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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모닝선샤인 Feb 10. 2022

진주 귀걸이를 한 엄마

복직을 앞두고 귀걸이를 샀다

지금 당신의 귀에는 귀걸이가 걸려있는가? 내 귀에는 20년 전에 뚫은 구멍만 세 개 홀연히 남아있다. 마치 오래전 전성기의 화려함을 기억하는 유적의 흔적처럼 빈자리만 남아 그때를 추억하고 그리워하고 있는 듯하다.


코로나 시대 두 아이 가정 보육 맘. 언제부턴가 내 소개의 첫 문장이 되었다. 4살, 6살 두 아이를 키우고 있고 지난 2년 동안 기관에 잠시 다닌 몇 달 빼고는 거의 매일을 집에서 씨름했다. 자가격리를 해봤다. 겨울에 들어선 한 달의 반은 기침과 감기로 어디에도 나갈 수 없었다. 그런 나에게 귀걸이란? 쓸데없는 장식품이 되었다. 한때 귀걸이를 무척 좋아하고 즐겨하던 나는 까마득해졌다. 귀걸이 없는 작은 구멍만 검은 점처럼 남아 이러다 막히겠지 하고 시간이 흘러갔다.



18살, 귀에 실리콘을 넣고 다니다


처음 귀걸이를 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그때는 소위 말하는 까진 애들이 귀를 뚫는 것이 유행이었다. 당시 학생부장이던 악명 높은 체육 선생님은 쉬는 시간에도 교실을 돌며 머리를 풀고 있는 아이들을 찾아내어 회초리를 날렸더랬다. 지금 세상에선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할 테지만, 22년 전에는 그랬다. 머리를 기를 수는 있었지만, (우리 시에서 몇 안 되는 특전이었다, 이것 때문에 우리 고등학교를 지원한 아이들이 있을 정도로) 반드시 머리를 묶고 있어야 했다. 머리만으로도 회초리인데, 귀걸이 착용은 어떠했으랴. 걸리면 아마 귀가 없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런 불지옥 같은 교내 상황에서 나는 귀를 뚫었다. 나름 공부를 했던 나에게 그건 호기로운 일탈 같은 것이었다. 쿨한 아이들만이 할 수 있는 귀 뚫기였다. 귀를 뚫은 아이들끼리는 동지애 같은 게 있었다. 쉬는 시간마다 귓구멍에 어떤 약을 발라 관리하는지, 어떻게 해서 귀가 막히는 것을 방지하는지 등등 정보를 교환하고 심경을 교류했다.



처음 귀를 뚫으면 적어도 2-3달 동안은 매일 귀걸이를 착용해야 귀가 막히지 않았다. 교내에서는 귀걸이를 착용할 수 없으므로 나름의 방법을 고안했다. 귓구멍만큼 얇은 실리콘을 잘라 넣고 다니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해야 했나 할 정도로 기괴한 모습이지만, 그때 당시에는 정말 신박하고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몰래 실리콘을 보일랑 말랑 할 정도로 잘라서 귓구멍에 넣었다. 그것만으로도 걸릴까 봐 체육 수업 때마다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어떻게든 멀리 앉아 들키지 않으려고 애썼다. 18살의 실리콘 귀걸이를 한 나. 나는 왜, 무엇 때문에 귀를 뚫었을까? 예뻐 보이고 싶어서였을까? 글쎄, 그때는 이성에 대한 관심도 없었고 외모에 크게 신경을 쓰지도 않았었다. 그보다는 일탈, 기행, 변화, 시도, 도전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학생 신분으로 안전한 범위 안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일탈 행동이 아니었을까 싶다.




22살, 분신이 되어버린 귀걸이 한 쌍


대학생이 되어 외모에 대한 관심이 급상승했다. 대학 세상에서 매일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남자 친구도 생겼다. 귀걸이는 내가 꾸밀 수 있는 아이템 중 하나였다. 화장은 어려운 기술, 눈썰미, 연습과 노력이 필요했지만, 귀걸이는 간단히 걸기만 하면 되었다. 다양한 디자인과 크기, 색상으로 매일 기분에 따라 고르면 완성이었다. 귀걸이는 어느새 내 얼굴의 일부가 되었다.


하루는 1교시 수업이 있는 날이었는데 늦게 일어났다. 부랴부랴 준비를 하고 나와보니 귀걸이를 깜박했다. 다시 돌아가면 늦을 시간이라 그냥 버스를 타고 학교에 왔다. 그날 하루 종일 어찌나 허전하던지. 귀걸이 하나 안 한 것인데, 마치 맨 얼굴로 나온 것처럼 고개를 들 자신이 없었다. 귀걸이를 하면 얼굴이 1.5배는 예뻐 보인다는 말을 철석같이 신봉하던 때였다. 점심시간에 당장 주얼리숍에 가서 귀걸이를 샀다. 새 귀걸이를 걸고 나니 이제야 안심이 되었다. 귀걸이는 그렇게 나 자체가 되어버렸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그들의 의견이  중요한 시기였나 보다.  귀걸이 없이 사람들을 만나면, 초라하게 보일까 하는 두려움이 컸다.  꾸미고  치장하고 보여줄  있는 만큼 매력을 발산해야 한다고, 그래야 나를 있는 그대로보다   드러낼  있다고 믿었다. 귀걸이를 하고 치마를 입고 하이힐을 신고 화장을 했다. 맨몸과 민낯의 나는 내가 아니었다.  넓은 캠퍼스를 7센티 이상 하이힐과 치렁치렁한 귀걸이를 자랑하며 거닐었다.  자신에게조차 나를  나은 모습으로 속이면서. 지금 돌아보면 아쉬움이 크다. 외모만 번지르르한  무슨 소용이었을까.   마음과 내면을 챙길걸, 진짜 중요한  무엇인지  생각해 볼걸 이제야 그런 마음이 든다.


