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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요나 Aug 30. 2017

택시운전사의 흔적을 따라 떠나는 광주여행

나의 5.18 문화 답사기

가을을 마중하는 비가 억세게 내리고 난 계절의 한가온에는 어느 덧 가을바람이 불어온다. 이른 피서객들이 더위를 피해 떠나갔던 2017년 8월의 극장가에는 여름이면 공식처럼 상영되던 공포물과 블록버스터 대작 대신, 장 훈 감독의 ‘택시 운전사’라는 휴먼 드라마가 영화 상영 3주만에 천만 관객 돌파라는 기록적인 관객몰이를 하고 있었다.

1980년 5월 낯선 독일인을 태우고 광주로 향했던 한 서울 택시기사의 실화를 담은 이 영화는 송강호, 유해진, 류준열과 토마스 크레취만의 혼신을 다 한 연기로 5.18 광주민주항쟁의 한 복판에서 진실을 전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전해주고 있다.

광주광역시는 동쪽은 담양군, 서쪽은 함평군, 남쪽은 나주시, 화순군, 북쪽은 장성군과 접하고 있는 동서남북 교통의 요충지이자, 호남지방의 행정, 군사,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지로써 행정 및 기업관리기능이 집중되어 있는 대한민국에서 여섯 번째로 큰 대도시이다.

우리에게 ‘빛고을’이라는 이름으로 친숙한 광주는 1896년(고종 32년)에 전남의 도청소재지가 되었고 1949년에 광주시로 승격되었다.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볼 수 있었던 시민항쟁의 중심지가 바로 옛 전라남도청 앞의 금남로와 충장로 일대이다. 서울에서 광주까지 1980년대의 광주로, 우리가 몰랐던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있는 그 길을 좇아서 여행을 떠나보자.


광주의 첫 관문, 광주송정역
 
목포가 종착역인 호남선 열차는 용산역을 기점으로 출발한다. 그 중에서도 광주행 KTX는 인천공항과 서울역에서 출발하여 용산역에 집결하였다가 광명역, 천안아산역, 공주역, 익산역을 거쳐서 광주송정역에 도착하게 된다.

송정리역은 호남선에서 경전선이 분기하는 철도 교통의 요지이며, 광주, 영광, 나주에 이르는 세 방면의 국도가 집중하여 도로 교통이 편리한 까닭에 해방 전부터 남도의 물산을 북쪽의 신의주에 수송하는 등 산업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1950년대 이후에는 공군 비행장과 군사장교 교육시설인 ‘상무대’의 관문으로도 유명했으나 상무대는 1995년 전라남도 장성으로 이전되었고, 그 자리에는 광주시청 등 여러 관공서가 들어섰다.

열차를 타고 광주송정역에 도착하면 역사 건너편에 자리 한 작은 ‘송정시장’을 마주하게 된다. 오랜 전통시장을 재단장하여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송정시장에는 밥집과 찻집, 국수집 등의 요깃거리 외에도 추억의 정취가 물씬 나는 교복집과 흑백사진관이 자리하고 있어서 주머니가 가벼운 관광객들이 허기를 때우고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기에 제격인 곳이다.

광주송정역은 광주시내와 떨어진 외곽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금남로를 가기 위해서는 대중교통을 이용해야한다. 광주송정역사에서 바로 연결되어 있는 지하철역에서 문화전당 방향 지하철을 타면 송정공원-공항-김대중컨벤션센터-상무-운전-쌍촌-화정-농성-돌고개-양동시장-금남로5가-금남로4가-문화전당역(종점)에 도착하게 된다.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가 사진을 찍던 전일빌딩
 
금남로4가에서 내려 지하상가를 따라 걸어 나가면 유명한 ‘전일빌딩’이 37년 전의 모습 그대로 눈앞에 나타난다. 1971년 광주 최초의 민영방송으로 개국한 '전일방송'의 사옥이었던 전일빌딩은 1980년 당시 광주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었으며, 도청이 가장 잘 보이는 장소였기 때문에 시민군과 계엄군간에 치열한 사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영화 ‘택시 운전사’에서 독일인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가 빌딩 옥상에 숨어서 사진을 찍고 송강호가 긴 생머리 소녀가 나누어 준 주먹밥을 먹던 바로 그 빌딩이다. 전일 빌딩 옆쪽으로는 영화에서 편파와 거짓방송을 일삼다 시민들의 분노에 의해 불타올랐던 MBC 건물이 복원되어 있다.

1971년 광주에서 개국되었던 첫 거대한 전일빌딩이 벗겨진 페인트 자국과 깨진 유리창들이 곳곳에 남아있는 채로, 세월의 흔적을 숨김없이 내보이며 여전히 금남로 중심에 서있다는 것은 무엇을 상징하고 있을까.

