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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수샘의 장이불재 Jun 24. 2024

상장은 지친 교사도 춤추게 한다

- 배움의공동체연구회 학기말 모임 후기

  며칠 전 악몽(?)을 꿨다. 학교를 옮기게 되어 전에 근무하던 학교로 다시 돌아가게 되는 상황이었다. 반가운 얼굴들과 다시 인사를 나누면서 가슴 벅차했는데, 어떤 선생님이 "그럼 3월에 봬요." 하고 교무실을 나가는 것이다. 내가 "왜 지금 가세요?" 하고 묻자, 그 선생님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2월 교사 워크숍이 없어진 것 모르셨어요?"라고 또박또박 말했다. 무섭게시리...

 잠에서 깬 나는 꿈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미리 다가올 일을 체험한 것 같아 기분이 이상했다. 내년이면 다시 돌아온 흥덕고도 만기가 되어 떠나야 하고, 용인 만기도 겹쳐서 다른 지역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그런 꿈을 꾼 것일까? 2월 워크숍에서 학교의 교육 철학과 목표를 공유하지 않고, 교과나 학년별로 교육과정과 수업 방식을 논의하지 않은 채 3월 개학을 맞이하는 것은 나에겐 재난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며칠 후 용인 배움의공동체연구회의 1학기 마지막 모임이 있었다. 혁신학교가 생기기 전에 교사들이 각자도생을 하는 동안에도, 학교 밖 교육연구회는 교사들이 서로 신뢰하고 소통하면서 전문성과 자존감을 키울 수 있는 공간이 되어 주었다. 예전보다 참여 숫자는 줄었지만, 올해도 20명 넘게 회원으로 신청했고 모임마다 10명 이상 참여해서 소중한 배움을 나누고 있다. 

  마지막 모임에서는 사토 마나부 교수님이 최근 배움의공동체 전국 세미나에서 강연하신 내용의 일부를 텍스트 삼아서 1학기 수업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 후에는 한 학기 동안 고생한 자신에게 상장을 만들어 선물하며 스스로를 인정하고 응원하는 소소한 이벤트를 했다. 


  이번에는 혁신부장을 할 때 학교 전체 선생님들과 했던 행사를 응용해서 진행했다.  먼저 2024년 1학기 수업에서 자신이 노력한 점을 생각해 보고, 이와 연결되는 <교사 좌우명 카드>를 1~2장을 골라 모둠에서 발표했다. 이어서 2024년 2학기 수업에서 더 노력할 점을 생각해 보고, 이와 연결되는 <자아 선언문 카드>를 골라 역시 모둠에서 이유를 이야기했다. (두 카드는 학토재에서 구입했다.)



  모임 처음에는 굳어있던 표정이 밝아지고 지쳐 보이던 어깨에 생동감이 넘쳐 보였다. 이 정도로 마무리해도 되지만, 상장을 선물로 드리기 위해 미리 출력해 놓은 상장 양식을 나눠드리고 내가 먼저 만들어본 '셀프 시상' 예문을 보여드렸다. 나는 좌우명 카드에서는 '교사는 언제나 자극을 주는 사람이다'를, 자아 선언문 카드에서는 '나는 어떤 일에서도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다'를 골랐는데, 두 카드를 연결해서 하나의 상장 문구를 만들었다. 




  시간이 더 있었다면, 발표를 마친 후에 상장 문구를 모둠에서 한 명씩 같이 만들었을 것 같다. 퇴근 후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모임에 오신 분들이라 욕심을 내지 않고, '상장 이름'만 모둠에서 붙여보라고 말씀드렸다. 한 명씩 상장 문구를 함께 읽으면서, 여기에 어울리는 상장 이름을 함께 고민하는 선생님들의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다. 

  적당한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서 사회를 보는 내게 도움을 요청하는 모둠도 있었지만, 몇 번만 도와드리고 집단지성으로 만들어 보라고 말씀드렸다. 평소 작명과 언어유희가 취미인 나인지라 참기 어려웠지만, 교사의 개입을 최소화해야 학생들의 자발적인 협력 정신과 창의성이 살아난다는 사토 교수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기다렸다. 




  상장 이름을 다 만든 후에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짝꿍 선생님과 번갈아 가며 상장 문구를 읽고 시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상장 문구는 선생님들이 추구했던 가치와 만나고 싶은 자신이 모습이 모두 들어있었다. '주체적으로 권태를 탈출할 상, 배움의 씨앗 뿌릴 상, 바위처럼 당신은 항상'과 같은 상을 받으며 '기쁨과 행복 그 이상'을 느꼈을 것 같다. 나중에 낯선 학교로 옮기더라도 동료 선생님, 학생들과 상장을 만들어 서로에게 선물하는 시간은 꼭 가져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미 어두워진 학교 밖으로 향하면서, 선생님들은 학생들과도 해보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이런 모습을 다시 꿈에서 만난다면, 그 꿈 속에는 오랫동안 머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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