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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트라냥 Nov 06. 2023

겨우 28살,
4년 차 마케터, 4번의 이직

뜻하지 않은 바

뜻하지 않은 바


- 뭐?  너 또 이직해?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친구에게 이직을 한다고 말하면서도 민망했지만 담담하게 말하려고 꽤나 노력했다. 정확히 지금으로부터 3개월 전, 이 친구에게 이 자리에서 똑같은 말을 했으니 말이다. 일종의 고해성사를 하는 마음이었다고 해야 하나?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얼어붙은 채용 시장에서 이직한다는 말을 꺼내는 것은 나를 쭈뼛거리게 만들었다.


스타트업 투자 혹한기, 유니콘마저 넘어진다, 구조조정, 희망퇴직


매일같이 뉴스들은 지금 현 상황이 얼마나 불경기인지 앞다투어 자랑했다. 나에게는 멀게만 느껴졌던 단어들이 처음으로 체감이 되는 겨울이었다. 학창 시절 들었던 한 정치 수업 선생님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국지전. 앞으로의 전쟁은 전면전이 아닌 국지전일 거야.”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서로 손해 보기 싫어하니까 그럴 것이라는 게 선생님의 근거였다. 그럴듯했고 지금 와보니 그렇다, 나는 국지전의 한가운데 놓여 있었다.


- 아니, 근데 왜? 3개월 전에 잘 갔다고 좋아했잖아.

- 그렇게 됐어. 일단 밥 먹고 카페 가서 이야기해.


카페로 자리를 옮기자 친구는 기다렸다는 듯이 물어봤다. 도대체 몇 번의 이직인 건지 그나저나 왜 이직하게 된 건지 그래서 어디로 이직하는 건지 요즘 취업난이라던데 너는 이직이 쉬운 것 같다든지. 횡설수설하는 친구의 말을 요약해 보니 딱 3 단어로 추려졌다. 이런 나를 생각했던 것은 아닌데 3 단어보다는 내 인생이 조금 더 할 말이 있는데 남들이 보는 나는 그저 3 단어로 요약되었다.


겨우 28살, 4년 차 마케터, 4번의 이직


10대 때는 똑같은 건물에서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표정으로 일하는 회사원이 되지 말자 다짐했다. 내 인생을 살고 남들과는 다르게 살 거라고. 한 번 사는 인생 멋지게 살 거라고 자신만만했었다. 20대 초반에는 뭐든 되겠지의 마음으로 열심히 놀기에 바빴다. 대학 졸업을 앞둔 20대 중반에는 특별한 거 남들과는 다른 것보다는 남들처럼을 꿈꾸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모순적이게도 내가 지닌 신념을 잃어버릴까 무서워했다. 적어도 그런 낭만이 그때는 있었던 것 같다. 지금으로부터 딱 4년 전, 평소 잘 따르던 교수님에게 ‘사회의 모순을 바꾸고 싶은 사람인데 회사에 들어가서 그런 꿈이 없어지면 어떡하나요’와 같은 질문을 하던 나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지금의 나와는 많이 달랐다.


지금으로부터 딱 4년 전 겨울, 취업 상담 센터에서 취업 지원금을 준다고 해서 상담도 받을 겸  취업 프로그램을 신청했었다. 


- 아 네, 저 취업 상담 센터 상담사예요. 지금 통화되죠? 마침 딱 알맞아 보이는 포지션이 나와서 추천해 주고 싶어서 전화했어요. 여기가 제조업이고 소비재는 아니라 학생들은 잘 모르지만 그래도 업계에선 꽤 유명한 회사예요. 아마 부모님은 다 아실 거예요. 한 번 자기소개서 넣어볼래요?


그렇게 나의 사회생활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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