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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집 Jul 25. 2023

인생 처음 사주 본 후기

이달의 운세는…

넷플릭스 <다크>


1. 요 몇 달간 넷플릭스 <다크>를 열심히 봤다. 독일의 작은 마을 빈덴에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33년 간격으로 시간 여행이 가능한 터널이 생기며 전개되는 이야기다. 올해로 치면 1990년이나 2056년으로 가는 식이다. 시즌을 거듭할수록 더 먼 미래/과거로 간다. 결국 시즌3을 보다가 하차했다. 갈수록 족보가 꼬이고 서사가 복잡해진다. 조상과 자손이 너무 살인하고 섹스한다;


2. <다크>를 보다 보면, 조급한 매일이 의미 없게 느껴질 때가 있다. ‘지금 아들이 실종됐는데 출근이 문제야?’ 조잡한 일상은 미뤄두고 미래의 운행을 알고 싶다. 33년 후까진 아니더라도, 앞으로 딱 10년이 어떻게 굴러갈지 누가 알려주면 좋겠다. 이번 달엔 난생처음 사주를 돈 내고 봤다. 동종업계 친구의 이직운을 맞춘 곳이다.


3. 나는 물이 전혀 없는 작은 나무와 같은 사주랬다. 말년으로 갈수록 인생이 좋아진다는 말엔 “보통 다들 그렇지 않아요? (생애주기 짬밥을 먹기 마련이니까…)”, 사막의 선인장 같다는 말엔 “안 좋은 사주 아닌가요? (누구는 물/햇빛/땅 모두 고른 꽃밭인데…)”라며 토를 달았다. 내 사주가 안 좋은 것 아니냐는 질문에 쌤은 드물게 정색했다.


4. “어떤 사주든 장단점은 있어요. 사주를 본다는 건 일기예보 보는 거예요. 비가 오면 우산을 준비하는 거지.” 지구에 나쁜 지리는 없다. 적도랑 남극은 나쁜 지리와 기후인가? 4계절 한국은 과연 좋은가? 다 거기 사는 인간들이 좋다 나쁘다 감정 섞어 판단할 뿐이다. 게다가 난 사막과 선인장이 좋다. (영화 <바그다드 카페>의 영향) 쌤은 물을 많이 마시랬다.


5. 재밌는 시간이었다. 나보다 20년 더 산 어른에게 고민을 물으면, 내게 필요한 조언을 과감하게 던진다는 점에서 유용했다. <혼자서 하지 말고 사람을 만나라/물이 부족하니 물을 건너 여행가면 좋다/너한테 물은 책과 학문이다> 원래 다 하려던 건데 사주가 그렇다니 말을 더 잘 듣고 싶다. 오행이란 건 인생을 비유하기 참 좋은 시어 같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같이.


6. 단호한 조언이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는다. 분명 의료서비스 업계에선 들을 수 없는 (하면 안 되는) 화법이다. 이반지하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작가는 의사에게 깁스를 풀며 이제 복싱해도 되냐고 묻는다. 보통 사람 같으면 안 되지 미친놈아 하겠지만 그 의사는 남달랐다. “권하진 않죠” 라이브를 들으며 깔깔 웃었다. 마약 해도 되나요? 권하진 않죠. 살인해도 되나요? 권하진 않죠.


7. 줏대 없이 귀 얇은 내게 ‘안 되지 미친놈아’ 라고 말해줄 사람이 가끔은 필요하다. 나를 모르는 사람이면 더 좋다. 우유가 신점을 추천했는데 솔깃했다. ‘얼마나 나를 혼내줄까?‘ 두근거렸다. 그날 우유랑 같이 우리 집에 온 지수는 명상을 추천했다. 왜 미래가 궁금한지, 그 마음을 들여다보라고 했다.


8. 미래를 왜 알고 싶었나? 미래를 몰라서가 아니었다. 너무 알 것 같아서 그랬다. 언제까지 이 팀에서 일할지, 무슨 일을 할지, 어디에 살지, 누구를 만날지… 내 30대가 대충 뻔해 보였다. 이번엔 ‘미래를 궁금해하는 마음’을 들여다본다. 진짜 마음이 보인다. 나는 변화를 원하는 사람이구나.


9. 을목일주가 정말 인생의 일기 예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우산을 쓰고 밖으로 나갈지, 집에 있을지 정하는 건 오늘의 나다. <변화를 만든 건 언제나 내 작은 실천이었다.> 마음을 들여다보고 얻은 이달의 운세입니다.







권하진 않죠
사주 추천해준 친구와 디엠
우유와 지수의 집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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