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날에 김치 부침개 같이 먹어요!
나른한 오후, 조용히 비가 내린다. 창가에 흐르는 빗방울을 정순 씨와 함께 바라보고 있다. 정순 씨도 감상에 젖었는지 말이 없다.
“이런 날 부침개 먹으면 딱인데…….”
“그죠! 우리 부침개 만들어 먹을까요?”
정순 씨의 부침개 소리에 우리는 침을 삼켰다. 마침 부침가루도 조금 있고 냉동된 오징어도 있었다. 우리는 부침개를 부치기로 했다.
정순 씨가 부침개 요리를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도왔다. 먼저 남은 부침가루를 탈 탈 털어 볼에 넣었다. 물을 맞추려는데 정순 씨가 자신이 없는지 망설이는 표정이 보였다. 물을 두 컵 넣고 걸쭉하게 한 다음 이 정도면 되겠는지 묻자 정순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순 씨, 달걀도 넣을까요?”
“두 개 넣어유.”
냉장고에서 달걀을 꺼냈다. 정순 씨는 달걀을 식탁 모서리에 톡톡 두드려 쪼갠 후 볼에 넣었다. 밀가루 반죽과 노른자 흰자가 잘 섞이게 저었다. 썰어 둔 김치를 조금 더 잘게 자르기로 했다. 김치를 써는 정순 씨의 주름진 손등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먹먹했다. 그간 소외받고 외로웠을 그녀의 지난 세월이 느껴졌다.
잘게 썬 김치를 반죽에 담갔다. 오징어를 씻어 도마에 올렸다. 정순 씨는 오징어가 미끄럽다며 한 손으로 단단히 잡고 조심스럽게 칼질을 했다. 제법 익숙한 손놀림으로 오징어를 일정하게 썰어 반죽에 넣었다. 반죽을 골고루 섞는 정순 씨는 요리를 즐기는 듯했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키친타월로 팬을 닦아 건넸다. ‘정순표’ 부침개가 맛있게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팬이 식은 후 기름을 넣자고 하자, 정순 씨는 팬을 요리조리 기울여 기름이 퍼지게 했다. 오징어 반죽을 한 국자 넣더니 조금 더 넣어야겠다며 반 국자를 떠서 펴 발라 굽기 시작했다.
“구워진다. 구워져!”
정순 씨는 흥분한 듯 외쳤다.
“오, 냄새 좋은데요?”
정순 씨는 자기가 만든 부침개를 먹을 생각에 기분이 좋아 보였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몸을 가볍게 흔들었다. 뒤집어야 할 순간을 정순 씨가 알까 궁금했다. 그런데 정순 씨가 먼저 물었다.
“이제 뒤집을까요?”
“그래요, 지금 뒤집어야 할 것 같아요.”
정순 씨가 뒤집개를 부침개 밑으로 깊숙이 넣고 뒤집으려는데 부침개가 그만 찢어지고 말았다.
“아, 찢어져 버렸네. 이거 그냥 먹어야겠슈.”
“그럴까요?”
정순 씨가 찢어진 부침개를 접시에 담았다. 싱겁지도 않고 짜지도 않았다. 모양은 중요하지 않았다. 창밖의 빗소리를 들으며 먹는 부침개 맛은 일품이었다!
“다희야, 내가 만든 거 맛있지?”
“어, 맛있네!”
옆에서 맛있게 먹는 다희 씨에게 정순 씨가 자랑하듯 물었다. 첫 번째 부침개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우리는 빈 젓가락을 들고 부침개의 맛과 서로의 식성에 놀라며 웃었다. 정순 씨가 두 번째 부침개를 뒤집었다. 이번에는 성공이었다! 우린 손뼉을 쳤다. 부침개 하나로 이토록 즐겁게 웃을 수 있다니! 이제는 비 내리는 날이 기다려질 것만 같다.
“막걸리도 사 올까요?”
“아냐, 부침개에는 사이다가 최고예유. 비 오면 또 만들어 먹어야지.”
정순 씨에게는 비 오는 날 부침개와 사이다를 먹었던 추억이 있는 듯했다. 정순 씨 의 앞으로의 삶은 먹고 싶은 음식이 생각날 때마다 스스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삶이었으면 좋겠다. 반찬 하나에 밥만 먹더라도 정순 씨 스스로 차린 밥상이면 좋겠다. 부침개 한 쪽이라도 만들어 나눠 먹을 이웃이 있으면 더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