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y Orbison, in dream
어제 정기상담 때 의사선생님이 내 목도리가 어디꺼냐고 물었다. “자라예요. 색깔만 다른게 네개있어요." 그러자 선생님은 과하지 않아요? 라고 하셨다. 비슷하게 생긴 팬티나 양말이 네개씩 있는 것은 과하지 않고? 같은 스타일의 티셔츠와 청바지가 네벌씩 있는 것은 과하지 않고?
극한직업을 서른번넘게 보았다. 과하다.
좋아하는 노래를 수십번 듣는것은 고막에 과하고, 좋아하는 영화를 오십번이상 보는 것은 안구에게 가혹하다.
언제는 안젤로 바달라멘티의 음악에 감동하고 데이빗 린치를 천재라고 부르며, 오마쥬 하기를 찬양하듯 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그따위 고리타분하고 저질같은 영화는 보지 않는다.
이제는 망할 마블 코믹스 주인공들의 징그러운 분장이나 형사와 깡패와 신부가 삼합일체로 나오는 시시껄렁한 코미디 영화나, 수준높은 클래식과 전문가(어느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욕도 많이 먹고!)에 의해 엄선된 째즈아니면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며 방탄소년단을 들어야한다.
선택이 없어졌다. 함께 감동도 없어졌다. 감성팔이라는 말이 쉽게 나올만큼 음악도 영화도 후져졌다.
암튼, 무지무지 오래간만에 로이 오비슨의음악을 들었다. 고질들은 모르는 고리타분하고 저질이고 잔혹했던 시대에서 살아남은 영화와 음악들을 언제까지 지켜볼수 있을까. In Dre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