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준에 대하여
글은 오랜만에 올라왔지만 놀지만은 않았다고요! 매주 한 편씩은 꼬박 쓰고 싶은데 여러 핑계로 그게 쉽지가 않네요. 정말 늦어도 2주에 한 편은 올리고 싶은데 지킬 수 있도록,,, 힘을 주세요!
그나마 요즘 다시 글이 써지기 시작해서 안심입니다. 언제 또 영감이 날아갈지,,, 머리와 영감만은 꼭 붙잡고 싶네요.
아프리카, 동아프리카가 보여준 것에 빠져들었다. 사람들에게 아프리카가 정말 좋다고 이야기했지만 막상 어떤 점이 좋은지 그들을 설득하는데 어떤 근거도 대지 못했다. 동아프리카를 떠나 돌아보니 내가 빠져든 것의 실루엣은 역시 자연이다. 그곳에서 내가 만난 자연, 다양한 식물뿐 아니라 동물, 세계 어느 곳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그 야생의 자연, 이 아름다웠기 때문에 내가 아프리카가 좋다며 더 있고 싶다 말하는 것이다. 그 외 생활 수준, 교육 수준, 전통 그래서 사람들이 만든 문명이 좋았던 것은 아니다. 물론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내가 살아온 환경과는 사뭇 달라 매력적이고 흥미롭지만, 여전히 내 취향은 자연인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같은 세계를 다르게 받아들인다면 내 기억에 아프리카는 야생의 자연, 태고의 자연이 광활하게 자리한 것이다. 내 위는 야생은 소화했지만 문명을 소화하기에는 그 산성을 견디지 못했다.
처음 탄자니아 다르 에스 살람에 도착했을 때, 사실상 수도라 그런지 내 생각보다 깨끗했고, 나는 정말 흑인 밖에 없는, 현지 주민이, 그 생소함에 공항을 나올 때 바짝 긴장했다. 이곳에서 백인보다 더 눈에 띄는 동양인으로 지내는 것이 안전한지 또 그 외에 괜찮을지에 대한 우려가 가득했는데, 이는 아마 이곳을 와보지 않았지만 소문으로는 들어본, 여행 중 만난 여행객이 내게 나눠준 공포로 인해 더 졸아있었다. 말이 생명을 갖고 있다는 말은 와전되어 여러 형태를 낳기보다는 말이 감정을 갖고 사람을 대하기 때문이다. 그 공포는 실체 없는, 확인되지 않은, 혹은 구전되는 중 변모된. 그래서 내가 쉽사리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고 얼어있던 것이다.
유럽에 가면 백인이 있고, 아시아에 가면 황인이 있는 것처럼 아프리카에 가면 흑인이 있는 것이고 그뿐이다.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지는 않아도 사람 사는 방법은 똑같다. 일을 해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머물 곳을 구하고 먹는 것. 아프리카는 흑인들이 주로 사는 곳일 뿐이고, 나는 처음 유럽에 갔을 때처럼 또 긴장을 했다. 알고도 섣불리 깨지 못하는 것이다. 다이빙해도 안전할 것을 알지만 쉽게 뛰지 못했던 것처럼 그저 피부색만 다른 것을 알면서도 마음을 열지 못하는.
이집트에서 두 달을 보내며 느꼈던 많은 감정들, 특히 나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진절머리가 났었다. 동양인이 드문 곳에서 동양인으로 지내는 것은 고독한 싸움이었고 이곳보다 힘들 수 있을까 싶었다. 그리고 아프리카, 진짜 아프리카는 그 이상이었다. 아마 세계 어디를 가도 아프리카만큼 인종차별이 심하진 않을 것이다. 처음 아프리카에 도착했을 때는 이집트처럼 사람들이 나를 쳐다봐도 나에게 말을 걸거나 소리치거나 하지 않아 훨씬 좋다는 생각을 했다. 다르 에스 살람을 걸어 다닐 때도 낮에도 밤에도 경계는 갖지만 불편함 없이 다녔다. 하지만 동행을 만나 케냐로 넘어간 이후는 모든 게 달랐다. 케냐 나이로비에서는 사람들이 동양인에 관심을 크게 주지 않았지만 사파리를 마치고 나이바샤 지역에 가니 시작됐다. 나이바샤 호수로 가기 위해 버스를 갈아타는데 차에서 내리자마자 사방에서 니하오의 세례가 펼쳐졌다. 더 나아가 나는 그날 처음으로 칭챙총 소리를 들었다. 나와 동행에게 하는 말은, 내가 듣게 되는 말은, 기억에 남는 말은 니하오와 칭챙총뿐.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고 그들을 무시하며 내 갈 길만 갔지만 마음에는 상처가 남았다, 왜. 며칠 후 동행을 떠나보내고 혼자 우간다로 갔다. 케냐와 우간다 국경 지대에서 하루를 머물게 됐는데, 그 시간은 내 평생에 잊히지 않을 것이다. 일전에 나이바샤에서는 버스 기사나 호객꾼들, 남자들이 니하오, 칭챙총 거리며 우리를 불렀는데 우간다의 부시아라는 지역에 입국 심사 후 국경을 넘어오니 호객꾼뿐 아니라 여자들도, 심지어 아이들까지도 칭챙총 거리며 지나가는 나를 놀리곤 했다. 그때 나는 상처가 아니라 충격을 받았다. 아이들의 그런 행동이 날 복잡 미묘하게 만들었다. 모든 이가 그런 것도 아니고 친절하고 좋은 사람도 많았지만 안 좋은 일이 트라우마로 남는 것처럼 유감스럽게도 이런 작은 일들이 나에게는 좋은 것보다 더 크게 낙인으로 찍힌 것이다.
