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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집 Feb 22. 2024

84번가의 롤모델


1. 제목만 보고는 보지 않았을 영화. 원제는 <84 Charing Cross Road download(1987)>. 그저 ‘체링크로스 84번지’가 제목이다. <84번가의 연인>이란 제목은 헤테로 로맨스 영화로만 보이지만, 이 영화는 사랑보단 우정에 가깝다.


2. 미국의 한 가난한 여성 작가 헬레인(앤 밴크로프트)과 런던의 마크스 서점 주인 프랭크(앤서니 홉킨스) 책에 대한 펜팔을 주고 받는 내용이다.  (물론 사랑일 수도 있지만, ‘연인’이라는 말로 규정할 필요는 없었다.) 또 이 우정은 미국의 헬레인과 영국의 서점 직원들 모두와 쌓는 우정이기도 하다…    


3. 한국어 제목 번역이 짜증났던 건 <우리의 20세기>도 있다. 원제는 <20th Century Women>. 1979년, 10대 소년 제이미가 세 명의 여성에게 인생과 사랑에 대해 배우는 영화다. 심지어 그 시절의 싱글맘 페미니스트 엄마가 주인공인데.. 쩝   


4. 아무튼 <84번가의 연인>은 헬레나가 중고 책을 저렴하게 구하기 위해 마크스 서점에 편지를 보내며 시작한다. 그렇게 20년 넘게 편지를 주고 받으며 책들을 배송하고, 헬레인은 명절마다 햄과 통조림이 꽉찬 소포를 마크스 서점으로 보낸다. (전쟁 이후 배급 제한을 받던 영국이 배경이다.) 그들이 편지를 주고 받는 사이 영국은 여왕이 즉위하고, 비틀즈가 데뷔하고, 미국 대학에선 흑인 인권 시위가 한창이고… 세계가 어떻게 변해도 굳건한 그들의 우정~    


5. 그 우정을 지켜보는것도 이 영화의 재미지만.. 나는 걍 헬레인을 그려내는 모든 장면 장면에 꽂혀 버렸다. 가난한 한 작가와 허름한 아파트먼트. 하지만 멋진 계절을 담을 창문이 있고 책장이 있고 위스키가 있고 타자기가 있다. 텔레비전이 각 가정에 보급되던 시절에 TV 프로그램 각본을 쓰고…    


6. 무엇보다 책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 보고 싶은 책을 얻기 위해 편지를 쓰는 사람. 형편 이상의 책을 사고 기뻐하는 사람. 계절에 맞게, 장소에 맞게 책을 휴대하는 사람… 알라딘에서 낼름 주문할 수 있는 내가 상상할 수 없는 낭만.    


7. 그리고 친구들과의 우정… 그의 우정은 작은 아파트에서도, 길거리에서도, 모르는 사람에게도, 바다 건너서도 이어진다. 텍스트에 파묻히고 살며 사람에 대한 호기심에 푹 빠진 삶~ 그게 바로 내가 살고 싶은 삶이네. 그래서 이 영화에 꽂혔다!


(24.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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