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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현 Sep 08. 2018

사랑니를 빼고서

보이지 않는 영원




사랑니를 빼고서 



 사랑니를 빼고서 난 누워있었지. 울진 않았어. 사랑을 시작하는 나이에 나온다던 녀석이 발치되어 누워있는 꼴을 보자니 이젠 사랑은 다 끝났나 싶긴 했지. 그래, 그게 슬피 울만한 일은 아니잖아. 그런데 등 뒤로 비가 오듯이 땀이 흐르고 볼이 퉁퉁 부어서는 뭐가 불만인지도 모른 채, 나는 왜 지나간 시간들을 생각했을까. 사랑니가 자리 잡고 있던 그 빈자리에 무언가 채워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 하지만 그것이 지나간 시간들로만 채워진다면 그것 또한 씁쓸하겠네. 


 마취가 시작되고 입안이 먹먹해지고 나서 끈질긴 기억들과의 전쟁이 시작되었어. 내 스스로 일으킨 것은 아니었지만 나 또한 꽤나 치열했어. 떠나가지 말라고 붙잡고 있던 신경들마저 툭툭 떨어지고 나서야 뿌리까지 뽑힌 사랑니를 보게 되었지. 


“제 손가락 물지는 마시구요”

 친절한 의사는 나에게 말했어. 나는 왜 그녀의 손가락을 물어야했을까. 무의식적이었겠지만 놓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을 거야 분명히. 사람들은 나의 턱을 붙잡고 이상한 기구들을 입에 넣으며 ‘나오고 있습니다. 다 나왔고요.’라며 나를 안심시켰어. 누워서 옴짝달싹도 못하고 있던 나는 그 말들을 믿진 않았어. 언제나 그들은 아프지 않을 거라고 이야기 했거든. 어릴 적부터 치과에선 ‘아프지 않다’고 이야기 했지만 난 정말 아팠거든. 그래서 치과에 가기 무서웠던 거야. 


 누군가 내 입가에 묻은 피들을 닦아내고 나서 그들은 위쪽 사랑니를 뽑아내기 시작했어. 지독한 녀석들은 쉽게 나오지 않았어. 얼마나 깊게 뿌리박혀있던 거야 너란 녀석은. 그렇게 꼭꼭 숨어서 나를 괴롭혀왔지 스스로를 사랑이라 말하면서 말이야. 하지만 더 이상 너는 사랑이 아니라 내던져진 기억의 일부분일 뿐이야. 땡그랑 소리와 함께 너는 나와 남이 된 거지. 


‘땡그랑’이라니, 우습게도. 


 너와의 이별이 왜 금속성 물체에 부딪히는 소리였을까. 이젠 기억하고 싶지 않아. 속이 후련하다 정말. 넌 계속 나를 좀 먹고 있었어. 언젠가는 쓸모가 있을 거라는 어처구니없는 착각으로 말이지. 그래, 착각이었네. 


그런데 왜 이리도 아픔이 가시지 않을까. 진통제를 먹어도 네가 있던 그 작은 공간이 비어있음을 알리는 이 피는 멈추지 않을까. 언제쯤 메워질까. 뱉어버리고 싶지만 삼켜버리래. 그래, 삼켜야지. 내뱉을 수 없는 말들 모두 삼켜야지. 




채풀잎 에세이 <보이지 않는 영원> 1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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