엄마가 되고 귀걸이는 사라졌다


그렇게 치장하던 시절은 십 년 남짓이었다. 나는 결혼을 했고 바로 엄마가 되어 모든 겉치레는 버려야 했다. 짧은 치마와 하이힐은 신을 일이 없어졌다. 귀걸이는 어디론가 다 사라졌다. 혹시 갓 태어난 아이가 다칠까 봐 목걸이도 귀걸이도 몽땅 빼버렸다. 반짝이는 귀걸이 큐빅의 날카로운 끝이 여리고 투명한 아이의 살갗을 스치기라도 할까 봐 던져놓았다. 아이가 손을 사용해서 엄마 얼굴을 더듬을 때쯤 달랑거리는 목걸이 모서리 끝에 아이가 상처라도 입을까 봐 감히 생각도 하지 않았다. 아마 그때부터 몇 년 동안 그것들은 집안 어두운 침대 밑이나 서랍장 안쪽에서 혼자 돌아다니고 있었을지 모른다. 내 묻어놓은 자유와 젊음이란 심연의 끝에서.



엄마로 5년을 살았다. 어느 햇살 좋던 날, 길을 가다가 보석가게의 반짝이는 매대를 바라봤다. 투명한 유리상자 안에서 온갖 주얼리들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나를 가져봐, 나를 걸어봐, 너는 달라질 거야, 너는 빛나게 될 거야.'


마법에라도 홀린 듯 흐리멍덩해진 눈으로 가게 안에 들어갔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 목에 목걸이가 걸려있었다. 하트 모양에 작은 큐빅들이 오밀조밀 박혀 번쩍이고 있었다. 귀에는 작은 큐빅이 하나 박힌 은색의 원터치 진주 귀걸이가 걸려있었다. 얼마 만이었던가. 그 작은 보석 세트 하나로 나는 마법에 걸려 아름다워진 디즈니 만화 공주가 된 듯 순간 어지러웠다. 볼품없이 상한 피부가 하얀 도자기 표면이 된 듯 매끄러워 보였다. 거칠게 상한 머릿결이 트리트먼트를 한 듯 부드러워 보였다. 탁한 생선 눈알 같은 눈빛이 새 생명을 얻은 듯 빛나고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결제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서는 책상 위에 그 둘을 올려놓고 한참을 바라봤다.


'내가 뭘 한 거지. 누굴 만난다고. 누굴 보여준다고 이런 것을 샀지. 미쳤구나. '


허망한 계산서가 옆에서 뒹굴뒹굴하고 있었다.



다시 귀걸이를 꺼내다


그 귀걸이 오랜만에 꺼내 바라본다. 내일 나는 5년 만에 복직을 한다. 아직 어린아이 둘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리지만, 이제 허락된 육아휴직은 끝이 났다. 펑퍼짐한 운동복 바지와 늘어난 뱃살, 쭈그러진 얼굴이 거울에 보인다. 원격수업으로 학교 수업 시스템은 완전히 달라져있었다. '패들렛'이 무엇인지, '노션'은 뭐고 '줌' 수업은 어떻게 하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해 멘붕상태이다. 5년이 지나 학교에서 가르치던 수업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영어를 안 쓴 지 5년은 더 넘었다. 이런 와중에 복직을 하다니, 쭈글쭈글한 늙은 신규 교사가 호랑이 굴속에 던져지는 기분이다.


믿을 건,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는 몸뚱이 하나와, 닥치면 할 수 있을 거라는 조그만 (아주 조그만) 배짱 하나다. 그 소심한 배짱 하나에 반짝이는 귀걸이를 하나 걸어준다. 새로 사놓고도 한동안 서랍장에서만 잠들어있던 내 귀걸이를 이제 걸어본다. 그게 외모를 조금이라도 돋보여 자신감을 주는 신기루 같은 거짓 믿음일지라도, 자기만족 이래도, 상관없다. 내게 조금이라도 힘을 준다면, 그것이면 충분하다. 바닥으로 사라진 내 자존감을 조금이라도 높여준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다. 그렇게 자존감을 약간이라도 찾는다면, 대학생 시절에는 챙기지 못한 겁에 질린 내면도 이제는 조금은 넓어지고 침착해지리라.




엄마가 되고 세상은 달라졌다. 나의 세상도 달라지고 학교 환경도 달라졌다. 다시 학교로 복직해서 쓰임 받을 능력이 어디 남아있나 불안하다. 집안 일과 육아만 하던 내가 다시 교단에 서서 학생들을 마주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에 요즘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러나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나가서 부딪혀야 한다. 부들부들 떨고 있는 내면에 귀걸이를 걸어본다. 갑옷으로 무장한 듯, 배틀필드에 두 다리를 세운다. 반짝이는 귀걸이를 끼고, 나 자신을 믿으며 세상으로 걸어 들어갈 준비를 한다. 진주 귀걸이를 한 엄마는, 당당하게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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