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벨만 봐서는 절대 모르는, 망하지만 말아라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다.
예쁜 그림 앞에 뭐라고 알지 못하는 언어로 이름만 써져 있을 뿐이다. 이게 도대체 뭔데?
뒤를 돌려 봤는데, 웬걸 그저 식상한 한글 표시사항뿐이다. 이거 진짜 뭐지? 사 말아?
이런 당황스러움은 와인을 고르는 나 자신을 더 쫄리게 만들면서 이거 도대체 알지도 못하겠는 거를 내 돈 주고 사야 한다는 부담감을 갖게 한다. 나만 모르는 것인가 라는 민망함과 그래도 궁금한 호기심이 내적 갈등을 일으키는 상황을 나만 겪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게 만약에 컨벤셔널 와인이라면 우리는 그나마 뭐를 읽는 척이라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비록 다른 나라의 언어로 나열된 정보이지만 어렴풋한 기억으로 이거는 어느 나라 와인이고, 와이너리고 이거는 이름이고 이거는 포도 이름이고 이거는 알코올 도수이고. 오케이 여기까지는 일단 인지는 된다고 치더라도 문제는 그 단어들이 병 안에 들어있는 와인의 맛을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단은 뭔가 아는 단어인 소비뇽 블랑 이라던지 메를롯 이라던지 이런 게 보이면 뭔가 안도감이 생긴다. 그리고 백화점이나 마트 직원들이 붙여놓은 Sweet/Dry, Body, alcohol 그래프를 보고 모 대충 이러려니 라는 상상을 한다. 그다음에는 그냥 운이다.
그런데 여기서, 내추럴 와인 샵으로 들어가 보자. 그래 이거 한번 사보자 하고 내추럴 와인 샵을 들어가는 순간, 얼떨떨해지는 기분을 아마 한 번쯤 느껴봤을 것이다. 내추럴 와인의 라벨에는 심지어 그 어떤 정보도 나와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귀여워 보이는 예뻐 보이는 그림이나 눈에 들어오는 문구는 있는데, 심지어 유럽의 언어로 되어있을 경우, 그 문구가 무엇인지도 알 수 없는 경우는 너무 많다. 와인메이커들에게 왜 이 그림을 넣었는지, 왜 이런 이름을 지었는지 물어보면, 본인들이 와인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와이너리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생각인 경우가 많다. 또는 와인 맛을 표현하고 싶은 사람인 경우도 있다.
자, 다 좋다.
어쨌든 오늘 저녁, 실패할 수는 있지만 모르고 사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한 작은 팁을 공유하고 싶다.
1. 일단은 마음에 드는 라벨의 와인을 고른다.
일단 문제집도 풀기 전에 겉표지가 예뻐야 몇 장 더 열어보지 안 그러면 딱 수학의 정석 꼴이 날 수 있다.
그 두툼한 커버며 바탕 체인지 궁서 체인지로 굉장히 심각하게 써져 있는 수학의 정석 표지는 한숨이 나오게 한다. 내 눈에 보기 좋은 와인이 먹기도 좋다고 나는 생각하기 때문에 예쁜 라벨의 와인을 골라보자.
2. 와인의 마개를 확인한다.
요즘 펫낫 이라는 잔잔한 거품이 있는 와인들이 많은 찾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런 와인들의 경우, 많은 와인들이 맥주병과 같이 코로나 마개를 사용하고 있다. 이런 와인들은 병 안에서 효모가 자연적으로 만들어낸 탄산가스가 들어 있는 거품 감이 있는 와인이고 알코올 도수가 낮기 때문에 간단하게 즐기는 자리 나, 부어라 마셔라 하는 자리에 어울리는 와인이다.
일반 코르크 마개의 와인이라면 탄산 감이 없는 와인인 경우가 많으니, 내가 오늘 어떤 느낌의 와인을 찾는지 먼저 생각을 해보면 좋을 것 같다.
3. 어떤 글씨가 앞면에 있는지 찾아본다.
대부분의 와인들이 와인의 앞면에 생산자의 이름 혹은 와인의 이름을 적어 놓는다. 와인은 생산한 년도, 그리고 알코올에 대한 정보가 나와 있다. 와인의 이름에서 잘 모르는 글자들이 있다 하더라도 레드와인인지, 화이트 와인인지를 구분하는 말들이 써져 있을 수 있다.
4. 혹시 뒷면에는 뭐라고 쓰여 있는지 돌려본다.
앞면에 정보가 없을 경우, 뒷면을 살펴보면 조금 더 정보가 있을 수 있다. 어딘가에는 와인에 대한 정보가 분명히 있다. 그렇게 해야 와인이 상품으로써의 인정을 받고 우리나라까지 올 수 있다.
그리고 운이 좋으면 그리고 친절한 와인 생산자라면 어떤 포도로 만들었는지 설명해 주고 어떻게 만들었는지까지 설명해 주는 라벨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 그 나라의 언어로 써놨다는 것이 함정이다.
5. 직원에게 물어본다.
사실 이 방법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방법이고 내추럴 와인의 구매 방법이 컨벤셔널과 차이가 날 수 있는 이유이다. 위에 설명한 것처럼 컨벤셔널 와인의 경우 라벨의 형식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단지 유럽의 언어가 익숙하냐 영어가 익숙하냐 정도의 차이일 수 있겠다.
하지만 내추럴 와인은 상대적으로 정보가 부족하다. 또한 워낙 다양한 생산자들이 다양한 포도로 만들기 때문에 같은 포도라도 같은 지역이라도 다른 풍미를 가지고 있다. 이런 경우 가장 실패하지 않을 방법은 바로 이 와인을 파는 사람에게 물어보는 방법이다. 대부분의 내추럴 와인 가게들이 와인을 발주하고 구매하면서 시음을 하면서 와인의 맛을 소비자보다 먼저 느끼게 된다. 연애도 해본 사람이 잘한다고 (맞나?) 그들에게 쌓여온 와인에 대한 경험을 통해서 내가 사려는 와인이 어떤 맛인지 가장 정확하게 들을 수 있다.
사실 내가 앞서서 나열한 방법을 다 물어본다고 하여도 병을 열어보기 전까지는 무슨 맛인지 알 수 없는 것이 내추럴 와인이다. 병 속에 들어있는 와인을 예측하려면 와인이 생산된 지역의 특성과 그 지역의 포도들과 와인 양조에서 사용하는 여러 가지 테크닉들과 와인 언어를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한다고 해도 정작 내가 열어서 잔에 따라보고 마셔보기 전까지는 뭐라고 확신할 수 없는 것이 특히나 내추럴 와인의 재미있는 점이다.
물론 어플을 이용해서 맛을 확인할 수도 있고, 인스타그램에 있는 예쁜 사진들을 보고 예쁜 엽서를 사듯이 와인을 살 수도 있다. 하지만 요리조리 병을 돌려가면서 생각해 보고 와인을 판매하는 사람에게 직접 물어보면서 하나하나 알아가는 재미를 찾길 바란다. 그러면서 내가 고른 예쁜 와인에 대한 애정도 더 생길 것이다.
요즘 시대 와인은 조금 더 자연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만들어지고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는 마음이 그대로 담겨있는 와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구매하는 손님의 입장에서는 더 어렵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오히려 모두 다 같이 잘 모르는 라벨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오히려 더 솔직하게 병 안에 든 와인에 집중할 수 있다. 내추럴 와인이든, 컨벤셔널 와인이든 최대한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와인에 대한 경험을 즐겁게 하길 바란다. 그렇게 나의 맛을 찾아가면, 결국 그게 내가 와인을 고르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