 읍내에서 신식 결혼식을 마치고 현숙은 신혼여행을 가는 대신 성그렛골로 돌아와 돼지고기 잔치를 한 번 더 하고 다음날에야 온천으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목공소 방 한 칸에 신혼살림을 차린 현숙이 아기를 가졌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아버지와 엄마는 이것저것 쓸어 담은 보따리를 이고 지고 버스를 세 번 갈아타고 현숙네 목공소를 다녀온 날, 엄마는 머리에 면수건을 질끈 매고 앓아누웠다. 중매를 선 김 씨에게 가서 한바탕 난리를 치고 온 아버지는 소죽을 끓이며 애꿎은 아궁이를 퍽퍽 쳐댔다.


 현숙은 입덧을 하면서도 목공소 인부들 삼시세끼 밥을 다 해대느라 쉬지도 못하고 얼굴이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부인을 얻은 게 아니라 밥 해줄 사람을 얻은 것처럼 곱상한 사위는 현숙 귀한 줄 모르고, 뱃속 아기 귀한 줄도 모르는 숙맥이었다. 그리고 몇 달 후 현숙 배가 남산만 해질 때쯤 아버지는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고 , 현숙은 아기를 가진 몸이라 초상집 어디에도 나타나지 못하고 다락방에 혼자 앉아 눈이 물러 터지도록 울기만 했다. 뱃속 아기를 보여주고 싶었던 현숙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버지는 모든 것을 훌훌 털고 떠나버렸다.


  아기가 자라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현숙은 밤에 몰래 집을 나왔다. 말도 안 되는 의심으로 사람을 못살게 구는 터라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 이혼을 하고, 지하 단칸방을 얻어 재봉틀 일을 시작하며, 열심히 살면 아들도 데리로 올 거라는 믿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지만 현숙 혼자 입에 풀칠하기도 빠듯하였다. 그러던 와중에 들려온 남편의 재혼 소식을 들으며 아들이 혹여 새엄마한테 구박받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자기 아들처럼 잘 키운다는 소식을 듣자 현숙은 신이 자신을 돌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살던 현숙은 몇 년 후에 사촌언니 소개로 만난 두 살 위의 남자와 살림을 차렸다. 호탕하고 씀씀이 큰 두 번째 남편은 현숙을 못 잡아먹어 안달 난 사람처럼 친정식구들이 있거나 말거나 함부로 굴었다. 현숙의 언니들과 동생들은 우리 언니는 저렇게 착한데 어째 저렇게 남자복이 지지리도 없냐고 현숙의 두 번째 사내에게 눈을 흘겼다. 그러나 현숙은 뒤끝 없고 자신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그가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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