1980년 5월 21일 전남대와 도청 앞에서 계엄군은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 발포를 시작했다. 공수부대원들은 전일 빌딩 등에 4인 1조로 올라가 조준사격을 가했고 무고한 시민들이 무참히 죽어갔다.

잊지 말아야 할 것과 잊히지 않는 것들을 감싸 안고 속으로 견디는 도시 광주, 이 광주의 첫 인상을 늙고 부서진 회색 빌딩이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학생들의 결의에 찬 집결지 도청 앞 분수대
 
전일빌딩 맞은편에는 YMCA 건물이 있다. 분홍색 촌색시처럼 울긋불긋한 그림이 그려진 YMCA 빌딩도 영화 속에서 사람들이 구호를 외치며 지나치던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YMCA 빌딩을 지나서 횡단보도를 건너가면 옛 전남도청과 그 중앙의 분수대가 보인다.

1980년 5월 15일 광주에서는 대학생 3만여 명이 전남도청 앞에 모여 학생 대표 정동년이 시국선언문을 낭독하고 시가지 가두행진을 벌였다. 학생 지도부는 학생들에게 휴교령이 내릴 경우 16일 오전 10시 학교 정문 앞에 모여 시위를 벌인 뒤, 정오에 ‘도청 앞 분수대’로 집결하라는 방침을 전달했다.

민주항쟁의 한 복판에서 꽃 같은 학생들과 서슬 퍼런 계엄군의 팽팽한 대치를 남김없이 지켜보았던 분수는, 세월이 흘러 낡고 녹이 슬었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왕관 모양의 물줄기를 빚어 올리며 고풍스러운 멋을 풍겨내고 있었다.

5월 18일 아침 9시 텔레비전 방송과 라디오, 신문을 통해 비상계엄령이 전국으로 확대되고 학생들의 교문 출입을 저지하자, 전남대학교 학생 100여 명은 출입을 막는 공수부대원에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공수부대 측에 부상자가 발생하자 분개한 공수부대원들은 학생들을 구타했다.

전남대 학생들은 금남로로 이동하여 가톨릭회관에 집결해 시위를 했다. 이에 경찰은 최루탄을 발사하며 해산을 시도했다. 5월 18일 오후 4시 신군부는 제7공수여단을 광주 시내에 투입했다. 제7공수여단은 곤봉과 대검으로 학생과 일반 시민을 가리지 않고 살상했다. 학살은 어디에서든 일어났다.

부상자와 사상자들은 근처에 있는 적십자병원과 상무관으로 옮겨졌다. 끝없이 밀려드는 사망자들의 시신이 안치되었던 상무관은 원래 군인들의 체력단력을 위해 지어진 체육관 건물이었다.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가 아버지의 영정을 들고 있는 어린 소년의 사진을 찍었던 곳이 바로 상무관시신안치소이다.

5월 20일을 전후하여 일본에 머무르던 많은 외신 기자들이 한국에 들어왔지만,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의 사진들이 가장 먼저 전 세계에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학살극의 끔찍한 현실을 알려주었다.

광주의 상징 무등산을 오르는 1187번 버스
 
영화 '택시 운전사’에서 광주 택시 운전사인 유해진의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무등 상회’라는 가게가 있다.

80년대에는 광주 일대 학교마다 걸어서 소풍을 다녔다는 무등산을 지금은 시내에서 1187번 버스를 타면 편히 오를 수 있다. 해발 1,187M인 무등산의 높이에서 번호를 따왔다는 무등산 순환버스는 광천동에서 출발하여 광주역과 금남로를 거쳐 무등산 국립공원 입구 주차장까지 올라간다.


소형 마트와 80년대 당시 모양을 한 양옥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길을 예쁜 그림으로 꾸며진 버스를 타고 올라가다보면 어느 새 녹음이 우거진 산자락을 굽이굽이 돌아 무등산 전망대에 이르게 된다. 평화롭기 그지없는 광주 시내를 굽어보는 산복도로에는 가는 길목마다 ‘무등산 옛길’이라고 적혀있는 작은 표지판들이 나무들 틈새의 좁은 등산로를 알려주고 있어, 시대의 변화와 편리함을 그만큼 실감케 한다.

무등산 정상의 입석대와 서석대의 풍경을 바라보며 4수원지(저수지)를 지나면 원효사 종점에 도착한다. 이곳부터는 차량은 올라갈 수 없기 때문에 등산로를 통해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다. 원효사 입구는 무등산장이라 부르는 계곡의 끝자락에 있어, 여름이면 광주인근의 피서객들이 피서는 즐기는 명소로 이름나있다.

국립공원 지정 후 주변 상점들의 호객 행위와 바가지요금, 편의 시설, 계곡물의 수질에도 관리를 하고 있어서 가족들과 지인들과 함께 무등산의 절경과 정취를 즐기기에 알맞은 곳이다.
 

