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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중해 홀릭 Aug 22. 2021

스타 셰프 앙드레는 왜 식당 앞에 올리브 나무를 심었나

나도 짚 앞에 올리브 나무를 심고 싶다

'최고의 레스토랑'을 선정하는 리스트가 해마다 여기저기서 발표된다. 국가마다 혹은 도시마다 발표하는 어워드도 수없이 많으나 세계인이 공통적으로 신뢰하는 기준은 그리 많지 않다. 이탈리아 프리미엄 탄산수로 유명한 산펠레그리노(SanPellegrino)와 역시 유명 호텔과 레스토랑에서 판매하는 샘물 아쿠아파나(Acqua Panna)의 후원으로 매년 최고의 레스토랑 50곳을 발표하는 ‘월드50 베스트 레스토랑’ 어워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빠른 시간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레스토랑 평가다.


이로부터 파생된 것이 태국에서 발표하고 있는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아시아를 인도 대륙, 동남아 남부 및 북부, 홍콩·대만·마카오, 중국 본토와 한국, 일본 등 6개 구역으로 구분하고 구역별로 50여 명의 전문 평가단이 투표해 50곳의 레스토랑을 선정한다. 


이 상이 배출한 스타 셰프는 3년 연속 1위를 차지한 방콕 '가간' 레스토랑의 셰프 가간 아난드(Gaggan Anand). 인도 콜카타 출신의 그는 2010년 12월에 이 레스토랑을 개업했는데, 셰프의 뿌리이자 고향인 인도의 스트리트 푸드에 분자요리 기술을 접목해 조리한 혁신적인 25개 코스 요리를 8,000바트(약 32만 원)에 제공하며 신선한 충격을 줬다. 이 요리는 전체 코스를 2시간 내에 먹어야 하는데 한 요리당 먹는 데 주어진 시간은 평균 5분꼴이다. 그중 22개 코스는 손으로 먹어야 한다. 


아난드 셰프의 분자요리.


맛의 밸런스를 위한 기준으로 그는 5가지 ‘S’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단맛(Sweet), 신맛(Sour), 짠맛(Salty), 향신료(Spice), 그리고 놀라움(Surprise)이다. '가간'의 메뉴판에는 글이 없다. 그저 아무런 글자 없이 25개의 이모지(디지털 그림문자)만 나열돼 있을 따름이다.  이에 대해 그는 "각 이모지는 해당 요리에 대한 느낌이랄까, 해당 요리를 정서적으로 표현한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자신이 3회 연속 1위를 차지한 '힘'에 대해 "간단하다. 요리와 서비스에 대한 혁신. 그리고 가식적이거나 허세 부리지 않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런데 그는 2019년 8월에 미슐랭 별점 2개의 레스토랑이기도 한 '가간'의 문을 돌연 닫았다. 동업자와의 갈등이 악화된 것이 폐점의 이유로 알려졌다. 당시 41세였던 가간은 "인생에서 허리케인이나 태풍처럼 계획하지 않은 갑작스러운 일들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면 감당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인스타그램에 고객들을 위한 사과글로 "피곤하지만 웃고, 울고 있다. 나는 그냥 사람일 뿐이다. 41세의 나이가 돼서 배운 가장 중요한 교훈은 아무도 뒤에 남기지 말라는 교훈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아시아 베스트 50' 레스토랑 어워드에서 3회 연속 1위를 수상한 가간 아난드 셰프.

 

그러나 그는 그해 11월 1일 그의 이름 전체를 그대로 사용한 '가간 아난드'라는 레스토랑을 다시 개업했다.이 새 레스토랑에선 저녁 식사 손님을 하루에 단 40명만 받고 있는데, 2021년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평가에서 5위로 새롭게 진입했다.      


그의 말은 새길 부분이 많다. 나만의 요리를 만들고자 하는 젊은 셰프에게 그는 "명예를 추구하며 달리지 말고 요리를 하라. ‘요리’가 진짜 영웅이지 ‘셰프’가 영웅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라. 손님들이 영웅을 결정하도록 하라"고 조언한다.


