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 마시기 팁 2
야생차산을 허위허위 올라, 한 해에 고작 이삼 센티밖에 자라지 않는 찻잎을 더트고 다닙니다. 소나무 그늘 아래 숨어들어, 하루에 볕을 보는 일이 채 몇 시간도 되질 않는 곳에 차나무가 좌악 깔려 삽니다. 그 나무들은 조금이나마 성장하려 싹을 틔워내고, 응축된 영양을 담아 세상에 머리를 내밉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귀한 싹과 잎을 따 먹습니다. 여럿이서 수 시간을 따봐야 생엽 5kg을 넘기기 힘듭니다. 그 생엽은 시들리고 덖고 비비고 말리는 과정을 거쳐 1kg 정도로 줄어들지요. 아, 야생차산에서 나는 녹차는 그 자체로 한 줌을 허투루 할 수 없이 귀하고 귀합니다. 그래서 저는 야생녹차를 홀로 마실 때, 최소 다섯 번 이상 우리곤 합니다.
제다 후 그만 몸져 누울 정도로 정성을 기울인 차가 제게도 왔습니다. 그분들의 노력과 베풂에 감사하며 차봉투를 열었습니다. 은근한 단향이 후욱 코로 들어옵니다. 분은 거의 날리지 않고 말끔하게 제다한 차가 슬금슬금 기어나옵니다. 오늘은 이 차를 통해 올해 봄을 입속에서 우물거려 보겠습니다.
차를 만들어 파는 차농의 작품이 아닙니다. 오직 제가 만들어 제가 먹고자 한해 한해 덖어낼 뿐입니다. 그렇기에 설혹 기성품과 같은 말끔함은 덜할 지 모르나, 집밥 같은 정직함이 있습니다. 내 식구 먹이려고 장을 보고 음식을 준비하는 어머니의 깐깐한 고집이 떠오릅니다. 그 고집으로 만든 차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차를 올곧게 마시는 저만의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좋은 물을 준비하는 일입니다. 순숙이 되도록 끓여줍니다. 그 다음으로 느릿하게 차를 우려야 합니다. 차분하지 않으면 좋은 차맛을 제대로 끌어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차에 대한 관심을 놓지 말아야 합니다. 첫우림부터 끝우림까지 차가 선보이는 맛은, 결국 한 잔입니다. 열 몇 잔을 마셨더라도 그러한 통시적 과정을 한 잔의 맛으로 그려낼 수 있어야 합니다.
홀로 마시니, 그 어떤 차라도 맛있겠습니다. 거기에 오늘은 차벗들이 정성스럽게 만든 야생녹차를 마시는 자리입니다. 소설 [어린왕자]에서 여우가 말한, '네가 네 시에 오면 나는 세 시부터 행복해질 거야.' 구절이 떠오릅니다. 설렘은, 미래가 현재로 들어서기 전에 존재합니다. 차를 마실 때도 그렇습니다. 한 잔을 마시기 위해 준비하는 이 순간, 저는 설렙니다.
야생차만이 가지는 느낌이 있습니다. 분명 재배차와는 다른 맛입니다. 어떤 이는 깊숙하게 뿌리 박은 그 끄트머리에서부터 영양분을 빨아들이기에 그렇다고도 하고, 또 어떤 이는 반그늘 아래 차나무가 살아가려면 새로난 찻잎에 많은 영양을 담을 수밖에 없다고도 합니다. 모두 일리 있는 말입니다. 많은 나무를 밀식재배하고 거름이나 녹차전용비료를 뿌려가며 키운 것과 비교해서는 안 되겠지요.
또 우리나라의 차나무는 중국의 차씨를 옮겨심음으로써 그 역사가 생겨났다는 견해에도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역사는 문헌에 의지합니다만, 그 문헌 기록이 있기 훨씬 전부터 이 땅에는 차나무가 자생했을 것입니다. 다만 이 지역의 특성, 토질, 기후 등으로 말미암아 관목형으로 진화하였을 테고, 수령 역시 수백 년을 주기로 나고죽는 패턴을 반복했을 것입니다. 저 멀리 중국 아열대 지역에 수 천 살 먹은 나무가 있다 한들, 그 나무가 그보다 나이를 덜 먹은 모든 차나무의 모수(母樹)는 아닐 겁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차를 홀짝거리다보니, 어느새 다섯 우림 열다섯 잔을 마셨습니다. 내포성도 좋고, 여러 번 우려도 맛이 왜곡되지 않았습니다. 그저 엷어지기만 합니다. 엽저는 '일창, 일창일기, 일창이기'가 섞여 있습니다. 내다 팔 것이 아니므로 잎의 크기와 형태까지 정해가며 까다롭게 따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마신 한 줌의 찻잎 속에도 산중턱을 오르내리는 수많은 발자욱과, 찻잎을 따기 위해 바삐 놀렸을 손샅이 어른거립니다. 참 귀한 차, 맛있게 마셨습니다. 야생차만의 맛을 살리기 위해 과하게 덖거나 가향처리를 하지 않음이 느껴집니다. 구수함으로 덮어버리지 않아 더욱 싱그럽습니다.
다음에는 또 다른 녹차 시음기를 남겨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