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 그리고 크리스티안 짐머만

그들의 '라벨 피아노협주곡 G장조'에 관하여

by Joe Han

토요일 오후 이태원 헬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다, 스피커에서 흐르는 '라벨 피아노 협주곡 G장조 2악장'을 듣고 기억에서 꺼낸 조성진, 그리고 크리스티안 짐머만에 대한 이야기.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뜨거운 클래식 연주자는 누가 뭐래도 조성진입니다. 지난 2015년 쇼팽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뒤, 그는 어마어마한 스타가 되었지요. 국내에서 열린 첫 독주회는 티켓판매 10분만에 매진됐고, 지난해 5월 통영국제음악당에서의 리사이틀 역시 1분여 만에 매진됐습니다. 다른 공연들 티켓도 채 10분을 넘지 않는 정도입니다. 이 정도면 클래식계의 아이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난 11월 조성진이 베를린필 & 사이먼 래틀과 함께 투어를 했습니다. 사이먼 래틀이 베를린필과 하는 마지막 여정에 조성진이 협연자로 함께 한 된 것인데, 원래는 중국의 세계적 연주자인 랑랑이 예정되어 있다가 그의 왼팔 부상으로 조성진이 투어 일부를 함께 하게 된 것입니다. 전에 조성진이 밝힌 그의 바람 중 하나였던 베를린필과의 공연이 이렇게 성사되었습니다. 그로서는 설레는 일일테지요.


우리나라 관객들에게도 설레는 일이었습니다. 11월 19일과 20일 그 투어가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렸는데, 그 중 19일 공연에 조성진이 무대에 올랐기 때문입니다. 이 공연의 티켓은 진작에 매진됐다고 합니다. 랑랑 대신 조성진이 무대에 선다고 발표되기 전에 이미 매진됐다고 하지만, 협연자가 바뀌고 난 뒤에 취소표라도 구하려고 문의하는 사람이 많아진 건 불보듯 뻔합니다.


사실 나는 사람들과 경쟁하며 티켓 살 생각은 잘 하지 않습니다. 인기 있는 공연이야 티켓이 일찍 동나기 마련이지만, 경쟁하듯 사이트에 들어가서 클릭질을 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경쟁에 참 소질없다는 걸 스스로 잘 알고 있기에... 나도 조성진의 연주를 직접 보고 싶은 건 사실이지만, 그 때가 지금은 아닌가 보다, 하며 스스로 달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연주자가 무대에서 선보일 곡이 무어냐에 따라 생각이 좀 달라집니다. 어떤 오케스트라가 이번에 내가 좋아하는 곡을 연주한다, 하는 정보를 접하면 대개 찾아가는 편입니다. 그런데, 이번 투어에서 조성진은 무려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 G장조를 연주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두번째 악장을 들을 때마다 가슴 뭉클해지는 바로 그 곡. 깊은 밤 대체 몇 번을 들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바로 그 곡.


뒤늦게 티켓사이트에 들어갔을 때에는 이미 늦었었습니다. 랑랑에서 조성진으로 바뀌기 전에 티켓은 이미 매진되었다니 당연하지요(원래 랑랑은 라벨이 아닌 '바르톡'을 연주할 예정이었습니다). 사실 일을 그만두고 잠시 쉬는 상태였기 때문에 아직은 비싼 공연에 갈 엄두가 나지 않았고, 그래서 요즘은 어떤 공연들이 있나, 하는 관심이 없었던 탓이 큽니다.


어쨌든, 이렇게 훌륭한 오케스트라와 연주자가 만나 내가 좋아하는 곡을 연주하는데 놓친 것은 참 아쉽습니다.음반가게에 들러 라벨 피아노 협주곡 G장조를 산 것은 그러한 아쉬움 때문입니다. 코너에 있던 마르타 아르헤리치와 크리스티안 짐머만 중 어느 것을 살까 고민하다가 짐머만을 골랐습니다. 음반에는 피아노협주곡 G장조 외에 왼손을 위한 피아노협주곡도 담겼습니다. 아쉬움을 달래려 산 CD지만, 오디오에 넣고 재생하니 잘 골랐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르헤리치가 연주한 라벨 피아노협주곡은 영상을 통해서도 여러번 듣고 보았는데, 짐머만의 연주는 처음입니다. 소리가 풍성하고 테크닉이 화려한 곡들보다 잔잔하고 소박한 곡들을 좋아하는 성향 때문에, 개인적으로 날이 서있는 타건보다 읊조리듯 섬세하고 나긋나긋한 타건을 좋아합니다. 그런 면에서, 적어도 이 곡에서는 내가 접했던 아르헤리치의 연주보다 짐머만이 더 섬세하고 우아하게 느껴집니다.


조성진의 예술의전당 공연 며칠 전 어느 늦은 밤에 유투브에서 알림 문자를 받았습니다. 이미 월드 투어를 시작한 베를린필과 조성진의 라벨 피아노협주곡 G장조 홍콩 연주가 업데이트 된 것입니다. 조성진이 그의 계정에 올렸습니다. 싱그러운 조성진의 해석을 들으니, 아마 서울 공연이 그와 꼭 같지는 않았겠지만, 역시 직접 들었다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성진의 연주를 직접 듣지 못했다는 아쉬움에, 그리고 이 음반을 잘 샀다는 만족감에 나는 오늘도 짐머만의 라벨 피아노협주곡 G장조를 듣습니다.



Note) 사이먼 래틀은 베를린필을 떠나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는 10월 런던심포니와 내한해 롯데콘서트홀에서 공연을 합니다. 이때 크리스티안 짐머만이 협연자로 함께 무대에 오를 예정이라고 하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다이어리에 미리 표시라도 해두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