광주 5.18 기념문화센터
 
광주의 518번 버스는 상무지구에서 5.18 기념문화센터로 가는 버스이다. 상무지구(尙武地區)는 1990년대 이후 서구 상무동과 치평동 일대에 조성된 대규모의 계획도시로, 과거 상무대가 있었으나 현재는 동구에 있던 시청과 공공기관들이 상무지구로 이전하면서, 시정의 중심이자 신흥 소비유흥중심지로 자리 잡게 되었다.

옛 상무대 부지였던 곳에는 5.18자유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5.18 기념문화센터 내부에는 5.18자료실과 공연, 행사시설을 갖춘 5·18기념문화관과 시민군 조각상, 추모 공간 등으로 구성된 5.18현황조각 및 추모승화공간이 마련되어 있고, 5.18 민주 항쟁 당시 희생 된 시민들의 정신을 도청 분수대를 중심으로 상징적으로 나타낸, 원형 분수공간을 갖춘 대동광장이 있다.
공원에는 5.18 민주화운동 학생기념탑과 광주학생 교육문화회관이 있으며, 공원 정상에는 전망대 역할을 하는 3층 누각인 오월대가 있다. 그밖에도 사찰인 무각사와 잔디광장, 산책로 등이 있어 5.18 민주 항쟁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뜻깊은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Asia Culture  Center. ACC)
 
광주시청이 상무지구로 이전한 뒤, 광주의 옛 도심인 충장로와 금남로는 많이 침체되었다. 슬픈 역사와 황폐한 유적들만 남기고 광주의 도심이 통째로 빠져나간 느낌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광주시민들은 비탄만이 가득할 것 같은 역사의 현장을 과거와 미래가 함께하는 아름다운 문화의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충장로에 있는 옛 전남도청을 뒤로 돌아가면 드넓은 잔디로 이루어진 하늘정원과 빛을 반사하는 거대한 전시관과 각종 조형물들이 조화롭게 설치되어 있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Asia Culture Center)에 이르게 된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복합형 공연장과 전시관, 체험관과 공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주요시설의 90%가 지하에 있고, 지상에는 녹지를 조성한 구조로 되어 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가슴 아픈 역사의 흔적위에 새 시대를 향한 문화의 장을 열기로 공약하고, 광주광역시를 문화 수도로 만들겠다는 의지로 2008년 4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공사를 착공하였다. 원래 계획에서는 구 전라남도청 별관을 철거할 예정이었으나,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관련 단체가 반발하여 일부를 보존하는 방향으로 계획이 바뀌면서 2014년 10월에 전당 건물이 완공되었다. 현재도 옛 도청 건물을 보존하려는 시민단체의 서명 운동이 계속 되고 있다.
 


오늘, 2017년의 광주
 
‘택시 운전사’에는 조용필의 ‘단발머리’, 샌드 패블스의 ‘나 어떡해’, 혜은이의 ‘제3 한강교’ 세 곡의 노래가 나온다. 굳이 감독이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영화를 본 관객들은 이 노래들의 상징적인 의미에 대해 혼자만의 생각을 했을 것이다.

신이 나서 ‘단발머리’ 노래를 부르며 광주로 내려온 송강호에게 주먹밥을 주었던 긴머리 여학생, 류준열이 다정하고 상냥했던 네가 이럴 수 있나를 생목 놓아 부른 ‘나 어떡해’에 이어서, 다시 광주로 차를 돌리며 울먹이던 택시 운전사 김사복이 부르는 ‘제3 한강교’에 대해 배우 송강호는 '이 밤이 새면은 첫차를 타고 행복어린 거리로 떠나 갈거에요'라는 '제3한강교'의 가사가 광주 시민들이 바라는 '행복어린 거리'를 연상케 하여 극적인 감정을 맞출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영화 ‘택시 운전사’는 내가 아니었기에 남의 일로 치부했던 37년 전의 이야기를 꺼내어 2017년의 관객들 앞에 펼쳐 놓고 담담한 제 3자의 눈으로 그 날의 광주를 보여준다. 그리고 짧은 단상들을 던진다.

우리처럼 평범하고 우리처럼 밥을 먹고 우리처럼 농담을 하던 그 광주 사람들이 왜 그렇게 죽어갔을까. 그들이 목숨 걸고 지키려고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광주에서 빠져나오기 급급했던 택시 운전사인가. 다시 광주로 되돌아간 파란 눈의 외국인인가.


시내버스를 타고 광주를 돌다보면 어김없이 만나게 되는 5.18기념비들은 단순히 역사적인 슬픔을 넘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광주가 부여한 커다란 의미와 의무를 생각하게 한다.

빛처럼 그렇게 영원히 남아있을 광주와 광주시민들의 정신을 기리며, 1980년의 5월이 생생히 살아 숨 쉬고 있는 나의 광주 문화 답사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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