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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i Nov 22. 2022

알몸사진을 찍어 보았다.

식단·운동 하나도 없이 "바프" 찍는 법

‘바디프로필’을 찍었다.


단 한 번도 운동하지 않았고, 먹고 싶은 걸 참은 적도 없었다. 남들이 ‘바프’를 찍기 위해 들이는 수고와 스트레스를 ‘요만큼도’ 겪지 않은 채 사진을 찍었다. 어떻게 했냐면, 그냥 찍었다. 있는 그대로, 지금 이 상태로.





바디프로필 문화


근 몇 년 사이 일반인이 스튜디오를 빌려 전문가적 사진을 찍히는 문화가 유행하고 있다. 일반인 스냅, 일반인 화보 같은 유행의 시작에는 ‘바디프로필’이 있었다. 바디프로필이란 몇 개월 간 ‘계획적으로’ ‘체지방을 제거한’ ‘근육질의 몸’을 ‘만들어’ ‘건강미’를 강조한 몸 사진을 찍는 것이다.


‘일생에 한번 쯤’ 완벽한 몸을 가져보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다. 지방에 뒤덮여 있는 지도 몰랐던 자신의 복근과 조우해보고 싶지 않은 사람도 없다. (거의) 모든 헬스장에선 ‘바프반’이라는 코스 상품을 만들었고, 많은 사람들이 트레이너의 체계적인 운동 레슨과 식단 관리, 멘탈을 다잡을 ‘잔소리’에 기대 바프 도전에 뛰어들었다. ‘속성 바프반 N기, PT+헬스장 이용료+라커 대여비 포함 3개월 NNN만원’ 따위의 전단지에 모두 익숙하리라 믿는다.


‘바디프로필을 찍겠다’는 다짐은 ‘다시 태어나겠다’는 말과 비슷하다. 삼시세끼 그램(g)수에 맞춰 음식을 챙겨 먹고(심지어 단백질과 야채가 포함된 질 좋은 식사는 비싸다), 시간을 쪼개 적어도 2시간 이상 매일 헬스장 출석을 해야 하며, 식단 관리를 위해 사회적 교류까지 제한해야 한다. ‘나 바프 준비 중이라 약속 못 나가’라는 말이 이젠 익숙해진 것이다.


그래서 난 ‘바프 성공자’들에 대해 무한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들인 시간과 재화, 특히 식이조절에 대한 인내와 고통은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나는 인생에 단 한번이라도 자신의 몸에 대한 ‘극악의 한계’를 경험하고 ‘극복’해내는 업적을 세운 그들에 박수를 보낸다. 그 모든 근력운동과 식이조절에 실패했던 사람으로서 더 진심을 다해 말이다.





바디프로필의 뒷면


하지만, 그럼에도 난, (요즘의) 바디프로필 문화를 해악이라 생각하는 편이다. 이것은 ‘유해'할 때가 많다.


[첫째. 사진의 선정성]

이유 몇 가지가 있다. 첫 번째, 사진의 선정성이 점점 높아진다. 운동을 열심히 해 성취한 몸의 근육보다 성적 대상화를 의도한 야한 옷과 포즈의 비중이 더 늘어났다. 바디프로필 촬영 전문 스튜디오가 늘어나면서 경쟁력을 위해 점점 다양한 컨셉을 상품화했고, 이에 호응하는 소비자도 많아졌다.


바디프로필이 몸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본질을 차치하고도 필요 이상으로 선정적인(어떤 밈의 말처럼 “겨우 중요 부위만 가리는”) 의상이 유행한다. 빨간 배경에 망사스타킹을 신고 생크림을 찍어 먹는 컨셉을 찾기는 생각보다 쉽다. 같은 티팬티를 입더라도 다리를 벌린 채 엎드려 엉덩이골 사이를 강조한 사진과 꾸준한 운동으로 발달한 둔근(엉덩이 근육)에 집중한 사진은 그 의도 자체가 너무나 다르다. 어느 샌가 바디프로필은 멋진 몸, 노력한 몸을 자랑하는 것보다 이성을 유혹할 만한 ‘섹시한 몸’을 자랑하는 게 더 우선시 돼버렸다.


[둘째. 가슴 성형]

이를 방증하는 현상이 있다. 바로 바디프로필을 위한 가슴 성형 수요가 늘어났다는 것. 바디프로필은 근육을 더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체지방을 극단적으로(10% 미만으로) 줄이는 게 관례다. 탄수화물과 지방을 제한한 식사를 위주로 체지방률을 줄이면, 대부분의 여성들은 ‘필연적으로’ 가슴이 작아진다. 가슴이란 신체 부위는 지방 덩어리기에 당연한 일이다.


