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버스 안에서

두 남자의 대화를 엿들으며

집에 돌아오는 길, 버스 안에서 두 남자의 대화 소리에 귀에 꽂으려던 이어폰을 잠시 멈췄다.


"..... 아니 근데, 형은 말이야. 말로 표현하기는 어려운데.... 묘하게 좀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하는 구석이 있어."

"그게 뭔데.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봐."

"아.... 설명하기 어렵다. 형이 가끔 되게 이상해질 때가 있거든."


대학교 동기로 추측되는 두 사람은 꽤 진지한 주제를 덜컹이는 버스 안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대화 내용은 깊은 새벽 조용한 포차에서 들을 법한 이야기였다.


"내 문제가 뭔지 알아. 난 한 가지 일을 하고 있을 때 다른 일에 신경을 못 써. 그건 인정."

"근데 형, 그게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면 안 되잖아."

"그렇지 맞아. 맞는데 그래서 난 나를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있으면 된다고 생각해. 나도 그런 사람을 찾는 편이고."

"그럼 고칠 생각이 없다는 거야?"

"내가 고치려고 별 짓을 다 해봤거든? 근데 안 되는 걸 어떡하냐."

"형, 우리 아버지가 평생 하는 말이 있어. 세상에 고칠 수 없는 건 없다."


둘은 욕을 하는 건지 싸우는 건지 모를 대화를 나눈 뒤 마지막에는 호쾌하게 웃으며 버스에서 내렸다. 아마 술 한잔 나눠마시며 진솔한 이야기를 하던 중, 9시로 술집 영업이 끝나 달리는 버스에서 미처 하지 못한 이야기를 나눈 모양이다. '형'이라는 사람은 함께 하는 공동 작업 혹은 단체 생활에서 무언가 불편한 행동을 했을 것이다. 동생의 반응을 보아하니 주변 사람들은 그것이 나쁜 의도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는 듯했다. 무언가에 집중할 때 무심코 나오는 날 선 행동일 가능성이 크다. 스스로도 고질적으로 멀티 플레이가 안된다고 밝혔으니.


대화를 들으면서 어느새 형에게 싫은 소리를 하던 동생에게 이입이 되었다. 나 또한 특정 조직에 속해 일하는 직장인이기 때문일까, 직장 생활에서 멀티 플레이어가 되는 것은 필수적이다. 멀티 플레이어가 되지 않는 사람은 직장을 오래 할 가능성이 적다. 실제로도 그 이유로 퇴사하는 사람들을 꽤 목격했고, 특히 사회초년생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물론 딱 한 가지 일만 하는 직무도 있을 수 있겠으나, 회사라는 곳은 사람을 뽑으면 등골 척수까지 쪽쪽 뽑아먹는 가성비를 따지는 곳이기에, 대게 한 사람 앞으로 여러 가지 일을 던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일에 집중할 때 주변을 불편하게 하는 행동을 한다? 직장에서 무난히 적응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곧이어 이런 꼰대 같은 생각을 하는 스스로가 우스워졌다. 문제의 그 사람은 직장이 아니더라도 본인의 적성이 맞는 자리를 알아서 찾아갈 것이다. 안정적인 직장만이 정답은 아니다. 내가 사는 세상이 전부라고 해서 누군가도 그 삶을 강요받아서는 안된다. 결국 나에게는 동생이 옳고, 형이 그르다고 판단할 권리는 없는 것이다. 그는 남들에게 젖어가는 것은 힘들어할지 몰라도, 자기 객관화가 확실하고 또 한 가지 일에 기가 막히게 집중을 잘하는 모양이다. 아마 개인적으로 작업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하지 않을까. 그래도 조금 그가 걱정은 된다. 부디 조금은 주변을 돌아보길. 유난히 눈에 띄는 단점은 잘 숨겨놓았으면.  





매거진의 이전글 명문대에 다닌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