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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편지 Aug 10. 2021

수험 생활을 마칩니다

공인중개사 자격증 시험 도전기


 민법 강의 첫 날을 기억한다. 찬 바람이 조금 더 짙어진 날이었다. 시험에 다시 도전하려고 마음을 추슬러 학원을 옮겼다. 묘한 느낌이었다. 착잡하면서도 깊숙이 자리 앉은 기분이 들었다. 수업이 시작되고 놀랐던 감정은 아직도 생생하다. ‘어? 저거!’ 하면서 아는 내용이 속속들이 나왔다. 그리고 그것들이 연결이 됐다. 나는 모든 과목의 내용을 따로따로 이해했다. 이해했다기보다 외웠다. A만 물으면 A를 애매하게 답할 수 있는 정도였다. 하지만 시험은 A만 묻지 않는다. 1장에 관한 문제이면서 책 맨 뒤에 장을 섞어서 묻는다. 게다가 모든 과목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민법 문제에 공법이 나오기도 한다. 1년을 배워도 제각기 떨어져 있던 내용을 연결하는 다리가 뿅하고 나타난 느낌이었다.


 기뻤다. 한량처럼 공부했어도 수없이 보고 듣고 외운 내용은 머리에 있었다. 그제서야 아버지가 말한 “반복하다 보면 된다.” 라는 말을 이해했다. 도통 모르겠어도 내용을 반복하다 보면 절대량이 채워지고 그 이후에는 연결하고 뽑아내면 된다. 족집게 과외만 들었던 나는 엉성하게 엮인 그물로 헛손질을 한 셈이었다. 그 이후로는 학원 수업을 꼭 챙겨 들었다. 봄이 오면서 독서실을 다녔다. 같은 학원 건물에 있었기 때문에 수업을 마치면 바로 독서실로 가서 공부를 했다. 처음에는 혼자서 점심을 먹는 것이 어색하여 끼니를 건너뛰고는 했다. 하지만 여름이 오고 오전 9시부터 밤 10시까지 학원에 살다시피 하면서 체력이 달리기 시작했다. 밥은 물론이거니와 홍삼진액과 발포 비타민을 쟁여놓고 먹으며 공부를 했다.


 공부가 잘 되지 않는 날도 있었다. 시험 한 달 전까지도 답답함이 가시지 않았다. 내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공부하는 나날이었지만 매일 봐도 방대한 양과 거기서 거기인 법 조문들에 울화가 치밀기도 했다. 독서실에서 많이 울었다. 시험이 다가올수록 쌓여가는 책이 꼴 보기도 싫어서 집에 가서 잠만 자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독서실에 와서 공부를 해야만 마음이 풀렸다. ‘내가 이겨먹는다.’ 라는 생각으로 이를 갈며 해야 하나라도 얻어갈 수 있었다. 정말 외로웠다. 처음 느껴보는 외로움이었다.


 10시간씩 공부하던 여름이 지나고 시험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으면서 마지막으로 기출 문제 풀이를 시작했다. 기본을 확실하게 쌓고 문제를 풀자는 생각으로 조금 늦게 시작한 편이었다. 그 날이 아직 기억난다. 점심을 건너뛰고 기출문제 1회차를 풀었다. 몇 개 맞추지 못하고 기본서로 문제 풀이를 했다. 2회차를 풀고 반 정도 맞고 다시 기본서를 봤다. 3회차부터는 시험 문제가 기본서처럼 읽히기 시작했다. 타이머로 시간을 맞춰놓고 풀어도 너무 빠르게 보이는 답에 의심하면서 채점을 했다. 1개만 틀렸다. 4회차, 5회차도 1~2개 정도만 틀렸다. 그 때 확신했다. 내 절대량이 다 채워졌다고 말이다. 


 그 즈음부터 학원에서 치르는 모의고사에도 상위권 점수를 받았다. 요약집을 덮고 기억해보면 페이지 그림까지 생각이 났다. 문제를 풀면 항상 합격 점수를 넘겼다. 그렇게 한 달을 보내고 시험 날이 왔다. 시험 문제를 빠르게 풀어나갔고 가벼운 마음으로 집으로 갔다. 가채점을 해보니 합격 기준을 채우고도 남는 점수였다. 혹시 몰라서 두번, 세번 채점해봐도 같았다.


합격이었다.


 그 때의 감정은 기쁨과 안도였다. 재수 기간 내내 나를 짓눌렀던 생각은 ‘이번에도 떨어지면 부모님을 뵐 면목이 없다’ 였다. 학교까지 휴학하고 가족들의 모든 지원을 받으면서 돈과 시간을 썼다. 합격하고 싶다기보다 떨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채점을 끝내고 합격 점수를 보면서 얼마나 안심했던지. 그렇게 수험생활을 끝냈다. 


 자격증을 취득한 지 6년이 지났다. 그 자격증은 책장에 곤히 잠들어있다가 이력 한 줄로 쓰이고는 했다. 좋은 스펙이 없는 내가 그나마 갖고 있는 자격이었다. 사람들은 ‘공인중개사 시험 합격’ 이라는 말을 들으면 나를 달리 보고는 했다. 시험이 끝난 순간부터 부동산법에 대해서는 개코도 모르는 사람이 되었지만 그 자격증을 위해서 울고 웃은 시간이 있다. 자격증 공부를 추천한 아버지의 혜안에 감사한다. 수험 생활 동안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노력하는 것이 무엇인지 배운 나에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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