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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중해 홀릭 Feb 21. 2021

일본 삿포로(札幌)
지명은 어디서 왔을까?

우리 지명도 원래 뜻 없애고 마음대로 뜯어고쳤듯 삿포로도 그랬다


일본 삿포로만큼 황당한 한자어 지명 표기도 없다. 삿포로의 명칭은 한자로 札幌, 우리말로 읽으면 '찰황'이다. 편지 찰(札), 휘장 황(幌)이다. 이 표기에는 어떠한 역사적 맥락도 담겨져 있지 않아 삭막하다. 삿포로는 원래의 지명을 어떻게 하고 이렇게 무미건조한 단어로 표기되었을까.
 

삿포로는 겨울의 눈축제로 유명하다
삿포로의 관광 명소인  옛 시청 건물의 겨울 풍경


에도시대 전기만해도 삿포로는 발음 그대로 'しゃっほろ'라고 표기되었다. 그러다가 에도시대 중기가 되면 외래어를 표기하는 가타카나를 사용해 'サッホロ'라고 표기했다. 지금처럼 '札幌'이라고 표기한 것은 메이지 시대부터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폐번치현(廃藩置県)에 의한 중앙정부의 권한과 기능 강화와 함께 행정구역을 일체 정비하고 홋카이도(北海道) 지방을 본격 개척해 진출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원주민인 아이누(アイヌ) 족을 탄압, 학살하는 한편 그들의 색깔을 지우기 위해, 음독으로 '사쓰(さつ)'로 읽는 札자와, 음독으로 '호로(ほろ)'라고 읽는 幌자를 인위적으로 붙여서, 즉 아예 다른 표기를 만들어 지명으로 사용한 것이다.


1902년 촬영한 아이누족 모습.
북해도 시라오이(白老)에 있는 아이누 민족박물관 입구


삿포로는 아이누어 '삿포로페시('サッホロペ'シ)'에서 왔는데, '삿(サッ)'이 '마른', '호로(ホロ)'가 '큰', '페시(ペ'シ)'가 '강'의 뜻이라고 한다. 따라서 삿포로는 '마르고 큰 강', 즉 넓은 평야라는 의미였다. 그런데 이런 본뜻을 깡끄리 없애고, 아무런 의미도 남아 있지 않게 황량하기 짝이 없는 札幌으로 바꾸어버렸다.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이 아름다운 의미가 담겨 있는 우리 지명을 자기네 멋대로 바꾸어버린 것은 바로 홋카이도를 강제로 점령해 아이누 족의 정기와 색채를 없애버린 일본의 이런 정책이 그대로 이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경희대 강효백 교수에 의하면 삿포로가 우리말 '샛별'에서 온 것이란 일본 전문가의 말을 들었다고 한다. 홋카이도 또한 과거 발해의 영토였으므로, 아이누어에는 한반도에서 건너간 말이 많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말을 하면 또 '국뽕'이라고 힐난할지 모르겠지만, 이런 해석도 일리가 있다고 보인다.


일각에서는 삿포로가 신라의 옛 이름인 '서라벌(徐羅伐)'에서 온 것이란 학설도 제기한다. '徐羅伐'은 '해'나 '동쪽'을 뜻하는 '서라'와 '도읍지'를 뜻하는 '벌'이 합쳐진 차음인데, 삿포로는 서라벌을 어원으로 해서 ㄹ촉음화 양성모음화 현상이 일어나, 오늘날 삿포로가 됐다는 것이다. 즉 [서라+벌] →  섣+벌 → 삳볼  → 삳포르로 변했다는 주장이다.


전통을 지키고 있는 현대의 아이누 족
2012년 아칸호(阿寒湖)에 문을 연 아이누 민속공연장 「이코로(イコロ)」. '이코로'는 아이누 말로 '보물'이라는 뜻이다.


우리 민족처럼 '곰 숭배', 즉 곰 토템인 홋카이도 아이누족과 한반도 관련설은 오래전부터 많은 이야기가 있어서 새삼스런 것은 아니다. 나도 아주 옛적부터 아이누족에 관심이 많아서, 홋카이도의 아이누족 흔적을 찾아다녔던 적도 있었다. 그러다가 매우 오랜 기간 잊고 있었는데,  다시 안에서 불씨가 살포시 지펴 올라왔다. 그래서 이렇게 뜬금없이 삿포로의 어원에 대해 지루하고 긴 글을 썼다. 사람들이 별로 궁금해하지도 않는 이야기일텐데 말이다. 이 불씨가 홋카이도 아이누족에 대한 본격 탐구로 이어질지, 아니면 그저 호기심 차원에서 그칠지 나 스스로도 궁금하다.

아이누족은 한민족처럼 곰 숭배, 즉 곰 토템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마을마다 곰 조각을 세워놓은 곳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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