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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편지 Aug 06. 2021

변변한 친구가 되는 길

10년 지기에게


 안녕. 나는 너의 10년 지기. 나에게 너는 하나뿐이지만, 나는 너에게 수많은 친구 중 하나이겠지. 내가 맡은 ‘친구1’의 역할 비중이 꽤 마음에 든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우리 사이의 거리가 10년을 기념할 수 있게 했다. 


 너의 무심함을 좋아한다. 눈에 뻔히 보이는 가시밭길 같은 연애를 시작했을 때도 너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내 신념이 옳다고 고래고래 소리지를 때도 너는 나를 보기만 했다. 네가 한 실수가 나를 할퀴었다고 상처를 눈 앞에 들이밀었을 때에만 미안하다고 얘기를 했다. 너의 고요함이 우스웠다. 이 시끄러운 세상을 좋지도 싫지도 않은 어정쩡한 상태로 사는 네가 바보 같았다. 나는 극에 사는 사람이었다. 이거 아니면 저거. 맞거나 틀리거나. 중간은 못마땅했다. 너는 항상 같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었고 나는 입맛대로 영영 멀어지거나 고목나무 매미처럼 붙기도 했다.


 이제는 네가 “그 때 말이야.” 라고 하면 두 손을 공손히 모은다. 과거의 어느 시점을 짚어도 네게 좋은 친구였던 적이 없기 때문이다. “네가 옛날 얘기할 때마다 긴장돼.” 라는 내 말에 재미있어하는 네 표정을 볼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너는 여전히 내게 무심하다. 주변 사람들에게 무뚝뚝한 것 같다는 내 말에 “너 다정해. 살갑지 않을 뿐이지.” 라고 한다. 불안할 때마다 물어뜯은 뭉텅한 내 손톱을 보면서 “불안해서 그러는거지?” 라고 묻는다. 너의 다정함은 붉지도 따뜻하지도 않다. 감정이나 생각을 담지 않은 투명한 빛이 난다. 어떤 것도 굽지 않고 그대로 비춰준다. 너의 투명한 무심함이 매번 나를 여기로 돌아오게 한다. 


 지난 10년동안 나는 변변찮은 친구였다. ‘친구1’의 배역도 과분한 시간이었다. 나는 너를 통해 변변한 친구가 되는 방법을 배웠으니 이제는 다른 이름표를 붙일 것이다. 필요할 때 곁에 있고 필요 없을 때 잽싸게 꺼지는 네 인생의 감초 역할을 맡을 셈이다. 그러니 부디 오래 고요하기를. 더 많이 무심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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