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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The Sket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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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urquoise Oct 04. 2015

신사와 숙녀와 화환

나는 점점 그런 손님이 되어간다

결혼식에 가면 어떻게 해야 하나

지인들의 혼사 초대에 쓸데 없이 홀로 고민했던게 언제였나 싶으리만치

내가 받은 축의금 봉투를 뒤져보고

갈비탕과 뷔페와 코스요리를 먼저 따지고

식당 명당 자리와 한적한 시간대를 이미 알고 있는


조금은 지나치게 프로페셔널한,

나는 점점 그런 손님이 되어간다.


혼인식 깨나 다녔던 기억에는

브라운관 속 사람들이 가득한, 믿기 어려울 눈부심도 있었고

그 흔한 축가 한 소절 없는 고요함도 있었다.

턱시도 바지가 뜯어지도록 춤을 추는 신랑이 있었는가 하면

부케 꽃다발을 직사화기처럼 다루는 신부도 있었다.

새 신랑이 될 사람의, 혹은 누군가의 아내가 될 사람의

멋쩍은 청첩을 받고 간 경사

나는 온전히 그들의 하객(賀客)이었다.

적어도 얼마 전까지는


'프로 하객'은 딴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유려한 동선과 적절한 미소, 실없는 농담

지극히 표준적인 나는, 부부의 탄생을 진심으로 축하해마지 않지만

잔뜩 들뜬 그들 곁에 상기된 얼굴로 선

신사와 숙녀에게로 자꾸 눈길이 가는 것이다.


언제나 한결 같이

마이크를 쥔 손을 파르르 떨며

눈가가 서서히 다홍색으로 바뀌며

부자연스러운 쉼표를 연발하며

자식 내외를 힐끔 쳐다보고는 광대뼈를 슬쩍 들어 올리며


감사합니다. 뿌듯합니다. 잘 살길 기원합니다.


부모라는 사람들은 어쩌면 저렇게 하나 같이

자식 내외가 품 안을 떠나는 길에

온몸으로 울면서 축복을 뿌리고 있는가


결혼할 사람이라며 짝을 데려온 그 날 이후로

밀려 드는 자식 새끼 걱정에 밤이 오는 걸 두려워했을 아버지

혼수로 한복을 맞춘다며 손을 붙잡고 나가

행여나 비싼 걸 골라 부담되진 않을까 눈치를 봤을 어머니


아무것도 모르고 세상에 덤비는 아들 놈과

대책 없이 고집만 부리는 딸 자식을

삼십 년이 되도록 어르고 혼내며

다만 한 번 웃어주는 것만으로 배가 불렀을 애비와 애미


인생을 걸고 키운 자식이 남긴

한동안 치우지도 못할 잡동사니들을 바라보며

속이 시원하다는 말을, 들으라고 크게 하고는

묵직해진 가슴을 쓸어내리느라 밤잠 못 이룬

서로를 모른척해준 오래된 부부


이제는 껍질만 남은 '자식'이라는 이름을

남편으로, 아내로 바꿔 달아주고는

돌아온 집에서 아무 말도 없이

그 무거운 침묵이 죽음까지 이어질 것을 알고 있는

초로(初老)의 남녀


자식 결혼이라는 게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라고 배워 왔건만

직접 다니며 본 신사와 숙녀에게는

결코 평탄하지 않았던 삶의 큰 조각을 떼어내는

두려움이었다.


그마저도 아이들에게 상처가 될까 싶어

가늘게 떨리는 손을 부여 잡으며 무서움을 이겨내고

눈가를 다홍색으로 물들이며 허무함을 떨쳐내며

부자연스러운 쉼표로 회한을 갈음하는

의연함이었다.


신사와 숙녀는, 어쨌든 이를 악물고 그날 만큼은

넘치는 축복과

급조된 웃음과

끊임없는 감사로

가눌 길 없는 두려움과 눈물과 허무함을 가린다.


그들의 어색한 연기는

식장 앞을 가득 메운 화환처럼

너무 화려한 나머지 가려진 그늘을 감히 가늠할 수가 없어

얼마 전까지 신랑과 신부의 하객이었던 나는

신사와 숙녀의 손님이 되고 만다.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고 나니

그런게 아비와 어미의 마음인가 싶어

조금은 지나치게 아마추어 같은,

나는 점점 그런 손님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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