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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수샘의 장이불재 Mar 09. 2024

3월 수업단톡방 소식- '하나의 이모티콘에도 감사하며'

  2024년에 고3 국어 수업을 하게 된 나는 첫 시간에 수업용 오픈 채팅방을 만들었다. 1주일에 5시간을 만나니, 담임 교사처럼 아이들과 친해지고 싶었다. 정보만 전달하지 않고, 담임을 할 때처럼 아이들에게 격려도 해주고 아이들끼리도 우정을 나누는 공간으로 단톡방을 활용하고 싶었다.

  그래서 예전처럼 아이들이 다 들어오고 나서, "가장 귀엽고 멋진 이모티콘을 골라 친구들에게 인사하자"라고 했더니 바로 이모티콘이 착착 올라와서 기분이 좋았다.



  정신없이 수업하고, 학년 초 업무를 처리하니 드디어 금요일이라는 선물을 받았다. 몸은 힘들었지만, 새 학년 첫 주의 수업이 끝나서 너무너무 기분이 좋아진 나는 교무실로 와서  아래처럼 단톡방에 메시지를 날렸다. 방금 설명하고 온 수행평가 계획을 정리한 표와 함께, 그동안 아껴뒀던 드라마 포스터를 패러디한 사진도 올렸다.  


  그리고 조금 욕심이 생겨서 "<303호의 기적>을 함께 만들어갈 친구들에게 '수고했다. 고생 많았다'라는 마음을 담아 각자 이모티콘으로 인사하고 이번 주를 마무리해요~"라는 글도 올렸다. 아이들이 첫날에 서로에게 첫인사를 하는 이모티콘을 날린 것처럼, 다른 이모티콘을 올려줄 것이라는 걸 기대하면서...  



  그랬더니, 한 학급에서 딱 한 명만 이모티콘을 날려주었다.^^; 나는 연구년을 마치고 복귀한 기념으로 새로 이모티콘도 구입했는데, 이모티콘의 '다시 힘내보자'란 말과는 달리 조금 힘이 빠졌다.


  토요일에 침대에 누워 빈둥빈둥하다 핸드폰을 다시 보니까, 현타가 밀물처럼 잔잔하게 밀려왔다. 처음에 패러디 포스터를 그냥 올렸으면 아이들이 더 호기심을 갖고 자세히 볼 텐데, 그 의미를 장황하게 쓴 것은 '교사의 설명병'이 도진 것 같았다.

  서로 격려하는 의미로 이모티콘을 올려달라고 한 것도 부자연스러웠고, '303호의 기적'을 다시 언급한 것도 부담감을 주는 표현이었다. "3개 학급의 학생들이 모인 교실에서 열심히 배우고 익혀서 모두 성적이 오르는 기적을 만들어 보자"라는 의미로 수업 시간에 했던 말을 다시 강조한 것인데, 이것부터 꼰대스러웠다.


  그냥  "고3 첫 주 보내느라 고생했어요. 고3이 대략난감하더라도 안 난감하게 잘 지내봐요~"라고 적고, 패러디 포스터를 올리면 깔끔하지 않았을까? 이렇게 올해 수업 목표 중의 하나가 "말을 줄이자. 욕심을 덜자"로 정해졌다. 그리고 단 하나의 이모티콘에도 감사한 마음을 갖기로 했다.  

  이 말을 하기 위해 말이 길어졌다. 이것도 욕심일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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