그런데 내가 정작 주목하는 셰프는 가간 아난드가 아니라,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평가에서 2위를 한 앙드레 지앙 셰프다. 1976년 대만에서 태어난 안드레는 일본에서 어렸을 때 어머니에게서 요리에 눈을 뜨고 15살에 프랑스로 이주하여 본격적으로 요리에 세계에 발을 딛기 시작햤다. 


앙드레는 아시아 셰프들 중에 가장 많은 미슐랭 가이드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신이라고 얘기할 정도로 많은 미슐랭 가이드북을 프랑스에 살 때부터 모아왔다. 미슐랭 가이드북을 모으면서 그는 언젠가 이 책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결국 꿈을 이루었다. 그의 레스토랑은 미슐랭 2스타다.


그가 프랑스에서 일했던 레전드 급의 식당은 다음과 같다. 모두 1-3개 미슐랭 스타의 레스토랑이다.


● Pierre Gagnaire (3-Michelin Star), Paris 

● L’Atelier de Joel Robuchon (1-Michelin Star), Paris 

● L’Astrance (3-Michelin Star), Paris 

● La Maison Troisgros (3-Michelin Star), Roanne 

● Le Jardin des Sens (2-Michelin Star), Montpellier 


그는 남부 프랑스 몽펠리에의 레스토랑 '르 자르뎅 데 상'을 시작으로 15년 동안 일하면서 얻은 깨우침에 대해 그는 "레스토랑마다 다양한 영향을 받았다. '르 자르뎅 데 상'에서는 재료에 눈을 뜨며 남부 프랑스 문화, 자발적으로 메뉴를 생산하는 법을 배웠고, '피에르 가니에르'에서는 창조,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법, 가능성에 대해 배웠다. '라틀리에 드 조엘 로부숑'은 일관성, 기준, 체계화를, '라 메종트루아그로스'는 한 접시에 5가지 식재료라는 규칙을 알려줬다."라고 회고한다.


그는 그렇게 프랑스에서 17년의 세월을 보내고 싱가포르로 돌아와 자이나타운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레스토랑 앙드레'를 오픈했다.


레스토랑 앙드레 주방에서의 앙드레.


 '레스토랑 앙드레'는 2010년 오픈 이후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1회부터 5위에 랭크되며 이후 6, 4, 3위를 거쳐 2019년  2위에 올라섰다. 이후 그는 싱가포르의 '빈초' '번트 엔즈', 파리의 '포르테12', 타이베이의 '로(RAW)' 등 다양한 레스토랑을 오픈하며 멈추지 않는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다.


앙드레 지앙


앙드레 지앙의 요리

그러면 나는 이 셰프를 왜 주목하고 왜 좋아하게 됐을까. 간단하다. 그의 레스토랑 앞에 올리브 나무가 심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남부 유럽에서는 지천으로 깔린 것이 올리브 나무고, 매우 흔하지만 남부를 벗어나면 일단 올리브 나무를 볼 수 없다. 자랄 수 있는 기후와 토양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파리에도, 로마에도 올리브 나무를 조경으로 키우는 레스토랑은 없다. 그런데 앙드레의 레스토랑에는 맨 앞에 올리브 나무가 떡하니 자리하고 있다.


레스토랑 앙드레와 올리브 나무


앙드레는 이 올리브 나무를 어떻게 구했을까. 그는 단지 식당 앞에 올리브 나무를 놓기 위해 이 나무를 남부 프랑스에서 공수해왔다. 올리브 나무 값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아마 이를 가져오는 데 들어간 돈이 나무 값보다 더 컸을 것이었다. 여간 정성이 아니고서는, 올리브 나무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앙드레와 그의 식당에 대해서는 2020년 다큐멘터리 영화로도 만들어져 '넷플릭스'에서 개봉됐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도 왜 그가 올리브 나무에 집착하는지에 대해선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그가 프랑스에서 요리를 배운 첫 레스토랑  '르 자르뎅 데 상'이 남부의 몽펠리에였다는 사실, 이 식당의 셰프 자크 (jacques) 밑에서 바닥부터 시작해서 주방장까지 9년 동안 근무했었으며, 앙드레가 그를 아버지처럼 생각한다는 사실로 미루어 짐작할 따름이다.


