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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백석의 7년

<일곱해의 마지막> 리뷰

김연수의 소설 <일곱해의 마지막>은 해방 후 시인 백석이 북한에 남게 되면서 남긴 7년간의 행적에 상상력을 덧붙인 작품이다. 백석은 공산주의 찬양 시를 쓰게 하는 북한의 압박과 자유롭게 시를 쓰고자 하는 의지 사이에서 고뇌한다.


소설 속 백석은 처음부터 끝까지 무력감에 젖어있다. 문화 예술 따위 체제 선전의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당을 개탄스럽게 생각하고, 변질되어버린, 혹은 체제에 탄압으로 스러져가는 동료들을 보며 허망해한다. 하지만 그는 ‘시를 쓰지 않는 것’ 이외에는 딱히 무언가 해보지 않으며 또 그만한 용기도 없음을 스스로 인정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과거를 추억한다. 젊은 날 남쪽에서 누렸던 따스함과 자유, 사랑, 그리고 떠나버린 친구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후회와 상념만 가득한 그의 세계를 보며 답답함을 느꼈다. 해방 전 죽은 동료들이 차라리 행복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차마 죽을 용기는 없고, 또 평양에서 쫓겨나는 것이 두려워 병도에게 찾아가기까지 하면서 당에서 원하는 시는 적극적으로 쓰지 않는다. 그렇게 자리도 못 잡고 혼란스러워할 바에 차라리 시인이길 포기하고 멀리 떠나 노동자로 사는 것이 홀가분할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북한의 완벽한 해빙을 기다린 것일까. 삼수로 쫓겨나기 직전까지 평양에서 근근이 버틴다. 시를 쓰지 않는 것으로 시인의 고결함을 지킬 수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그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무력함의 반증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석의 무력함이 마음 한 편으로 이해가 가는 이유는, 문화가 파괴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고통을 실감 나게 그려냈기 대문이다. 아름다운 시, 현실의 이면을 그려낸 소설, 인간의 감수성을 일깨우는 모든 것을 통제하는 사회는 무자비하다. 어둡고 춥다. 이곳에서 아름다운 말맛으로 추억과 그리움을 일깨워주던 천재 시인이 위축되어 무너져간다. 마치 당시 북학의 문화 산업을 백석이라는 한 인간으로 표현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시는 깊어야 하며, 특이하여야 하며, 뜨거워야 하며, 진실하여야 한다.” 백석이 주장한 시의 본질이다. 타오르는 시에 대한 열정을 비합리적인 사상으로 억압당했을 그의 심정을 감히 헤아릴 수 있을까.


백석은 삼수에서 양치기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그리고 수령을 찬양하는 시를 쓴다. 소설 내내 무기력한 백석만큼이나 허무한 결말이다. 결국 사회 체제에 순응하는 삶 속에서 본래의 시인의 자아는 해체되었을까? 삼수에서 목격한 천불은, 타서 사라져 버리는 본래의 자아를 말한 것일지도 모른다. 천불을 바라보며 백석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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