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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The Sket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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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urquoise Sep 27. 2015

독감이 남긴 틈

약간 벌어진 채로, 다시 돌아갈 일상

뒤엉킨 시간이 가까스로 복구됐다. 눈 앞의 초점이 어느 정도 맞아 간다 싶은 느낌이 들고 달력을 보니 벌써 일주일이 지나가 있었다. 명절 연휴를 앞두고 가장 분주하게 움직여야 할 날들을 어떻게 보냈는지, 사실 별로 기억이 없다. 그저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버티자, 조금만 버티면 집에 가서 누울 수 있다. 지독한 독감에 걸려 '안드로메다'에 다녀온 내게는 버티자며 다짐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잠깐 정신을 놓아버리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다는 얘기가 결코 허황된 말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주말이 시작된  지난주 금요일 밤부터, 징그럽게도 정확하게 그 황금 같은 시간부터 독감은 내 몸에 들어 앉았다. 그 날 오랜만에 야외로 촬영을 갔다 온 터라 얼굴이며 목이며 햇빛에 빨갛게 그을려 있었기 때문에 나는 처음엔 단순히 피부가 뜨겁게 달궈져 열이 나는가 보다 싶었다. 얼음이나 몇 분 대고 있다가 자야지. 하지만 그 여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이가 딱딱 부딪힐 정도의 오한과 티셔츠가 피부에 닿는 것 조차 비명이 나올 것 같은 몸살이 밤새도록 이어졌고, 그런 상태가 주말 이틀을 모두 날려 먹었다. 누군가가 침대 밑에 중력장을 설치해놓은 것 마냥, 철썩 들러 붙은 환자는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는 제 몸을 일으키키 버거웠다.


지금이 몇 신지 가늠할 틈도 없이 밤낮 끙끙거리던 사람이 밥이라도 제때 챙겨 먹은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주말 동안은 무던히 밥을 지어 끙끙거리는 남편을 깨우는 아내 덕에 무사히 끼니를 챙겼다. 평일에는 모든 직장인들이 그러하듯이, 우르르 몰려나가는 '식객'들 사이에 시나브로 파묻혀 제때 몇 숟가락이라도 입에 넣을 수 있었다. 사실 정신줄을 애써 부여잡고 있었던 며칠 동안은 다 귀찮으니 곡기를 끊고 속세와 정신을 분리해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뭔가를 먹고 싶다는 생각도 그리 강하게 들지 않았고, 평소 즐겨 먹던 음식이 차려져 있어도 입에 넣으면 이게 모래 알갱인지, 밥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고 굳이 애써 구별하고 싶지도 않았다. 진짜 그냥 다 귀찮아 '죽을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밥 숟가락을 하루에도 몇 번씩 가열차게 들었던 환자의 이유는 약이었다. 시쳇말로 '죽을  것처럼' 아프다 싶지만 그나마 움직일 수 있는 기력을 주는 건 삼시 세 끼의 연장선에 있는 알약 몇  개였다. 속을 채워야 할 이유는 솔직히 그것뿐이었다고 해도 과한 말이 아닐 것이다. 건강에 별  문제없는 평소 같으면 매번 잊어버리고 말았을 것을 지난 한 주 동안은 마치 무슨 마약 중독자라도 되는 것처럼, 오로지 약을 먹기 위해 밥을 꾸역꾸역 삼키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기력을 되찾기 위한 수단으로 활약해야 할 알약 따위가 독감 환자에게는 존재 자체로 목적이 되어버리는 상황에 아연했지만 별 수 없었다. 약 기운이 떨어지면 또 다시 그 지옥 같은 병마에 짓눌려야 한다는 두려움에 나는 이미 단단히 사로잡혀있었다.


소태 같은 밥과 신앙 같은 약을 달고 산 덕인지, 밤낮이 조금 구분되기 시작할 무렵 다시 주말이 찾아왔다. 다음 끼니는 뭘 먹을지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살고자 하는 의지가 다시 생긴 것이 아닌가 싶어 스스로 기특한 마음이 든다. 이제는 앓을 만큼 앓았고 체력도 어느 정도 다시 올라 붙고 있으니 곧 회복하겠지 싶은 마음이 들자, 간사한 사람 마음은 다시금 내 지난 일주일간의 믿음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의사가 며칠 동안은 드셔야 한다며 처방을 해준 것이니 다 먹는 것뿐이지 결코 약을 먹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니라고. 내가 무슨 '뽕쟁이'도 아니고, 약을 먹기 위해 버티고 산다는 게 말이나 되는 얘기냐고 말이다. (아직도 약을 몇 시에 먹어야 좋을지 손가락으로 꼽고 있는 주제에) 뭘 위해 난  '먹고사는'거냐는 물음에 '감기약'이라고 밖에 답할 수 없었던 환자에서 다시 평소의 나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럼 어디로 돌아가면 될까. 아프지 않을 때 나는 뭘 위해서 끼니를 챙겨 먹고, 옷을 챙겨 입고, 오지 않는 잠을 억지로 청하는 것일까. 일주일간의 와병이 내게 가져다 준 것은 기묘하게도 예전으로 온전히 돌아가지 못함이었다. 아프기 전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어렴풋이 나를 위해서, 혹은 우리 가족을 위해서 열심히 산다는 뜬구름만이 떠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감기약이라는 물리적 매개체를 한 번 거치고 나자 제 정신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비슷한 무언가가 필요해졌다. 한 배역을 맡았던 배우가 다시 자기 자신으로 돌아와보면 아주 미세하게 달라진 자신을 느낄 수 있다고 한 하루키 소설 속 이야기처럼, 환자 역할을 충실히 마치고 돌아온 내게는 생활을 활기차게 돌려야 할 이유가 새로이 필요하게 된 셈이다.


약이 빠질 자리에 뭘 채워야 할지는 아직 못 정했다. 그 자리에 일을 집어 넣자니 너무 비좁을 것 같기도 하고, 워커홀릭도 아니면서 내 일을 위해 생활을 불태 운다는 것은 얼핏 들어도 인정하기 어려운 바다. 가족을 넣어보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건 감기약 대체로 하기에는 너무 크고 민감하다. 돈이라고 해봐야 당장 벌 수 있는 것도 아니니 허망해질게 분명하고, 사고 싶었던 무언가를 갖다 놓으려니 못 사고 좌절하는 것도 걱정되거니와 목표를 자주 갱신해야 하는 것도 벌써 귀찮다.


당분간은 책을 보는 걸로 두는 게 어떨까 싶다. 감기약을 신봉했던 일주일 동안 가장 하고 싶은 것 중에 하나였고, 그 정신에는 제일 못 하겠다 싶은 것 중에 으뜸이었다. 별 일 없는 일상이 유지되고 내게 잠깐이라도 여유가 생겨야 할 수 있는, 거기에 활자를 눈에 들일 수 있는 명료함까지 필요한 정신적인 사치. 읽고 싶은 책을 보기 위해 밥을 먹어야 하고, 잠을 제대로 자야하고, 일을 열심히 해야 하고,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적어도 병마와 마주치기 싫어 약을 믿고 지냈던  지난주보다는 나을 것이고. 내 스스로도 정확히 뭔지 모르는 개념들을 위한 답시고 멍하게 일상을 돌리고 있던 지난 시간들 보다도 꽤 괜찮을 것 같다.


지나고 보니 독감도 나름 쓸만한 구석이 있다. 병마는 내 일상에 작은 목표를 꽂아 넣을 수 있는 틈을 만들어 놓고 곧 떠날 것이다. 나는 약간 틀어진 채로, 벌어진 틈새를 기꺼이 메우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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