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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블 Mar 02. 2021

글이 뭐길래

글쓰기를 통하여 배운 것들


 1월부터 일주일에  편씩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작년에도 글쓰기 수업으로 10 정도의 에세이를 썼다. 매주 글감을 정하고,  글감을 A4  장에 풀어내는 시간. 나아지지 않은 필력에 좌절하고, 얕은 사고에 한숨을 푹푹 쉬며 글을 쓰곤 했다. 종강  한동안은 의도적으로 글을 쓰지 않았다. 과하게 에너지를 소모한 탓인지 책도 가벼운 것만 골라서 읽었다.  달쯤 지나고 나니 노트에 무언가를 끼적이는 나를 발견했다.  뭐라도  궁리를 하고 있었다. 지치지 않는 짝사랑 같았다.     


혼자서 부지런히 글을 쓰는 일은 쉽지 않았다. 다시 어슬렁거리며 함께 쓸 곳을 찾았다. 어째서 나는 다시 글을 쓰려는 걸까. 한참 동안 내게서 그 이유를 찾았다. 그건 아마도 좌절과 절망의 마음보다 성취감이 몸에 더 깊이 새겨진 탓이었다. 글을 쓰면서 느껴지는 무력감은 글의 완성과 함께 성취감에 흡수되고 만다. 나무에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기 위해 견뎌내는 인고의 시간 같은 것. 글쓰기는 내게 그런 기분을 선물해줬다.    

  

글쓰기 전 나는 출근과 퇴근으로 하루를 나누어 살았다면, 글을 쓰고 나선 글감을 찾아다니며 하루를 세밀하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출근길 버스 안 절반으로 가려진 얼굴에서 드러나지 않는 마음에 대해 생각하고, 산책길에서는 만나는 동식물들을 바라보며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꼈다. 책이나 영화에서 맞닥뜨리는 감응의 순간을 잊지 않으려 곧장 메모하고, 누군가와 만나는 날에는 좀 더 밀도 있게 보내려 귀를 활짝 열었다. 매 순간 살아있는 기분이었다.     


잘 쓰고 못쓰고는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그저 내 안에 밀집된 수북이 쌓인 감정과 깊숙이 가라앉은 상처들을 끌어올려 햇빛을 쐬어 주는 일. 쓰는 행위에는 이 모든 것을 따뜻하게 포용하는 힘이 있었다. 남의 눈치를 보느라 내 안에서 뭉개버린 말들, 그럴듯한 모범답안을 찾고선 눈 뭉치 포개듯 감춰버린 진짜 속마음. 글을 쓰며 그런 나를 내밀하게 파고들었다.     


글쓰기를 시작한 30대가 내겐 축복이다. 글로 표현한 하루하루는 쉬이 잊히지 않았다. 그날의 대화, 분위기, 감정을 언어로 풀어내는 순간 선명하게 찍힌 사진 한 장처럼 각인되었다. 어째서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하며 나를 이해했고, 더불어 타인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졌다. 이해할 수 없는 사람에겐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던 내가 '자기만의 사정이 있겠지'라며 친구의 말에 다른 의견을 제시했던 건, 글쓰기의 힘이었다.     


앞으로도 글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좋아하는 날을 길게 늘려서 살고 싶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살아가는 동안 마주하는 사건, 만나게 되는 사람들을 깊은 시선으로 바라보며 글로 천천히 담고 싶다. 수많은 감정의 소용돌이에 무너지고, 슬퍼하고, 화내고, 웃고, 질투하고, 사랑하는 모든 날에 그들만의 이야기를 담아 양지바른 곳에 놓아두어 날 것 그대로 인정해주고 싶다. 부족하다고 숨지 말고, 부끄럽다고 도망치지 않고 나를 표현하는 삶을 살고 싶다. 그리고 당신도 함께 글을 쓰면 좋겠다.




사진출처(https://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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