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하는 인간으로 살기
어느 날 매장에서 손님이 하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손님들은 모두 간축가들이었고, 한분은 나머지 두 명을 가르친 교수님이었다.
요즘은 글을 안 써, 읽지도 않아.
유튜브를 보면 금방 습득할 수 있으니까
글 쓰고 기록하는 게 없어졌어.
그래서 사유가 없어, 결과물이 아쉬워.
교수님은 한참 와인을 드시면서 말씀하셨다.
나는 건축가가 참 멋진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디어를 구체화하여 사람이 지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직업이다. 그런데 그 공간을 만들 때, 예술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공학적이고 물리적인 부분이 필요하다. 사람이 지낼 때 문제없는 공간을 설계하여 시공하여 사고 없이 지낼 수 있으려면, 보이는 것 이상의 수고와 노력, 두뇌, 숫자, 공식, 프로그램등 ㄱ정말 많은 공학적 요소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것이 잘 진행되어야 건축가가 생각하는 구상이 실상이 된다.
나는 대학을 공대로 입학했다.
사실 공대는 점수 맞춰서 간 학부였고, 그중에서 건축학을 선택한 이유는 사실 이제 기억도 안 난다. 하지만 그 안에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가 강하게 느낀 것은 진짜 끊임없는 질문과 답을 향한 끝도 없는 과정이었다.
교수님은 “왜 그렇게 생각하지?”라는 질문을 정말 많이 했다. 왜 그 위치에 그 창을 넣었고 그게 그 안에 사는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생활의 동선과 건물의 운영면에서 가능하고 효율적이면서도 미학을 가지고 있는 설계인지 끊임없이 질문을 받았다. 질문을 받고 대답을 못하거나, 대답을 하여도 부족한 부분은 수정하면 되지만, 최악은 “그냥요”였다.
아무 이유가 없이 그냥 예쁘니까, 그냥 유행이니까, 그냥 시공비가 저렴하니까, 그냥 건축주가 원하니까라는 것은 사실상 아무런 이유가 되지 않았다. 최종에 가서는 당연히 건축주가 원하는 방향으로 최적의 비용에서 만들 수 있는 아름다운 건축물을 만들지만, 그 모든 과정에서 건축가가 갖는 사유의 결과물 즉, 논리적이고 개념적 이유가 필요했다.
왜 이 와인이어야 하는가,
왜 알로라 와인 이어야 하는가
왜 나여야 하는가에 대한 이유가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가지들을 이어나갈 수 있는 토대가 된다.
“왜?”가 사라지면 그냥 멋지니까 그냥 유행이니까 그냥 돈 많이 번다니까 하는 수많은 직업 중에 하나가 내가 하는 일이 되어버린다.
처음에 점수에 맞춰서 공대에 간 것처럼 나도 왜 내가 와인수입사를 하게 된 것도 시대의 흐름에 맞는 선택이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한 나에게도 분명한 이유는 있다. 모두가 돈을 많이 벌고 많이 쓰던 소위말해 코로나 특수 때에는 깨닫지 못했던 “왜”라는 주제를 이런 내수불황이 돼서야 나는 조금씩 스스로 다시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