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라는 분야에 문외 했던 내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한 마디는 말 그대로 밑도 끝도 없는, 납득할 수 없는 선전포고였다. 그런 그들의 반응에 도리어 의연했던 나. 그저 대한민국이라는 작은 땅을 벗어나 더 큰 세계를 향해 뛰쳐나가고 싶었고, 그 일을 크루즈와 함께하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고 바랬던 것뿐인데.
이런 크루즈 러버인 나조차도 크루즈승무원을 꿈꾸며 걸어 나가는 매 순간이 가슴 벅찼다고는 할 수 없다. 이따금 커다란 일에 앞서 걱정과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정신을 지배하기도 하는, 그저 평범한 이십 대 초반의 대학생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했던 건 근거도, 근본도 없는 이 자신감은 어쩐지 두려움보다 조금 더 강한 힘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도전 끝에 나는 그토록 열망했던 꿈을 이뤄냈다. 크루즈승무원이 되고 싶어 했던 열아홉의 꿈을 이루게 된 스물한 살의 나는 과연 어떤 마음가짐을 하고 있었을까?
안타깝게도 그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오랜 기간 꿈꿨던 크루즈승무원이 된 나는 이따금 방황의 루트를 타기 시작했다. 불현듯 찾아온 회의감은 나를 악랄하게 괴롭혔고, 되풀이되는 상황에 무기력해진 나는 어떻게 이 문제를 대처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 당시에는 갈피를 못 잡는 내 마음을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서야 어렴풋 깨달았던 건 꿈을 이룸과 동시에 사라져 버린 목표에 대한 공허함이 내 안에 자리하고 있었고, 어렸던 내게 그것들을 컨트롤하기엔 역부족이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나에게는 어린 왕자의 소행성과 같았던 미지의 세계, 알래스카를 꼭꼭 씹어 맛본 후로는 지중해와 남미 그리고 북유럽과 같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이 더욱 고조되었다. 20여 년을 지방 소도시에서 생활하다 한순간 넓은 땅덩어리를 접한 후유증 같은 것이었을까.
크루즈승무원이 되고 난 이래 알래스카의 경험을 제외하고는 아시아 노선만 반복하다 보니 어느 날 이유모를 불안감이 나를 휘감았다. 이맘때의 나는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김없이 남과 비교하고 있는 내 모습을 마주할 수 있었다.
'누구누구는 벌써 지중해 한 바퀴를 다 돌았던데' '같은 시기에 승선한 누구는 미주, 호주를 찍고 이제는 남미 일주 크루즈를 한다던데'
이러한 마음가짐이 득이 될 게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으나 온전치 않은 정신을 다잡기란 쉽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마제스틱 프린세스호와의 계약을 끝마치고 휴가를 보내던 중 마이애미 본사로부터 날아온 메일을 확인하다 그만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이번 계약은 어디로 가게 될까 한 없이 부풀었던 꿈이 일순간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다.
LOE(고용계약서)를 처음부터 읽고 또 읽었다. 계약서 중간 즈음 진한 글씨와 밑줄이 쳐진 'DIAMOND PRINCESS'라는 글자를 부정하고 싶어 눈을 질끈 감았다 떴으나 그렇다한들 달라질 건 없었다. 5대양 6대주를 누비며 각종 SNS에 활짝 웃는 모습과 '오늘은 스페인, 내일은 프랑스, 다음 주는 터키!'와 같은 문구를 업로드하는 그들이 부러워 못 견딜수록 몸과 마음은 점차 초라해져 갔다.
'왜 나만 또 아시아에 머무르는 걸까. 하늘이 야속해'
이러한 회의감으로 1분 1초가 아까운 휴가를 낭비하다시피 떠나보냈다. 재승선 전 다음 컨트랙의 노선을 찾아보고 그 나라를 대표하는 관광지나 음식을 알아가는 즐거운 기다림의 시간도 이번에는 없었다. 의욕이 없으니 기대가 없고 기대가 없으니 발전이 없는 그저 그러한 일상이 지속되었다.
한동안 이런 생활이 반복되다 어느 날 문득 스스로 자문했다. 지금 당장 이 일을 그만둘 게 아니라면 더는 이러지 말자고. 예전에는 원치 않는 일이 닥치면 눈물부터 차올라 버둥댔지만 이제는 그럴 단계가 아니지 않냐고 나를 타일렀다.
'Everything happens for a reason.'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부딪혀보자. 이번에도 아시아 시즌과 함께해야만 하는 운명이라면 기꺼이 그중에서 최고가 되어 드리겠다고. 나는 크루즈승무원을 꿈꿨던 열아홉 때처럼 그곳에서 새로운 꿈을 키워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