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가 존재하지 않는 와인의 세계
이제 대한민국은 두 가구당 한 명의 신생아가 출산되면서 인구절벽을 앞에 두고 있고, 비혼주의자는 늘고 있고 심지어 젊은 세대의 70%는 연애를 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자, 그런데 나의 주변 친구들이나 지인들을 보면 이게 다 무슨 소린가 싶을 정도로 결혼정보회사에 등록하고 난임클리닉을 찾아 임신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적지 않게 보게 된다. 도대체 이 양극화되어 있는 현상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시사 프로그램에서는 오히려 비혼주의가 늘어나면서 결혼정보 회사를 더 찾고 있고, 그 이유는 본인의 선택에 실패하고 싶지 않아서라고 했다. 가입비를 내고 신원이 확실하게 보증되는 파트너를 만나서 결혼하는 것이 안전한 선택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결과라는 것이다.
무언가를 구매할 때도 포털 사이트를 통해서 제품을 알아보고 최저가를 확인하고, 리뷰를 검색해서 구매 결정을 하는 것처럼 연애도 마찬가지로 상대방을 서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정답을 찾아내려는 경향과 실패 가능성이 있다면 선택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현재의 이런 양극화된 현상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겠냐는 것이 프로그램의 기조였다.
내가 들이는 인풋에 대비해서 아웃풋이 타협가능한 정도가 나오는가, 이것은 가성비 즉 가격대비 성능의 개념과도 맞는다. 그리고 이것이 소비자의 심리에 중점이 되어 나타난 단어가 바로 가심비이다.
가성비: 소비자 혹은 고객이 지불한 가격에 비해 제품이나 서비스의 성능이 소비자나 고객에 얼마나 큰 효용을 주는지를 나타낸다. (위키피디아)
가심비: ‘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도’를 의미한다. 비용과 상관없이 만족스러운 것을 구매하는 소비 행태다. 가격 대비 성능 비율을 뜻하는 ‘가성비’에 반대되는 말로 사용되며, 성능보다 심리적 만족도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에서 차이를 가진다. (소비자평가)
그러면,
그렇게 해서 실패가 없는가?
와인이라는 상품은 어떻게 보면 참 재미있는 상품이다.
이게 뭐라고 국가에서는 국가의 주류산업과는 반대되는 방향인 사치품으로 인식하여 재수 없게 명절에 들어오는 화물에 대하여 더욱 꼼꼼하게 물품검사를 하고, 이제는 거의 모든 대륙에서 와인을 만들고 있다. 상품코드는 딱 하나인데 사실은 셀 수도 없이 많고 다양한 포도 품종과 파생되는 블랜딩으로 만들어지는 상품이 와인이다.
심지어 이제는 컬러도 점점 다양해져서 로제니 오렌지 와인이니 해서 구매자에게 끊임없는 혼란과 과제를 주고 있는 상품이다. 레드와인이라고 해도 만든 포도에 따라서 검붉은 레드냐 밝은 레드냐가 다르고, 화이트 와인이라고 해도 연한 초록색에 가까운 색깔이 나오기도 한다. 이렇게 종류가 많아서 아무리 아무리 공부해도 부족한데, 가격이 싸지도 않은 참 희한한 상품이다.
심지어 그 상품을 배우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자격증도 있으니, 뭐 돈 주고 사고자 해도 뭘 알아야 살 수 있는 그런 이상한 상품이다.
과연 이런 이상한 상품을 실패 없이 고를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하는 답은 ‘없다’ 이다.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와인 리스트를 읽을 줄 알던 모르던 가장 비싼 와인을 고르면 실패가 없을 것이다. 아니면 와인을 판매하는 사람에게 추천받을 수 있는데, 그것도 와인을 판매하는 사람이 와인을 잘 알고 있다는 가정하에 가능하다.
그러면 결국 일반 구매인이 생각하기에 와인은 넘어야 하는 허들이 너무 높고 많다. 그래서 가성비 와인이라는 단어가 시장에 나오기 시작한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 또한 문제는 도대체 결괏값이 뭔지를
구매자가 모른다는 것이다. 가성비에서 말하는 수치화된 성능과 같이 와인의 맛이 이런 건지 원래 이런 색깔인 건지 원래 이렇게 신맛인 건지 텁텁한 건지 쿰쿰한 건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그러면 반대로 가심비 와인이란 것은 존재하는가? 역시나 심리적 만족도는 지극히 개인적 경험이자 감정이기 때문에 어렵다.
그러면 여기에서 이미 답이 나온 것이다.
와인을 제대로 고르려면 지역, 생산자, 포도의 품종 등등을 알아야 하는데, 지름길로 가자니 측정이 불가능하거나 개인적 감성에 연관된 것이기 때문에 이 또한 지름길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결국 와인을 실패 없이 고르는 방법은 없는
것이다.
경험의 반경을 결코 불행을 만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는 지점으로 한정한다면 그것은 자신에게 가능한 행복과 쾌락의 반경을 한정하는 것이다. (우울한 날엔 니체)
와인을 만나고 선택하고 값울 지불하는 경험은 오롯이 구매자 본인의 것이다. 물론 어떤 때에는 맘에 안 드는 와인일 수 있고, 나랑 맞지 않는 와인일 수도 있고, 분위기나 음식에 맞지 않는 음식일 수도 있다.
와인 구매의 실패와 성공은 구매자의 경험과 입맛에 기준이 되기 때문에 나에게는 맛있는 와인이 다른 사람에게는 실패한 와인일 수도 있는 것이다.
우울한 날엔 니체를 쓴 발타자르 토마스의 글을 와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다른 사람을 통해서 들은, 유명하다고 하는, 비싼 게 맛있다고 하는, 어디 거는 중간은 간다더라 하는 좁은 반경으로 결코 꽝인 와인을 고르지 않을 것이라고 한정한다면, 와인이 가지고 있는 별과 같이 많은 이야기들과 포도품종을 알아가는 기쁨과, 온도가 변화하면서 느껴지는 아로마와 산미의 변주를 한정하는 것이다.
고통을 겪어내는 역량은 용기의 표지이며, 그에 따라서 힘의 표지가 된다. (우울한 날엔 니체)
알지 못하는 사람을 만나서 그 사람을 알아가고, 그러는 과정에서 나와 맞지 않는 부분을 발견하고 마음 아파하고 슬픈 이별을 거치는 과정은 용기가 필요하다. 그 용기 있는 과정을 통해서 새가 알을 깨고 나오듯 나 스스로에 대한 성숙한 생각과 세상을 보는 다른 관점들을 배우게 된다. 물론 이별할 수 있고 상처받을 수 있다. 하지만 내면의 힘이 없이 어떻게 거진 100년이 가까운 나의 삶을 오롯이 살아갈 수 있겠는가.
와인도 마찬가지이다.
큰 매장에 갈수록 유명하다는 와인이 많을수록 선택은 어렵고 돈을 버릴까 봐 무섭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그렇지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처음 말을 걸듯 친구가 소개해준 와인으로, 점원이 추천해 준 와인으로, 내가 알고 있는 작은 정보들로 여러 와인들을 경험하면 그것은 오롯이 당신의 힘의 표지가 되고 즐거운 와인 생활에 가까울 수 있다.
당신은 사람들이 당신에게 완전한 와인을 지정해 주기를 기다려야 할 정도로 순순히 따르는 구매자인가? 당신이 가지고 있는 용기로 실패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넓은 와인의 세계에 들어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