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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누스토리 Jun 07. 2020

관우, 소금 때문에 재물신이 되다.

 중국이나 대만 그 밖에 중화권에 여행을 하던 중 사당에 가면 삼국지의 관우상이 모셔져있다. 유명한 장수이니 만큼 무술을 하는 사람이나 군인과 관련된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뜻밖에도 중국인들이 재물복을 빌기 위해 찾는다고 한다. 관우가 큰돈을 벌었다는 내용은 삼국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는데 무장인 관우는 어떻게 재물신이 되었을까?

관우의 고향은 산서성 (山西省) 하동이다. 오늘날 그곳을 가게 되면 관우를 기리는 거대한 동상이 있는데 관우가 죽을 때의 나이 숫자인 61m 높이에, 고향에서 살았던 기간인 숫자인 19m의 동상 받침이 있다. 관우상이 내려다보는 곳에 해지(解池)라고 불리는, 중국에서 가장 큰 소금호수가 있다.

중국은 한나라 시절, 전매제도로 철저하게 국가에서 가격을 통제하였다. 내륙지역인 산서성은 소금이 귀하였기에 소금산업은 큰 이권이 되었다. 대체할 수 없는 생필품의 가격통제는 사회가 혼란스러울 때 더욱 문제가 발생을 하고 암시장이 생겨나게 된다. 민간 전승에 따르면 소금 밀무역에 관우도 관여를 하였는데, 폭리를 탐한 소금 상인을 죽이고(다른 기록으로는 탐관오리를 죽였다고도 한다) 고향을 떠나, 유비, 장비를 만나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삼국지를 통해 관우는 신의와 용맹을 상징하는 인물로 된다. 이로 인해 재물을 지켜주는 무신의 이미지와, 신의가 있어 사업을 번창하게 해준다는 신격화 현상이 일어난다. 산서성의 소금장수들은 장사를 떠나면서 행선지마다 관우신상(神像)을 짊어지고 다녔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중국 전역으로 퍼지게 되고 지금도 화교가 아시아는 물론 세계 곳곳에 정착을 할 때 관제묘가 세워지고 많은 중국인이 재물복을 빌기 위해 관우 사당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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