섹시한 몸을 위한 위의 이유 때문에 몇몇 여성들은 가슴 성형을 강행한다. 가슴살이 쪽 빠져버린 몸에 볼륨을 채우기 위해, 바디프로필이란 일생일대의 순간에 대미를 장식하기 위해 신체 성형을 감내한다. 여기에는 당연히 재화와 건강에 대한 위험이 걸려 있다. 많은 성형외과들이 ‘바디프로필 가슴 성형’을 상품화한지 오래다.


[셋째. 식이장애]

마지막으로 내가 가장 염려하는 것. 식이장애다. 바디프로필은 획일적인 식단을 추구한다. 저탄수화물 고단백질의 ‘클린clean’한 식단을 몇 개월 동안 성실히 반복해야 한다. 매일매일 ‘똑같은’ 메뉴를 먹어야 하는 삶, 자극적이고 감칠맛 나는 것을 먹지 않고 ‘참아야’ 하는 건 무척이나 괴로운 일이다.


그래서 바디프로필을 촬영하고 난 사람들은 ‘입이 터진다.’ 그동안 먹고 싶었던 걸 이제야 잔뜩 먹는다는 뜻인데, 이때 식이장애가 발생하는 사람이 많다. 처음은 간만에 맛본 자극적인 음식(특히 당과 탄수화물)에 흥분해 배가 찼는데도 쉴 새 없이 음식을 섭취한다. 과도한 양의 음식을 쉬지 않고 먹고 난 후엔 겨우 뺀 살이 다시 찔 거란 불안감과 죄책감이 엄습한다. 충동적인 폭식과 초절식을 반복하는 경우가 잦아지고, 종국엔 그 포만감을 이기지 못해 억지로 구토를 하는 경우까지 악화된다. ‘억지로 식욕을 거세했던 경험’은 식이장애를 불러오는 최적의 조건이다. 특히 지금처럼 비정상적으로 많이 먹는 것을 선망하는 요즘 시대엔 더욱 말이다.


결과적으론 ‘건강한 몸’을 가져보기 위해 바디프로필을 준비하다 ‘건강하지 않은 몸’ 혹은 ‘대상화된 몸’, 그리고 ‘(정신적으로) 망가진 몸’을 갖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나는 위의 이유를 들어 바디프로필 도전자들을 존경하지만 그 문화에 대해선 부정적이다.





바디프로필 준비와 촬영


그래서 ‘이런 바디프로필’도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성적 대상화되지 않고 식이장애를 유발하지 않는 바디프로필. 정말로 내 ‘몸’에만 집중하는 바디프로필.


운 좋게도 지향점이 맞는 사직작가님을 만났다. 멋진 포트폴리오 때문에 팔로우하고 있던 분의 계정에서 ‘누드 촬영’이 가능한 모델을 찾는다는 글을 보았다. 사실 처음엔 남자라고 예상해 (내 모든 걸 '깔' 각오로) 조심스레 연락했으나 ‘운 좋게도’ 여자 작가님이셨다. 컨셉에 대한 시안과 촬영 날짜, 대여할 스튜디오를 상의한 뒤 만나게 됐다.


호리존(스튜디오에서 촬영이 진행되는 공간)에 들어선 내 몸의 상태는 어떠했느냐. 바디프로필적으로 따지면 ‘아예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였고, 말 그대로 표현하자면 ‘그냥 집에 있다 그대로 나온’ 상태였으며, 내 기준으로 말하자면 그 어떠한 ‘고통’도 겪지 않은 상태라고 할 수 있었겠다. 나는 이 바프를 위해 운동을 하다가 근육이 ‘쪼이는’ 유의 통증을 겪지도, ‘땡기는’ 걸 먹지 않기 위해 식욕을 다스리는 그 어떠한 ‘억제’도 하지 않았다.


내 몸은 체지방률이 30%를 초과하고 물렁한 몸이었다. 튀어나온 살이 접혔고, 배가 툭 튀어나왔고, 허리와 팔뚝, 허벅지와 종아리 할 거 없이 전체적으로 ‘두꺼웠다.’ 때마침 생긴 사고(나의 바보 같은 부주의) 때문에 시퍼런 멍까지 남은 ‘거친’ 몸이었다.


의상은 없었다. 있는 그대로, 현존하는 몸을 보이고자 하는 게 목적이었고 그에 부합하는 건 알몸이었다. 영화 쪽에서 흔히 말하는 ‘공사’를 위해 중요 부위를 가릴 무언가를 준비하긴 했지만, 막상 닥치니 그게 더 어색할 것 같아 맨몸으로 나섰다. 동성 앞에선 전혀 노출에 거리낌이 없는 나의 타고남(이거야 말로 나의 타고난 능력이다) 덕분이었다. 혹시 드러날 중요 부위는 후보정을 통해 가리기로 하고 그렇게 허허벌판 하이얀 호리존에 나만 알몸으로 서있게 됐다.