나는 아프리카에 오래 있지 않았다. 그들의 역사는 물론 어떻게 사는지, 요즘 이곳의 뉴스는 어떤지 아무것도 들은 바 없다. 난 이들을 모른다. 이들도 나를 모른다. 내가 그들에 대해 아는 한 가지는 그들이 케냐, 우간다 인이라는 것이고, 그들이 나에 대해 아는 것은 아시아인 생김새의 이방인이라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모른다면 그 둘 사이에는 이해가 필요하다. 이해가 없으면 서로는 결코 가까워질 수 없다. 아니 가까워지는 것은커녕 삶의 무엇 하나 스칠 수가 없다. 그런 이해를 위해서는 존중이 필요하다. 존중이란 내가 상대보다 높지 않아도, 낮지도 않은, 같은 위치에서 바라보는 것을 이야기한다. 그게 존중의 기본자세이자 시작점이다. 이들은 이해도 존중도 없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 친구가 되는 것뿐 아니라 영업을 하거나 심지어 사기를 치더라도, 이해와 존중이 필요한데 그들에게는 그런 것이 없었다. 그곳에서 내가 만난 이들은 나를 돈벌이의 수단으로 여겼다. 나는 그들이 나를 돈벌이로 보든 친구로 보든 신경 쓰지 않는다. 다만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사람을 대하는 기본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그들에게 기본도 대접받지 못한 이유는 딱 한 가지다. 내가 아시아인의 외모를 가진 것.
외모란 참 중요하다. 겉보다 속이 더 중요한 것에는 동감을 보내지만 그게 외모가 중요하지 않다는 논리로 이어질 수는 없다. 속이 더 중요하지만 겉도 중요한 법이다. 하지만 내가 의아한 것은 나뿐 아니라 아시아인이 그저 외모 때문에 아프리카, 유럽,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등 다른 지역에서 기본도 안 되는 취급을 받는 그 근거는 무엇 인지다. 세상에 어떤 프레임이 쓰여있기에 나는, 아시아인은 그 외모로 차별받는지이다. 2년 전 Black lives matter 구호로 세계가 시끄러웠다. 흑인들이 자신의 인권을 위해 이룬 투쟁인데 전 세계적으로 파급력이 있었다. 나 역시 전후 사정을 알고 이 문구에 힘을 넣었다. 다만 일각에서는 흑인뿐 아니라 황인도, 백인도 즉 모든 lives matter 라 말한다. 그리고 이 역시 사실이다. 외모란 중요하지만 우리의 외모가 차별의 기준이 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설령 이 시대가 황인이나 흑인이 가장 위에 있고 흑인이나 백인이 대접받지 못한다 할지라도 말이다. 어느 색도 외모의 차이일 뿐 차별의 근거는 못된다.
어쨌거나 나는 이런 경험을 했고 이는 교육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국가들이 점차 발전하면서 교육의 수준도 높아질 것이다. 물론 교육 수준이 높은 나라에서도, 심지어 우리나라에서도, 인종에 기반한 차별은 여전하지만 최소한 교육은, 인종 간의 차이는 있어도 차별은 있을 수 없다는 직접적인 교육을 해야 한다, 그 파이를 줄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것이다. 세상은 글로벌이라 불리고 하루 만에 전 세계를 돌 수 있을 만큼 가까워졌다고 이야기하지만 나는 아직도 거리감을 느낀다. 내가 당한 일들을 극복하지 못하면 우리가 얼마나 빠르게 세상 이곳저곳을 가든 상관없이 상처, 갈등은 여전하고 더 커질 수도 있다. 나는 한 개인으로 어떤 것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방도는 모르지만 사람의 수준을 높이는데 기여할 방도가 있다면 힘쓰고 싶기도 하다. 글로벌 세상에서 살아가는 나니까 말이다.
나는 아프리카가 좋다. 내가 아프리카가 좋은 것은 나는 자연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내가 다시 아프리카를 여행하게 될 때는 자연뿐 아니라 문명까지도 좋아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의 씨앗을 이곳에 심고 나는 다시 길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