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PD의 다이어리
심PD의 다이어리<4> 외주 프로덕션의 생리
방송의 개념이 지상파뿐만이 아닌 각종 케이블방송과 IPTV 등 인터넷 매체까지 확장되면서 급속도로 많은 영상 콘텐츠가 필요하게 되었다. 특히 지상파에서 케이블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그 수요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방송국에서 소화해서 제작할 수 있는 범위를 100배 이상 뛰어넘어버린 것이 현실이었다. 그에 따라 공급과 수요의 법칙을 맞추기 위해 외주 프로덕션들이 속속들이 생겨나게 되었고, 현재 영상분야에서 외주 프로덕션의 역할 비중은 방송국에 비해 월등하게 높을 수밖에 없다. 현재 방송국에서는 거의 모든 프로그램을 외주 프로덕션에 의지하는 추세이며, 외주 프로덕션은 지속적으로 방송국과 함께 공존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왜 이렇게 수요가 넘쳐나는데도 불구하고 부도가 나는 외주 프로덕션이 많은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갖게 되었다. 기업과도 같은 거대한 외주 프로덕션들과 각종 인기 드라마를 제작한 대형 외주 프로덕션들도 줄줄이 도산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같은 업계에서 종사하는 일원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렇게 외주 프로덕션들이 힘들어하는 데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앞으로 깨지고 뒤로 새는 자금의 문제다. 정작 제작사는 돈을 벌지 못하는 현실적인 문제다. 물론 그 사이에는 방송국이 자리 잡고 있다. 방송국의 횡포랄까? 좋은 콘텐츠로 인기 드라마를 제작한다고 하더라도 방송국에서 송출해주지 않으면 사람들이 볼 수 있는 방법이 없기에 그런 이유로 제작비의 많은 부분을 방송국에서 가져간다. 방송국이 일방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는 갑, 을 간의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결국 외주 프로덕션에서 공을 들여서 만든 콘텐츠를 그대로 뺏기는 형국이 이어진다. 말 그대로 대박을 치는 드라마를 탄생시켰더라도 막상 알맹이를 보면 남는 것은 없다. 껍데기만 지니고 있는 외주 프로덕션이 되어버린다. 콘텐츠에 대한 저작권도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는 것이 안타깝다.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고 악순환이 이어지다 보니 어렵게 어렵게 성공하는 작품을 탄생시킨다고 해도 외주 프로덕션이 돈방석에 앉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이것이 간단하게 정리해 본 외주 프로덕션들의 생리다.
요즘은 그래도 매체의 발달로 인해서 송출할 수 있는 방법들이 다양해졌다. 따라서 그나마 조금씩 판도가 바뀐 점도 있었지만 아직까지도 지상파에 의존한 매체가 가장 파급력이 강하다는 것이 사실이다. 유튜브와 인터넷 스트리밍으로만 볼 수 있는 드라마도 나오고 케이블 방송 전용의 프로그램들도 활성화가 되고 있다. 스마트폰이 발달하면서 손 안에서 언제나 볼 수 있는 짤막한 콘텐츠들의 제작도 나름 틈새를 활용한 생존비법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런 전략들을 통해서 살아남기 위한 외주 프로덕션들의 몸부림은 정말 처절할 정도로 고통스러울 것이다. 독과점적인 방송국의 횡포가 사라져야 하고, 콘텐츠의 저작권을 보호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확실하게 구축이 되어야 정말 퀄리티 좋은 콘텐츠들이 지속적으로 생산이 될 것이다.
비단 이런 여러 가지 문제점들은 방송국에 납품하는 외주 프로덕션뿐만이 아니라 기업과 관련된 프로덕션들, 기획사들과 함께 하는 프로덕션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창작물에 대한 값어치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영상의 퀄리티를 따져가며 책정을 해야 하는데, 무조건 견적으로만 평가를 하는 현실은 참으로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퀄리티보다는 견적으로 평가받는 것이 안타깝다는 것이다. 경쟁 업체들은 어쩔 수 없이 서로 가격을 내리게 되고 이는 영상의 퀄리티를 떨어뜨린다. 가뜩이나 어려운 제작환경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다. 이렇게 반복이 되면 프로덕션은 점점 힘들어진다. 시장에는 또 새로운 프로덕션들이 뛰어들지만 결국 오래 버티기 쉽지 않다.
