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무비패스, 2019년 7월 9일
어려운 세상일수록 가볍게, 로코의 매력
영화는 언제나 개인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세상에 대한 다차원적 성찰이 있어야 할까? 생각보다 사람들은 그런 것에 쉽게 지치고 피로해진다. 또 언제나 인상 찌푸린 채 진지한 논의만 한다면 세상은 너무나 재미없고 따분하다. 때문에 진지하고 영화적, 사회적 의미가 깊은 영화들 속에서 코미디 영화가 흥행을 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무거운 영화들이 극장판을 점령할수록 사람들은 좀 더 가볍고 생각 없이 웃을 수 있는 '팝콘' 영화를 선호하기 마련이다. <롱 샷>은 그 틈새를 노리려 한다. 잘 만든 로맨틱 코미디, 이 영화를 설명하는 데에는 딱 이 한 마디면 충분할 것 같다.
많은 로맨틱 코미디 영화가 그렇듯 '롱 샷'의 스토리는 단순하다. 어린 시절 베이비시터였던 누나가 대선 후보로 나타나고 돌봄을 받던 주인공은 해직 기자로서 대선 후보인 누나의 연설문을 작성한다. 물론 우.연.히. 같이 일을 하게 된 두 사람은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게 되고 결국 우여곡절 끝에 사랑도, 대선도 성공하게 된다. 가벼운 조크와 빠르게 쳐내려 가는 전개 덕에 '롱 샷'은 누가 봐도 재밌게 볼 수 있는 영화가 됐지만 뭔가 찝찝함이 남는다. 입안 가득 찐득함을 느끼려 먹은 초콜릿 안에 민트가 들어가 있는 기분이랄까. 음식을 먹으면서 양치질하는 기분... 의 원인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잘 만든 로코에 풍자 끼얹기
풍자를 통해 어떤 단편적인 문제를 사회적 문제로 끌어들여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관객이 풍자된 장면을 보고 웃을 수 있는 건 그 안에 들어있는 사회적, 개인적 모순을 캐치했기 때문인데 그런 풍자가 잘 먹혀들어갈수록 풍자가 된 사회문제는 점점 위상을 갖게 된다. 하지만 실패한 풍자? 이야기를 방해할 뿐이다.
어떤 일이든 여러 가지를 다 잘하려 하면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개그콘서트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때가 떠오른다. 정치가 개그의 소재로 유난히 많이 사용되던 그때, 초반만 하더라고 그건 풍자고 해학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개그를 핑계로 정치 발언을 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느끼기에 개그맨의 정치 발언은 당장은 통쾌할 수 있었으나 더 이상 웃기진 않았다. 나는 개그콘서트가 그 이후로 점점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정치를 풍자하지 못해서가 아닌 정치를 이야기해서. '롱 샷'이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려 하고 있다. 명분이 없는 풍자가 영화 곳곳에서 이질감을 준다.
만들어진 대통령, 여성은 어디에
영화에서 나오는 풍자의 목적은 명확하다. 여성인권신장. 노골적으로 여성이 받는 차별을 드러내고 그것을 희화화시킴으로써 불쾌감을 유발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사랑과 일을 모두 쟁취한 이 시대의 여성상을 보여줌으로써 그 불쾌감을 해소하려 한다. 하지만 이런 점에 대해선 정말로 되묻고 싶다. 정말 저게 여성인권신장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럴 수도 있다. 이게 로코가 아니라면. 그리고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모든 일이 잘 풀렸습니다 같은 동화를 만들지 않았다면. 여기서 사용된 풍자는 사실 살짝 비튼 클리셰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어떻게든 클리셰가 아닌 것처럼 보이고 싶어 하는 일련의 장면들은 인위적이고 작위적으로 보인다. 이렇게 풍자를 더해 여자 주인공의 성공 신화를 만들어주려다 보니 남자 주인공으로 대변되는 또 다른 사회적 갈등 요소, 인종차별부터 정치적 편향성, 반기독교적 성향까지도 소모품으로 전락해버린다.
사실 여기서 중요한 건 여성과 남성의 문제가 아니다. 난 그저 재밌게 로코를 보고 싶었을 뿐이다. 전체를 이끄는 가벼운 조크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스토리 정도였다면 정말 재밌는 영화로 남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여자 대통령이 자신에게 지지를 보내준 전 대통령을 욕하고도 대통령에 당선된 것도, 남자 주인공의 우발적이고 기이한 행동도 모두 하나의 시트콤으로 볼 수 있었다. 진정 영화의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묻고 싶다. 웃겨야 하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사회 문제를 이야기하는 영화가 있는 것이다. 서로의 다른 가치를 억지로 이어려 하면 이런 불상사가 생기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