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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레바퀴 Dec 09. 2017

녹차 마시는 법 1

- 차 마시기 팁 2

 야생차산을 허위허위 올라, 한 해에 고작 이삼 센티밖에 자라지 않는 찻잎을 더트고 다닙니다. 소나무 그늘 아래 숨어들어, 하루에 볕을 보는 일이 채 몇 시간도 되질 않는 곳에 차나무가 좌악 깔려 삽니다. 그 나무들은 조금이나마 성장하려 싹을 틔워내고, 응축된 영양을 담아 세상에 머리를 내밉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귀한 싹과 잎을 따 먹습니다. 여럿이서 수 시간을 따봐야 생엽 5kg을 넘기기 힘듭니다. 그 생엽은 시들리고 덖고 비비고 말리는 과정을 거쳐 1kg 정도로 줄어들지요. 아, 야생차산에서 나는 녹차는 그 자체로 한 줌을 허투루 할 수 없이 귀하고 귀합니다. 그래서 저는 야생녹차를 홀로 마실 때, 최소 다섯 번 이상 우리곤 합니다.
 제다 후 그만 몸져 누울 정도로 정성을 기울인 차가 제게도 왔습니다. 그분들의 노력과 베풂에 감사하며 차봉투를 열었습니다. 은근한 단향이 후욱 코로 들어옵니다. 분은 거의 날리지 않고 말끔하게 제다한 차가 슬금슬금 기어나옵니다. 오늘은 이 차를 통해 올해 봄을 입속에서 우물거려 보겠습니다.

 

팔기 위해 만든 녹차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민낯을 스스럼없이 드러내고 있다.

 차를 만들어 파는 차농의 작품이 아닙니다. 오직 제가 만들어 제가 먹고자 한해 한해 덖어낼 뿐입니다. 그렇기에 설혹 기성품과 같은 말끔함은 덜할 지 모르나, 집밥 같은 정직함이 있습니다. 내 식구 먹이려고 장을 보고 음식을 준비하는 어머니의 깐깐한 고집이 떠오릅니다. 그 고집으로 만든 차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탕관에서 순숙이 되도록 물을 끓입니다. - 무쇠탕관, 설우요 화로

 그런 차를 올곧게 마시는 저만의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좋은 물을 준비하는 일입니다. 순숙이 되도록 끓여줍니다. 그 다음으로 느릿하게 차를 우려야 합니다. 차분하지 않으면 좋은 차맛을 제대로 끌어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차에 대한 관심을 놓지 말아야 합니다. 첫우림부터 끝우림까지 차가 선보이는 맛은, 결국 한 잔입니다. 열 몇 잔을 마셨더라도 그러한 통시적 과정을 한 잔의 맛으로 그려낼 수 있어야 합니다.

 홀로 마시니, 그 어떤 차라도 맛있겠습니다. 거기에 오늘은 차벗들이 정성스럽게 만든 야생녹차를 마시는 자리입니다. 소설 [어린왕자]에서 여우가 말한, '네가 네 시에 오면 나는 세 시부터 행복해질 거야.' 구절이 떠오릅니다. 설렘은, 미래가 현재로 들어서기 전에 존재합니다. 차를 마실 때도 그렇습니다. 한 잔을 마시기 위해 준비하는 이 순간, 저는 설렙니다. 

차는 몇 우림을 우리더라도, 결국 한 잔입니다.

 야생차만이 가지는 느낌이 있습니다. 분명 재배차와는 다른 맛입니다. 어떤 이는 깊숙하게 뿌리 박은 그 끄트머리에서부터 영양분을 빨아들이기에 그렇다고도 하고, 또 어떤 이는 반그늘 아래 차나무가 살아가려면 새로난 찻잎에 많은 영양을 담을 수밖에 없다고도 합니다. 모두 일리 있는 말입니다. 많은 나무를 밀식재배하고 거름이나 녹차전용비료를 뿌려가며 키운 것과 비교해서는 안 되겠지요.
 또 우리나라의 차나무는 중국의 차씨를 옮겨심음으로써 그 역사가 생겨났다는 견해에도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역사는 문헌에 의지합니다만, 그 문헌 기록이 있기 훨씬 전부터 이 땅에는 차나무가 자생했을 것입니다. 다만 이 지역의 특성, 토질, 기후 등으로 말미암아 관목형으로 진화하였을 테고, 수령 역시 수백 년을 주기로 나고죽는 패턴을 반복했을 것입니다. 저 멀리 중국 아열대 지역에 수 천 살 먹은 나무가 있다 한들, 그 나무가 그보다 나이를 덜 먹은 모든 차나무의 모수(母樹)는 아닐 겁니다.

내다 팔 것이 아니라 그런지, 정결하기보다는 수더분한 엽저들이 모여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차를 홀짝거리다보니, 어느새 다섯 우림 열다섯 잔을 마셨습니다. 내포성도 좋고, 여러 번 우려도 맛이 왜곡되지 않았습니다. 그저 엷어지기만 합니다. 엽저는 '일창, 일창일기, 일창이기'가 섞여 있습니다. 내다 팔 것이 아니므로 잎의 크기와 형태까지 정해가며 까다롭게 따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마신 한 줌의 찻잎 속에도 산중턱을 오르내리는 수많은 발자욱과, 찻잎을 따기 위해 바삐 놀렸을 손샅이 어른거립니다. 참 귀한 차, 맛있게 마셨습니다. 야생차만의 맛을 살리기 위해 과하게 덖거나 가향처리를 하지 않음이 느껴집니다. 구수함으로 덮어버리지 않아 더욱 싱그럽습니다.


 다음에는 또 다른 녹차 시음기를 남겨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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