정리를 해보면 외주 프로덕션에 대한 비중은 커져가고 콘텐츠는 점점 더 많이 필요하다. 하지만 제작비에 대한 현실적인 측면은 나아진 것이 없고 오히려 그 반대가 되었다. 외주 프로덕션은 항상 힘들다. 대부분 영상을 시작하게 된 사람들은 그 일이 너무 좋아서 시작하게 된 경우가 많기 때문에 박봉에도 불구하고 힘들게 해 나가고 있다.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보람을 느끼면서 기쁘게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늘 부족한 마음에 더욱 많은 일을 수주받아야만 살 수 있다. 몸은 고되고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의 한계는 물리적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늘 피곤하다.
처음에는 열정과 젊음, 그리고 즐거움으로 일을 하지만 오랫동안 수행하기에는 너무나 힘들다.
그래서 외주 프로덕션들은 고달프다. 좀 더 좋은 퀄리티와 좋은 작업 환경을 위해서는 그만큼 경제적인 것들이 수반되어야 하는데 실질적으로 낮은 단가에 대한 부분만을 중요시 여기다 보니 악순환이 반복된다. 그렇다고 그 견적에 일을 하지 않으면 막상 수주가 끊길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하지 않을 수도 없게 된다. 이건 나도 경험해보아서 정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정말 피 말리는 경험이다.
하지만 이런 힘든 와중에서도 잘 나가는 외주 프로덕션들도 많이 있다. 그들만의 특화된 제작 기법 이라든가 새로운 스타일들을 끊임없이 도전하는 프로덕션들이 있다. 독특한 색감과 편집으로 다른 프로덕션들과의 차별성을 확실히 보여주는 곳들도 있다.
촬영기법에서도 다양한 앵글을 시도하고 차별성을 보여준다. 끝없이 발전해야만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프로덕션들이다. 또한 공장화 된 시스템으로 찍어내듯이 만들어 내는 곳도 있다. 영상을 제작하는 공장 시스템을 구축한 프로덕션들이다. 박리다매의 전략으로 탈출구를 뚫어보려는 시도를 한다. 여러 부분에서 자신들의 차별성을 극대화시켜서 블루오션을 찾아낸 프로덕션들이다.
나 역시도 차별성을 만들고 새로운 도전으로 시작했지만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다. 당시에는 그 이유를 외부적인 요인으로 돌렸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이유는 나에게 있었다. 빠른 변화에 대처하지 못했던 점도 있고, 우리가 만들어낸 콘텐츠에 대해 너무 자아도취되어 있었다. 현실을 좀 더 확실하게 인지하고 앞날을 대비했어야 했다. 의욕과 열정으로만 부딪치다 보니 간과한 것들이 많았다. 우리는 비록 그 도전에서 성공을 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실패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로 인해서 얻은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정말 많은 것들을 배우고 깨달았다.
이런 얘기가 있다. ‘세상을 바꾸려면 내가 바뀌어야 하고, 미래를 바꾸려면 미래를 바꿀만한 것을 내가 먼저 시작하면 된다.’ 결국 우리만의 차별성을 가진 무기가 없다면 결국에는 세상의 물결에 흡수될 수밖에 없다. 공룡 같은 방송국에 무릎을 꿇어야만 할 수밖에 없다. 세상과 타협할 수밖에 없다. 방송국이나 기업, 기획사들의 마인드가 바뀌는 것을 기다리기보다는 외주 프로덕션의 참의미를 깨우쳐줄 수 있도록 독특하고 세련된, 멋진 것들로 무장한 차별화된 콘텐츠가 필요하다. 나만의 것을 가지고 있을 때는 유리하게 시장을 끌고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이라도 우리만의 차별성을 만들기 위한 준비를 해야 만한다. 분명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은 존재하고 새로운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