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전 후 히피정신이 계승되던 1970년대와 신문화 시대가 대두되던 80년대에는 텔레비전 방송에서도 공공연히 담배를 피웠다. 연속극 출연자들은 심각한 장면에서 늘 담배를 피워 물었고, 외국에서는 생방송 토크쇼를 담배를 피우면서 진행하기도 했다.
그 시절에는 놀랍게도 기차와 고속버스에도 좌석 팔걸이마다 작은 재떨이가 부착되어 있었다. 현실에서도 세련되고 멋진 여성들은 대개 담배를 피웠다. 이런 여성들이 담배를 꺼내 물면 얼른 라이터로 불을 붙여 주는 것 또한 젠틀맨의 상징이었다.
사회의 산업화와 현대화가 가속되고 여성의 지위가 높아지면서 남녀평등의 대표적인 현상이 여성의 흡연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어불성설이다. 우리가 어릴 때는 할머니들도 담배를 많이 피우셨다. 버스정류장이나 시장 앞에서는 보따리를 잠시 내려놓고 담뱃불을 댕겨 무시는 할머니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조선 초기에는 양반하인 구분이 없이 맞담배를 피웠고, 여자가 남자보다 담배를 더 많이 피웠다. 당시 여성들은 시집갈 때 자신이 사용하던 담뱃대를 싸갔으며, 양가의 마님들은 나들이를 할 때 항상 담뱃대와 담배쌈지를 든 전담 여종(연비)를 뒤따르게 했다.
만약 누가 담배를 피우면서 날씬하게 사는 것과 담배를 끊고 뚱뚱하게 사는 것 중 한 가지를 고르라고 한다면, 난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대답할 자신이 있다. 난 날씬한 흡연녀로 살겠오. 그것도 아주 잘.
언제부터인가 살이 찐 여성은 극혐의 대상이 되어서 본인이 원치도 않고 관심이 없어도 메갈, 김치녀, 쿵쾅이들 같은 외모비하의 대상이 되었다. 무엇보다 요즘 모든 미디어에서는 다이어트를 권장한다. 아니, 권장의 수준을 넘어 뼈말라 몸매를 추앙하는 극단의 다이어트를 강요한다.
그놈의 연예인들은 어찌나 순식간에 살도 잘 빼고, 방송에는 나오지도 않는데 어디서 돈을 벌어 그렇게들 잘 사는지, 몇 십억, 몇 백억 하는 연예인들 집 구경, 해외여행기,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처절하기 까지 한 예능과 먹방들을 보고나면, 나만 당장 하와이행 비행기 표를 끊지도 못하고 10대 맛 집의 설탕과 버터가 줄줄 흐르는 맛난 빵도 먹지 못하는 패배자가 된 기분에, 냄새나고 후두암의 원인이 되는 담배를 다시금 피워 물게 되는 것이다.
불과 10여년 사이에 대한민국 사람들의 흡연에 대한 태도는 극적으로 바뀌었다. 카페 테이블 마다 서비스용 담배가 셋팅 되어 있고 앙증맞은 디자인이 손길을 끄는 성냥갑들을 수집하던 시절을 생각해보면 담벼락에 숨어서조차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된 작금의 현실은 그야말로 천지가 개벽하듯이 상상조차 못했던 흡연자들의 죽음의 시대인 것이 분명하다.
대한민국에서는 2015년부터 실내흡연을 할 수 없다. 이로 인해 현재 대한민국의 모든 공공장소와 대형건물에서는 금연법이 시행되고 있으며, 커피점과 식당들도 금연으로 운영되고 있다.
거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허가 된 장소 외에서의 흡연은 엄격히 금지되고 있다. 담배 한 갑은 4,500원으로 대책 없이 올랐고, 그 담뱃값 중 65%는 온전히 세금으로 바쳐진다. 아메리카노 한잔보다 더 비싼 돈을 세금으로 바쳐가면서 산 담배이건만, 세금 많이 낸다는 칭찬은커녕 수형소의 재소자마냥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숨어서 피워야 하는 흡연자의 입장에서는 억울한 마음도 들 것이다.
이탈리아는 이미 2005년부터 실내흡연을 전면 금지하는 강력한 금연법 시행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탈리아인들은 금연법을 도입한 정부의 정책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지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한 술집주인은 “가게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갱단 조직원들에게 밖에 나가 피워달라고 요구했다가는 총알 세례를 받을 것”이라고 현실적인 고충을 토로했다.
반면 세계적인 친환경국가 스위스는 유럽에서 ‘친담배정책’을 펴는 나라로 유명하다. 국민 흡연률도 헝가리, 그리스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담뱃값도 비교적 싸다. 이런 우호적인 환경 때문에 주요 다국적 담배회사들은 본사를 스위스로 옮겨가고 있다.
누구는 흡연을 가해와 이기의 극치라고 하며, 누군가는 금연을 집단이기주의와 피해망상의 발현이라고 말한다. “담배를 피워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의 깊은 한숨을 알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다. 이 순간에도 담배 연기를 뿜어내는 의지박약한 인간들이 폐암과 구강암과 식도암과 기타 등등 거의 모든 종양덩어리들의 위협과 함께 그보다 더 지독한 금연가들의 공격에 시달리면서도 그 한 번의 깊은 한숨을 놓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담배에는 니코틴과 각종 화학물의 합성 작용보다 더 강한 삶의 고뇌가 들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분명한 것은 아무리 담뱃값을 올린다 해도 사람들은 여전히 담배를 피울 것이며, 그 소득은 모두 정부로 돌아가 사람들에게 더 비싼 담배를 팔게 할 것이다. 여지는 없다. 금연인가, 끽연인가.
가끔 피우는 담배가 인생의 깊은 한숨을 대신한다.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못한다면 내게 담배를 허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