아마도 앙드레는 올리브 나무를 요리의 초심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그 초심을 잃지 않고 항상 각성하기 위해 식당 앞에 올리브 나무를 심어놓은 것이 아닐까? 어쩌면 그는 어린 시절 호된 요리 수업으로 힘들 때마다 올리브 나무를 바라보며 위안을 얻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남부 프랑스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 그리고 교훈의 결정체가 바로 올리브 나무 아니었을까?


올리브 나무 앞의 앙드레


남부 프랑스 카뉴 쉬르 메르(Cagnes-sur-Mer)의 르느아르(Auguste Renoir, 1841-1919) 박물관은 지중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에 자리하고 있다. 르느아르의 집은 매우 넓은 정원을 가지고 있는데, 입구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이 커다란 올리브 나무숲이다. 넓이가 3헥타르(약 9,100 평)이므로 정원이라기보다는 거의 들판 수준이다. 하나 같이 우람하고 수령이 오래되어 보인다. 나는 두 차례나 이 곳을 방문했다. 그 때마다 올리브 나무 정원이 너무 좋았고, 너무 탐이 났다. 그런 올리브 나무들과 살아간다면, 올리브 나무처럼 평생 건강하고 올곧은 정신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았다.


르느아르 박물관의 넓은 정원의 커다란 올리브 나무들 사이로 관광객들이 걸어가고 있다.


앙드레 식당 앞의 올리브 나무는 아주 작다. 르느아르 정원의 올리브 나무와 비교하면 거의 분재 수준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땅에 심은 것이 아니라, 커다란 목재 화분에 심었기 때문이다. 습하고 비가 많이 내리는 싱가포르에서 올리브 나무는 자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특별 관리를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앙드레도 앞에서 언급한 셰프 가간처럼 2018년 레스토랑 7번째 생일날에 갑자기 폐점을 선언한다. 아울러 미슐랭 2스타와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2위의 지위를 반납하기로 결정한다. 그런데 그 이유가 참 심플하다.

"왜 하필 지금이지? 왜냐하면 지금이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앙드레는 2018년 발렌타인 데이에 마지막 점심으로 직원들에게 대만식 소고기 국수를 만들어 주는데, 이 국수는 주방 직원들이 번갈아 가면서 서로를 위해 요리를 해줄 때 가장 좋아했던 음식이다.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 시사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좋은 일이 끝을 맺는다고 해서 그것이 덜 좋게 되는 것은 아니다. 흘러가는대로 놓아도 후회할 것은 없다.


파티가 한창일 때 떠나는 걸 선택하는 일이 돈키호테 식의 결정이라고 할 필요는 없다. 단지 생각할 것은 그것을 원하냐 하는 것뿐이다. 성공의 진정한 척도는 다른 사람의 기준으로 얼마나 잘했느냐가 아니라, 스스로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었느냐 하는 것이다. 앙드레는 자신만의 방식과 선택이 확고했을 따름이다.


앙드레의 요리들


앙드레는 도전하는 젊은 셰프들에게 다음같은 말을 내놓았다.

“누구나 자신의 요리와 레스토랑이 오래도록 사랑받길 원할 것이다. 그렇다면 퀴진(Cuisine), 창의력(Creativity), 일관성(Consistency), 이 ‘3C’를 기억하라. 퀴진은 역사와 문화다. 어디서도 비롯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요리만 배울 것이 아니라 시간을 가지고 역사와 문화도 배워라. 사람들이 어떻게 먹는지, 무엇을 즐기는지, 어떻게 변화하는지도 지켜봐야 한다. 창의력은 퀴진을 매우 깊이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예를 들어 감자 요리를 10번 했다면 어떻게 조리할지 매우 제한적으로밖에 모르는 상태다. 하지만 10년간 매일 요리한다면 그 결과는 엄청나게 달라진다. 시간을 가지고 연습하라. 일관성은 연습이다. 역시 시간을 필요로 한다. 한곳에서 충분한 기간을 두고 일하며 그곳 문화와 사람들, 재료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 역시 첫 직장에서 9년을 일했고,  '레스토랑 앙드레'의 헤드 셰프와 수석 셰프도 함께 일한 것이 13년, 9년째다. 모든 것이 시간을 필요로 한다.”


흘러가는 시간의 대명사, 그것은 바로 올리브 나무다.

타이페이 교외에 있는 앙드레 집의 키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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