알몸의 부끄러움보단 처음 만난 타인의 알몸을 누구보다 열심히 쳐다봐야 하는 작가님께 오히려 인간적인 죄송함이 좀 생겼었는데, 다행히 프로페셔널한 태도와 배려 덕분에 걸리는 것 없이 진행했다. 노출에 대한 민망함이 없는 현장이었다는 것도 행운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다른 비모델인들과 마찬가지로 카메라 앞에선 뻣뻣해진다. 특히 전신이 다 나오는 ‘몸’을 찍는다면 역시 그렇다. 최대한 ‘이런저런’ 포즈를 취했다. 보통 영화 같은데 보면 이럴 때 자유롭게 몸을 움직이며 형용할 수 없는 희열을 느낀다던데, 나는 알몸으로 텅 빈 스튜디오에서 삐걱거리며 ‘나.. 지금 뭐하는 걸까...’ 하는 잔잔한 현타와 웃참(웃음참기)을 했을 뿐이다.


그 ‘자유’, ‘희열’, ‘탈피’, ‘성취’라는 감정은 촬영본을 받고 나서야 올라왔다. 찍으면서도 이게 잘한 선택일까 긴가민가했던 고민은 누군가의 정성과 수고가 담겨 아주 멋진 모습으로 이미지화 되었다. 대상화되지 않는 몸이 되기 위한 노력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주신 작가님은 사진 속 선정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부분들을 모두 말끔히 지워 주셨다.





포기에서 시작된 결심


사실 이 촬영을 결심했던 계기는 ‘포기’ 때문이었다. 열세 살부터 ‘다이어트의 필요성’을 느끼고 방학 때마다 ‘단기 다이어트’ 계획을 세웠지만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다. 이는 곧 수백 수천 번의 ‘실패’를 경험했다는 뜻인데, 그 실패의 축적은 좌절감과 자책감, 우울함 불러 왔고 결국 나는 8년간 식이장애를 ‘앓았었다.’ 식이장애의 피폐함과 위험성, 그 구체적인 심리와 행동을 가장 깊이 이해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인생의 귀인이 될 누군가를 통해 평생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식이장애를 ‘극복’한지 2~3년 정도가 흘렀다. 나에게 식이장애 극복이란 ‘이상적이지 않은 몸으로도 버티고 살아갈 용기’와도 같아서 이는 자연스레 ‘다이어트 중단’으로 이어졌다.


식이장애를 극복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선, 즉 내가 건강하고 멀쩡하게 살아가기 위해선 더 이상 체중감량을 시도하지 말아야 하고 결국 사회적인 미의 기준에 도달하지 못할 거라는 ‘논리’를 차차 깨달았다. “저 ‘이상형’의 몸은 절대 가질 수 없겠구나.” 그것이 일종의 포기였다. 닿지 못할 꿈보단 현재를 인정하고 충실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이 촬영을 결정했다. 근 평생을 ‘부정’하던 몸을 ‘긍정’으로 대하기 위해.





촬영 후 남은 것


촬영 보정본을 받고 한 달 반이 지나고서야 SNS에 사진을 공개했다. (그전까지 사진을 못 올린 건 그냥 ‘내 사진’을 잘 못 올리는 개인의 (극소심) 성향 때문이었다. 사진이 부끄러워는 아니었다.) 과분하게도 많은 주변인들에게서 ‘멋지다’라는 칭찬을 들었다. 예쁘다, 날씬하다는 말보단 사진을 찍었다는 행위 자체에 대한 감상에 가까워 반가웠다. 무턱대고 올린 알몸 사진에도 깊은 응원을 보내줄 만큼 좋은 지인들이어서 그랬기도 하다.


이렇게 기나긴 심적 방황을 거쳐 찍은 사진이 내 손에 남았다. 그 중 (극히) 몇 장을 공개해본다. 사진 속의 내 몸은 8년간의 식이장애와 거북목, 라운드숄더 같은 안 좋은 생활습관이 잔뜩 축적돼 있다. 이 몸에는 내 삶의 대소사가 모두 깃들어 있다.


그래서 그냥 몸을 찍는 어떤 프로젝트 혹은 스냅이나 화보라고 불러야 하나 싶었던 것에 ‘바디프로필’이란 명칭을 붙이기로 했다. 통상적인 기준과 보편적인 문화적 의미에서 벗어나 언어 그대로의 ‘바디 프로필’, 내 몸을 소개하는 사진이다.


(모델: 본인, 촬영: 박예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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