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질도 하루아침에 갑자기 생길 수 있습니다. 혈전성 치핵 극복기
24주, 괌으로 떠난 태교여행, 유일한 방해꾼은...(ㅠㅠ)
25주, 내가 치질이라니...! 극강의 고통 혈전성 치핵
치질, 그 고통의 시작은 2주 전인 23주부터였다. 분명 추석 연휴 전까지는 별 문제가 없었다.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날, 나의 Don't go에 심상치 않은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저 차를 오래 타서, 오래 앉아있어서 잠시 찾아오는 고통일 거라고 생각했다. 며칠 더 고통이 지속되다 보니, '아, 내가 요즘 많이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나의 환부는 심상치 않았다. 24주부터는 속옷에 피가 묻을 정도로 악화되었고, 피가 묻는 것은 시각적으로 충격이지만 무엇보다도 통증이 너무 심했다. 임산부가 사용해도 된다는 푸레파인 연고가 마침 집에 있어서 조금씩 발라보았는데도 전혀 차도가 없었다. 약간의 걱정을 안고 우리는 여행을 떠나야 했다.
그리고 무사히 여행을 다녀온 뒤, 나는 바로 항문외과로 향했다. 차로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인터넷 후기를 열심히 찾아보아 명의, 의느님이라고 불리는 선생님이 계신 병원을 찾았다. 임신 사실을 알리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언제부터 통증이 시작됐는지, 그전부터 치질의 낌새(?)가 보이진 않았는지, 변비를 겪고 있는지 등등을 물으시다가, 내가 피가 난다고 하니 대장암 가족력도 물었다. 의사 선생님이 육안으로 환부를 검사한 뒤 내려진 나의 진단명은 혈전성 치핵.
치질은 항문에서 발생하는 질환을 두루 말하는 것으로, 치핵, 치루, 치열을 모두 포함하는 단어이다. 보통 흔하게 발생하는 치핵을 치질로 알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치질은 더 넓은 의미를 일컫는다.
치핵: 항문의 안쪽과 바깥쪽에 '정맥 다발'이 있는데, 이 정맥 다발에서 발생하는 혈관 질환
치루: 항문과 항문 주변에 염증이 생기고, 이 염증으로 인해 항문 주변에 또 다른 길이 만들어진 것
치열: 항문에 상처가 생긴 것
'직장 정맥총', 직장의 끝에 정맥이 그물처럼 모여있는 곳이 있는데, 이 정맥이 늘어나게 되면 치핵이 된다. 그래서 컨디션에 따라, 혈액순환 정도에 따라 늘어난 치핵이 줄어들기도 하는 것이다. 치핵은 발생하는 위치를 기준으로 내치핵, 외치핵으로 나뉘고 치핵 안에 들어있는 건 대부분 혈관이지만 혈전이 차는 치핵도 있다(이것이 바로 내가 걸린 것).
외치핵과 내치핵은 항문의 치상선을 기준으로 나누어 진단하며, 두 가지가 복합적으로 생기기도 한다. 단독으로 있는 외치핵은 수술을 바로 하지는 않고, 보통 보존적 치료(약물치료)를 먼저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내치핵은 1~4도로 기수가 구분된다. 주로 내치핵은 3기가 넘어가면 보존적 치료로 호전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수술이 권유된다. 내치핵은 일반적으로 통증이 없는데, 통증이 있고 피가 난다 싶으면 4기인 경우가 많다.
나 또한 통증이 심하고 피가 나기 때문에 비가역적인 상태라는 4기인 줄 알고 아주 심란했었다. 출산 이후에 수술을 해야 하는 것인가 걱정이 많이 됐었는데, 난 외치핵 중 혈전성 치핵에 해당하여 불행 중 다행이었다.
혈전성 치핵은 피가 굳어서 생기는 '혈전'이 생긴 치핵이고, 주로 바깥에 생기므로 혈전성 치핵을 외치핵과 동일하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혈전성 치핵은 혈관질환은 아니기에 내치핵과 치료방법이 다르다. 가장 다른 점은 혈전성 치핵은 무지 아프다. 단단한 혈전이 앉을 때마다, 혹은 변을 볼 때마다 주변 조직을 누르기 때문에 아주 아프다. 그래서 가장 먼저 느끼는 증상이 통증이고, 그 안에 덩어리가 터져서 피가 나오기도 한다.
혈전성 치핵은 항문에 힘을 많이 줬다거나, 술을 먹었다거나, 변비가 있어서 화장실에 오래 앉아있었던 경우 발생하며, 진행 속도가 아주 빠르고, 하루아침에도 갑자기 생길 수 있는 질환이기에 몇 달에 걸쳐 점차적으로 발생하는 내치핵과는 여러모로 다르다.
치료법은 보통 혈전성 치핵 덩어리 자체를 제거하는 간단한 수술로 해결할 수 있고, 작은 경우에는 약물로 치료하기도 한다. 수술 자체는 아주 간단하고 짧은 시간이 소요되어 내가 방문했던 의사 선생님께서는 그 주수라면 수술을 해도 무방하긴 하다고 하셨다. 그러나 아무래도 임신부에게 수술을 적극 권하기는 어렵고, 혈전이 시간이 지나 작아지기도 하고, 고인 피가 다 빠져나가면 나아지는 경우도 있다고 하여, 진단만 받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오는 길에 좌욕기를 쿠팡으로 주문해 매일 아침저녁으로 좌욕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임산부 치질을 폭풍 검색해 관련 정보를 찾았다. 역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인 '우리동네 산부인과 우리동산'에 치질 컨텐츠도 있었다. 해당 영상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임신을 계획했다면 임신 전에 항문 검진을 받아 3기 이상이라면 수술을 미리 받는 것이 좋다.
2기 정도라면, 약물치료와 보존요법으로 최대한 버텨보다가, 임신 중에 커진 경우 좌욕과 연고로 최대한 버티다가 출산 후 수술한다.
'임신하면 어차피 치핵이 악화되는데 뭐하러 임신 전에 치핵 수술을 하나?'라고 할 수 있지만, 임신하고 나서 악화되면 손쓸 수 없기 때문에 미리 수술을 권한다.
항문외과를 다녀온 이후 아무런 처치나 처방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좌욕뿐이었다. 좌욕은 체온 정도의 따뜻한 정도의 물에 (쑥, 소금 등 아무것도 넣지 말고...) 5분 정도 해주는 게 좋은데, 이 또한 과유불급이라 오래 앉아있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좌욕을 한 이후에 찬 바람으로 건조를 잘해주는 것이 좋다.
나는 아침에 보통 일어나던 시간보다 10분 더 일찍 일어나 좌욕을 꼭 5분간 했고, 시간이 되면 퇴근 이후 2번, 안되면 자기 전에 1번이라도 꼭 했다. 그렇게 일주일간 지속하니 출혈이 멎기 시작하고, 통증이 줄어들더니 증상이 거의 없어졌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완화되었다.
치핵은 자연 치유라기보다 현상 유지가 되는 것이라던데, 현상 유지만 되더라도 임신 기간 내내 안심이 될 것 같다. 부디... 그 고통을 다시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임신기간 중 느꼈던 고통 2위(역시나 1위는 입덧)가 될 만큼 너무 고통스러웠다. 치핵으로 고통받는 임신부 여러분들... 좌욕 is number 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