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를 다시 시작하며.
단조로운 일상을 보내며,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곤 한다.
세상에 내가 건네고 싶은 이야기는 많다. 그러나 내게 주어진 일들을 잘 하는게 먼저이지 않을까 싶어, 하고 싶은 말들을 맘 속 저 깊이 꾹꾹 눌러담았더니 이제는 가끔 내가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었더라.. 라며 뭔가 머릿속이 맹-하고 까마득해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이야기는 꼭 이 세상에 던지겠다'며 패기같은 치기가 가득했는데 그러한 집착, 갈증 모두 내 안에선 많이 옅어지고 말았다. 독기가 빠졌다란 말이 적당한 것 같은데.. 그럼에도 투머치토커이자 말많은 엔프피로선 마음깊이 말을 곱씹는 일이란 난이도 상, 곤욕스러운 일이긴 하다.
나의 삶은 어쩐지 전보다 평안하고 평화로워졌다. 아니, 어쩌면 나 스스로 평안하려는 마음을 놓지 않고 발버둥친 끝에 터득해낸 삶의 방식이자 모양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평화롭다 못해 단조롭기에 그지 없는 서른 넷의 일상. 누군가는 팔자 좋은 소리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나는 이렇게 별일이 없어도 되나 싶어 되려 불안해지기도. 사람은 적당히 불안하고 적당히 강박을 갖고 또 적당히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야 발전을 한다라고 믿는 나로선 이런 평화로운 일상이 뭔가 달가울 수 만은 없다. 이런 게 성취나 성과에 중독된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를 사는 인간 군상 중 하나이자 전형인가 싶어 왠지 반성하게 되기도 하지만. 그렇지만 그렇기에 그런 사람들은 성향 상 결과적으로 많은 걸 이루고 누리며 살기도 하는 건 맞으니까.
맹랑하게 살아왔지만, 나는 의외로 자기확신이라는 것을 가져본 적이 없다. 늘 의심하고 물음을 품었다. 뭔가 타인으로부터 확인받고 인정받아야만 겨우 그 의심이 조금 잦아들곤 했다. 잘하고 있는건가. 진짜 잘하고 있는건가. 사실 30대 초반까지는 그러한 성향이 삶을 살아가고 방향을 구축하는데 분명 도움은 되었던 것 같지만, 이제 30대 중반, 또 후반을 보며 나아가는 삶에선 어떠한 외부적 조건 달성을 통해 얻는 확신을 맹신하는 것보단(물론 이것도 중요하지만) 스스로 정말 나 자신을 확신하는 법이 필요하구나 매우 느끼며. 자기확신. 그렇다. 나 스스로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자긍을 느끼고, 긍정하며 진정한 보람과 가치를 느끼는 일. 그게 매우 필요한 거였다.
아무튼 이건 내 인생, 나로선 굉장히 큰 깨달음. (난 여전히도 이딴 깨달음에 집착하고 있다ㅎㅎ 하하 즐거워.) 언제나 나를 계속 의심하고 더 잘해야한다 채찍질만 했던 것 같은데 더이상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겠다 느낀 계기가 사실 있다. 그건 바로 엄친딸의 존재. 의사라는 멋진 직업에 더해 복싱대회까지 나가 상을 타고 기사에도 나오며 여가까지 멋지게 즐기는 내주변 엄친딸 끝판왕. 질투나 뭐 그런건 엇비슷할 때나 느끼는 거고. 맘 깊이 참 멋지단 생각을 했다. 와 그렇게 멋지게 사는 사람이 가까이에 있다니 기쁘다란 생각도 했다. 그러면서 좀 나 스스로 나를 굉장히 대단한 위인으로 여기는 건 매우 우스운 일이다란 객관화가 되면서, 나의 하찮음을 애정하고 난 그냥 나의 행복을 추구하는 안분지족형 미물이 되리다 다짐할 수 있었다고나 할까. 마음이 편-안-해지더라. 우리 엄마, 최여사는 늘 나를 대단하게 키워내고 싶어했는데 엄친딸이란 그정도는 되어야 되는 거였다. 난 그냥 팔자좋은 그림쟁이 정도로 살래 엄마.ㅎㅎ
예전엔 부모 포함 주변에 신세지고 민폐끼치는 것이 너무 싫어서 벽을 한껏 세우고 날을 잔뜩 세우며 살았는데. 그런 것 치곤 난 너무 주변의 도움과 신세를 많이 지며 살더라. 그걸 인정하기로 했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주변의 도움을 받고 사는 나의 능력부족에 포커스하기보단, 그 도움을 감사히 여기며 도움 잘 받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훨씬 편안하구나라는, 진정한 속세인의 깨달음이 완성 되어서 일지도 모르겠지만. 감사함 속에 나도 주변에 넉넉함 베풀고 살면 되지 않겠나 뭐 그런 생각. 너도 편하고 나도 편하고. 그렇게 살아가면 좋겠다.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봐야 직성이 풀리던 나는 이제는 그렇게 변했다. 고생하기 싫다. 힘들고 싶지 않다. 여유롭고 넉넉함 속에서 좋은 마음 품고, 넘지 말란 선은 넘지 않으며 그렇게 나를 지키며, 주변을 지키며 살아가고 싶다. 이렇게 나도 변해간다.
그래서 글을 써야겠다 마음을 먹었다. 비록 속세를 살지만 야박하진 않고 싶기에.
이런 생각도 해보았다.
우린 왜 일기를 써야할까?
결국 잘 살고 싶은 마음을 기록하는 일인데,
또 아이러니하게도 이 잘 살고 싶은 마음이란 것도 욕망 중 하나여서, 보통 욕망이 본인이 통제할 수 없는 수준으로 커지면 인간은 보통 실수를 한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스스로 가다듬으며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함이 아닐까 싶고. 즉, 잘 살고 싶은 마음과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을 잘 다듬기 위함이라고 보고 싶다.
누구나 잘 살고 싶고, 또 누구나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
나 자신의 그런 욕망을 인정하고 이해할수록 마음은 세상의 많은 것들에 조금 더 너그러워진다.
이 너그러움은 '나는 좋은 사람'이어서 오는 자기만족 같은 게 아니라, 그냥 내가 많은 것들을 받아들임에 편해짐을 의미하기도 하고. 나 좋자고 하는 일이란 소리다. 내가 좋아야 너도 좋다. 난 뭐든 그렇게 믿는다 대충.
그래서 나는 다시 일기를 써볼까 한다.
예전엔 내 마음의 응어리나 혼란, 스스로를 할퀴는 것들을 토해내고 배설하는 느낌이었다면 이제는 조금 더 성숙하게 마주해보는 것이 목표. 구체적인 다짐이라면, 글을 마주하는 순간 만큼은 '좋은 마음'을 가지고 쓰자는 것. 그리고 나의 잘살고 싶은 마음과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을 기록하는 일이 누군가의 비슷한 욕망에도 도움이 되길 바라며.
한동안은 글이 참 쓰기 싫었는데, 최근 다시 글을 쓰고 싶게 만들어주신
책 <나의 먹이>의 들깨이름 작가님께 심심한 감사함을 바친다.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