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 시대의 남녀 사랑법
코로나 19가 옛 영화 <지붕 위의 기병(Le Hussard de sur le toit)>에 대한 추억을 일깨워줬다. 1995년에 제작된 프랑스 영화 <지붕 위의 기병)>은 콜레라에 점령된 한 도시, 프로방스의 마노스크(Manosque)를 탈출하는 한 귀부인과 기병 장교의 러브스토리를 다루고 있다. 전염을 막기 위해 요즘 말로 록 다운(도시 폐쇄)이 된 지역을 벗어나는 이야기다. 코로나 팬데믹의 당시에도 록 다운이 선포되면 도시 외곽을 군인들이 봉쇄하고 탈주자들을 처형했다.
마노스크는 이 영화의 실제 촬영지였고, 이 영화 스토리를 가능하게 한 소설가 장 지오노(Jean Giono․1895~1970)가 태어나고 돌아간 곳이다.
장 지오노가 태어난 1895년은 마침 영화가 탄생한 해였다. 뤼미에르(Lumiere) 형제가 파리 그랑카페의 지하 인디안 살롱에서 10여 편의 활동사진을 최초로 상영했던 때가 1895년 12월 28일이다.
<지붕 위의 기병>은 바로 이 두 가지 사실, 즉 영화 탄생 100주년과 장 지오노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프랑스 정부가 대대적인 후원을 하고 예술계가 입체적인 지원과 프로모션을 하면서 만든 영화다. 프랑스 국립오케스트라가 처음으로 영화 음악의 녹음에 참가했고, 제작비에만 4천만 달러가 들어갔다.
1832년 콜레라가 창궐한 프랑스를 배경으로 하기에, 마노스크 역시 콜레라에 휩싸인 도시로 나온다. 마노스크의 건물과 거리 모두 세트장으로 변했으며 엑스트라가 1만 명 이상 동원되었다. 실제로도 마노스크는 1720년과 1834년에 발생한 전염병으로 인구가 급격히 감소했던 적이 있다. 영화에서 남주인공(올리비에 마르티네즈 Olivier Martinez)이 우물에 독을 푸는 것으로 오해를 사서 쫓겨 도망 다니는 지붕들은 바로 마노스크의 집과 지붕들이다.
이 영화의 장 폴 라프노(Jean-Paul Rappeneau․1932~) 감독은 장 지오노의 소설을 처음 읽고 이를 영화로 만들겠다는 꿈으로 영화감독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34세에 영화감독이 되었고, <지붕 위의 기병>을 감독한 때가 63세였다. 그는 “내 꿈을 영화로 만드는 데 이렇게 많은 세월이 걸릴 줄은 몰랐다”고 소회를 남겼다. 그래도 그는 자신의 소망을 이룬 사람이다. 환갑이 넘어서도 자신의 꿈을 여전히 추구하고 또 이를 실현해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는가.
영화 <지붕 위의 기병>은 프랑스 정부의 대대적인 프로모션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성공을 하지 못했다. 우리나라 영화관에서도 그리 길게 상영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프랑스 후작부인 유부녀(쥴리엣 비노쉬 Juliette Binoche 분)와 젊고 잘생긴 이태리 총각 기병의 로맨스가 아름답게 부각되지만, 주된 배경이 콜레라로 초토화된 마을이라서 풍광부터가 칙칙하고 매력적이지 않다. 아름다운 프로방스의 전원 풍경을 기대했건만 오로지 영화 전편에 가득한 죽음의 그림자가 관객들을 우울하게 만들었던 탓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붕 위의 기병>이 가지는 그 서사성과 여운은 마노스크를 항상 특별한 마을로 기억하게 만든다.
"남자란 어떤 동물인가"를 알려주는 영화 속 몇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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뽈린느: 나이가 어떻게 되죠?
앙젤로: 스물 다섯입니다.
뽈린느: 어리군요.
앙젤로: (군대식으로 딱딱하게 인사를 하며) 빵과 홍차 고마웠습니다. 그럼 이만. 안녕히 계십시오.
뽈린느: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앙젤로: 모욕을 받으면 참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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뽈린느: 나 혼자서 갈 수 없다고 생각하나요?
앙젤로: 여자 혼자 콜레라가 들끓는 지역을 다니게 할 순 없죠.
뽈린느: 내가 거절해도?
앙젤로: 남자로서의 내 의무입니다.
뽈린느: (말없이 힐뜻 쳐다보고 말 안장에다 짐을 꾸린다)
앙젤로: 난 그런 사람입니다. 그렇게 자랐다구요.
***
뽈린느: 왜죠? 왜 나와 함께 있는 거죠? 난 어쩌면 콜레라에 걸렸을지도 모르고 심지어 당신 망토를 덮고 자기까지 했는데...
앙젤로: 콜레라는 날 피해갑니다.
뽈린느: 언제나 그렇게 냉철한가요?
앙젤로: 최선을 다하는 것 뿐이에요.
아, 남자란........
코로나 팬데믹 시대, 남녀의 사랑도 이 정도의 위험은 감수해야 하지 않나 싶다. 요즘 이런 남자들이 있을까 싶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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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상상을 해본다. 코로나 19로 폐쇄된 도시에서 탈출하려 한다. 그 때 한 미모의 여성기병이 짠 나타나 나를 구출해간다. 아, 꿈 깨자.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