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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팔남매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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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모래시계 Oct 21. 2023

73년생 여덟째, 현정

일곱째 아들 현식이 태어났으니 분명 한 명 더 낳으면 아들일 거라고 주변 사람들이 아버지와 엄마를 부추겼다. 그렇게 태어난 여덟째 막내딸 현정. 엄마는 드디어 막내를 낳았다는 안도감에 현정이 딸이어도 서운하지 않았다. 현정이 그저 귀엽고 예뻤다. 위로 여섯 언니와 오빠 하나를 둔 현정은 집에서 꼬마로 불리었다. 현정은 지금도 꼬마로 불린다. 현정은 꼬마라는 호칭에 어울리는 외모와 웃음으로 집안 분위기를 환하게 만들었다. 무엇을 해달라며 떼쓰는 법이 없었다. 다정함을 잘 드러내지 않는 무뚝뚝한 아버지를 현식, 현정 남매만 "아빠"라고 불렀다. 


아래채를 새로 짓자 아버지와 엄마는 위채 안방을 잠시 비워두고 아래채의 방구들을 길들인다며 아들 현식, 막내 현정과 함께 지냈다. 넷째와 다섯째, 여섯째는 윗채 건넌방에서 지냈다. 부지런한 아버지는 새벽에 일어나 위채 건넌방 아궁이에서 소에게 먹일 먹이를 끓였다. 해가 뜨면 아버지는 부지깽이로 방문 살을 드르륵 긁으며 세 자매를 깨웠다. 아랫목이 다시 따뜻해지는 이른 아침에 단잠을 깨기 싫은 언니들은 급기야 현정을 데리고 자겠다며 머리를 굴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현정은 생각이 깊었고 말을 조리 있게 했으며 유난히 깔끔했다. 연탄불이 꺼져 따뜻한 물이 없는 한겨울 어느 날 찬물에 머리를 감아 감기가 들기도 했다.

 

현정은 엄마와 함께 간 국민학교 2학년 가을 소풍을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엄마는 새벽부터 김밥을 넉넉하게 말아 아침상을 차리고 소풍 도시락을 쌌다. 마루에 도란도란 모여 앉아 고소한 김밥을 맘껏 먹었던 아침. 높은 하늘과 마당을 감싸고도는 바람과 활짝 핀 국화꽃송이마다 떨어지는 햇살이 어우러져 더할 나위 없었던 가을날 아침.  엄마는 언니들의 옷만 물려 입는 현정이 못내 맘에 걸렸다. 국민학교 입학식 때도 새 옷을 사입히지 못했다. 그래도 한마디 푸념 없이 신나게 학교를 가던 막내 현정. 엄마는 아들만 항상 챙긴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현정의 소풍길을 따라나선다. 현정은 오늘 처음으로 새 옷을 입었다. 개나리색 멜빵 원피스와 살구색 타이즈와 끈 달린 구두를 신은 현정이 엄마의 손을 꼭 잡고 가을 속으로 걸어간다. 오랜만에 원피스를 차려입은 엄마를 올려다보는 현정의 얼굴을 햇살이 간지럽힌다.


 현정은 대도시 초등학교로 전학했다. 엄마와 두 언니와 현식과 현정은 세를 놓기 위해 날림으로 지은 방 두 칸짜리 월세집에서 살았다. 엄마는 커다란 고무대야에 시골에서 가져온 꽃씨를 심어 집 바깥에 두고 정성껏 키웠다. 한련과 샐비어와 국화가 초라한 집을 환하게 밝혔다. 엄마는 식당에, 넷째, 다섯째 언니는 의류 공장에 다니며 기남과 현식, 현정을 공부시켰다. 현정이 먼저 결혼하고 마지막으로 오빠 현식이 가정을 꾸리기까지 엄마와 언니들의 지극한 보살핌은 계속되었고,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엄마의 팔순 잔치 날. 현정은 남편과 세 아이들을 재촉하여 새벽길을 나섰다. 4시간은 족히 걸리는 친정으로 가는 길이 소풍날처럼 신났다. 팔 남매와 사위, 며느리, 손자 손녀, 손자며느리 손녀사위, 증손자 증손녀까지 쉰 명이 넘는 피붙이들이 함께 모여 엄마의 팔순을 축하하는 자리를 현정은 언니들과 석 달 전부터 준비했더랬다. 


엄마의 건강과 행복을 빌며 축하의 큰절을 모두 함께 올리고,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팔 남매가 엄마 앞에서 <어머님 은혜> 노래를 불렀다. 팔 남매와 함께 제주 바닷가에서 찍은 사진에 ‘엄마 사랑해요’ 글귀를 새겨 넣은 기념패는 손자 손녀들이 한마음으로 전달했다. 


젊은 아빠, 엄마, 언니들과 오빠, 젖먹이 현정이 모두 담긴 가족사진을 현정은 대형액자로 만들어 엄마집 거실에 걸었다. 엄마와 엄마집을 오가는 팔 남매가 그 사진을 보며 옛날을 추억하고 현재를 누리기를 바라는 마음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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