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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로라 와인 Mar 16. 2023

나의 존경하는 와인 생산자들에게

언제나 고마운 나의 친구들에게

그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는 하지만 이렇게 길게 나의 마음을 말하는 것은 처음인 것 같아. 이제 봄이 도착한 포도밭에서는 올해 농사를 준비하고 있겠지?


내가 가끔은 무심해 보일 수도 있지만,

나는 너를 하나의 와인으로 한잔의 와인들로 보지 않아. 너 자체가 결국 너의 포도밭이자 너의 유산이자 역사라는 것을 알고 있어. 그래서 마치 내가 각각의 와인에 집중하는 것 같지만, 사실 나는 너 자체에 집중하고 있어.


나에게 오는 한 병의 와인은 일 년 내내 너와 너의

가족들, 친구들 그리고 직원들이 고생해서 만든 결과물이라는 걸 알고 있어. 그게 힘은 많이 들지만 돈을 많이 버는 일도 아니라는 것도 알아.

그래서 너는 다른 작물을 기르기도 하고, 다른 일을 하기도 하면서 포도밭에 돈을 더 많이 들이고 천천히 꾸준히 양조장의 시설들도 갖춰나가고 있어. 그래수 너와 일 하면 일할수록 그 포도밭에 대한 이름을 존중하게 돼. 그리고 너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포도밭의 퍼즐이 와인으로 맞춰지는 일에 내가 수입사의 위치에서 함께 할 수 있어서 참 기뻐.



나는 아주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처럼 자주 너를 만나지는 못하지만, 가끔은 기분이 상할 때도 있고 짜증을 부릴 때도 있지만, 눈이 오면 눈이 와서 걱정 비가 오면 비가 와서 걱정, 가뭄이 있으면 포도나무를 바라보는 너의 마음이 얼마나 애가 탈까 걱정이야.

벌레가 포도나무를 타고 기어올라 포도알을 다 집어삼킬까 봐 걱정이고, 그 태양아래에서 일 년을 날려버린 너의 마음을 걱정하고 있어.


내가 너를 찾아간다는 것 그 자체가 우리에게 암묵적인 비즈니스이고, 우리는 각종 서류들을 사이에 두고 있는 관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겁게 맞아주고 신경 써줘서 고마워. 우연히 로마 길거리에서, 친구네 가게에서, 누구네 식당에서 너를 만났을 때, 크게 내 이름을 부르면서 인사해 줄 때마다 너라는 사람을 알게 돼서 참 기쁘다는 생각을 해.


내가 돈을 많이 벌면 그때는 내가 가는 게 아니라 너를 서울로 데려와서 망원시장도 데려가고 경복궁 고궁박물관도 보여주고, 우리 집에도 데려가서 엄마밥도 먹이고 싶다. 여러 가지 막걸리, 청주, 소주 다 풀어놓고 마셔보고 김치도 종류별로 먹어보자.

내가 진짜 마시모 데리고 여기저기 많이 다녀서 서울투어 코스는 진짜 빠삭해! 그리고 서울에서 이탈리아말로 말하는 건 마치 아무도 모르는 비밀암호로 말하는 것 같아.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


나는 가끔은 마시모 뒤에 숨어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기도 하고, 실없는 농담을 하거나 애들 크는 이야기나 너네 집에 있는 당나귀나 흑돼지 이야기를 하기도 하지만, 모든 일의 앞에, 모든 책임의 앞에 항상 내가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더워지는 지구환경 속에서 앞으로 와인을 만드는 과정은 더 어려워질 것이고, 와인 생산 비용은 더 커질 거야. 경기는 점점 어려워질 것이고 나도 더 정신이 없어질 것 같아. 하지만 그 모든 일의 가운데에 네가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아무튼간에 여기 일이 좀 마무리되면,

너네 집에 가서 별보고 당나귀 만지면서 수다나 떨자.

그러니까 앞마당에 의자하나만 더 놔죠!


나에게 와줘서 고마워.

나에게 너의 우주를 허락해 줘서 정망 고마워!

우리 꾸준하게 오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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