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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억띠귿 Mar 15. 2020

디발자로 출항하는 나에게

머나먼 여정을 떠나기 전, 그 당시의 마음 정리



끝이 났다.




나의 길고 길었던 대학 생활.... 마지막 학기가 끝이 났다. 

정말 숨 가쁘게 달려오던 매 학기와 방학이 폭풍처럼 지나가고, 방을 정리하고 집에 올 때까지 어안이 벙벙할 정도로

정신없이 왔다. 돌덩이 같은 네 개의 박스 그리고 캐리어와 백팩을 가지고 집에 도착하고 나서야 폭풍 후의 고요를 느낄 수 있었다. 그것도 잠시. 스며 들어오는 두려움. 그것은 졸업 후 나의 모습이었다. 

대학을 졸업하면 바로 다른 이들처럼 방황하지 않고 바로 들어갈 일자리를 확보하고 멋진 모습으로 집에 들어설 줄 알았고 그러기 위해서 나름 전문직이라는 디자인을 선택했고 추가로 프로그래밍을 공부했다. 그런데 경험이라는 명목 하에 20대와 대학생활은 남들도 하는 해외인턴, 배낭여행, 동아리 등등을 다 해보겠다는 마음으로 정신없이 했고, 내 전문성은 두 영역 중 뭐 하나 잘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이 나를 더욱 두렵게 했다. 포토샵, 일러스트로 뭔가 만들어낼 줄은 아는데 멋지게 디자인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을까 하면 겁이 덜컥 났다. UX 방법론을 배우고 프로토타입을 기획해보고 했지만 프로토타입 툴 하나 잘한다 못하고 포트폴리오를 자신 있게 내보일 수도 없었다. 3D 프로그램으로 캐릭터도 만들어보고 애니메이션이나 게임도 작게나마 만들어봤지만 취미 이상으로 할 자신이 없었다. C++, C, 자료구조 등을 전공수업으로 배웠고 꽤 이해했다고 생각했지만 이름 때문에 그런가 성적 역시 C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면서 점점 머리 한구석부터 평수를 넓혀가는 생각이 있었다. 

내 적성이 아니었나? 사실 적성은 다른 곳에 있었나?


내가 했던 인턴생활들을 돌아보니 전부 콘텐츠를 제작하고 홍보/마케팅을 하는 경험이었다. 그때의 경험이 나쁘지도 않았고 항상 어떤 활동을 하든지 기획을 하고 아이디어를 내는 입장이었고 그걸 할 때마다 흔히 그렇듯 잠을 자지 않아도, 다른 것이 보이지 않는 듯 재미있게 하였다. 게다가 주위의 친구들이 마케팅, 영업, 회계 등등으로 대기업, 외국계 기업으로 높은 연봉과 함께 들어가고 남는 사람이 별로 없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제일 피하고 싶었던 모습이 거울 앞의 모습인 듯 양 서있는 느낌이 점점 들기 시작했다. 이대로 디자인과 프로그래밍을 더 준비한다면 시간과 비용이 훨씬 많이 들 것이고 어쩌면 괜찮다 여겨지는 직장에 번듯하게 들어가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이 많아졌다. '지금이라도 마케팅 쪽을 준비해서 취준을 해볼까?' '오 저거 재미있겠는데?' 생각이 들다가도 뭐 하나 선택하면 결국 쉬운 것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런 고민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 대다 보면 꿈과 자신감에 가득 차서 힘차게 시작하려고 마음먹은 바로 뒤에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인 것 같은 자괴감과 두려움에 머리가 지끈거려 베갯 속에 머리를 짓누르고 천장만 바라보며 한숨만 쉴 뿐이었다. 하도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프리패스로 여러 번 타다 보니 정신이상이 되는 게 아닌지 무섭기도 했다. 

그러다 이미 직장을 가진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기도 하며, 내가 살아왔던 모습들을 돌아보기도 하면서 생각 정리를 하기로 했다. 



이전에 누드 스케치 학원을 다닌 적이 있었다. 원화가가 너무나도 되고 싶었다. 군 생활 동안 하고 싶었던 계획을 생각하고 생각해 끝내자마자 서울로 올라갔다. 돈이 많지 않아 찾다가 그나마 내 선에서 해결 가능한 학원을 찾다가 누드 스케치 학원을 가게 되었다. 열심히 그렸다. 근육을 공부하고 손을 풀고.... 내가 원하는 것들을 하면 너무 좋아서 모든 어려움을 다 뛰어넘을 것 같았다. 그러나 현실 속 내 마음은 그러지 못했다. 순간순간 이걸 열심히 그리면 돈을 벌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덮쳐왔고 다른 한편으로는 학원에서 함께 그리는 다른 이들의 실력을 보면서 조급함에 숨이 턱턱 막혔다. 선생님께선 종종 "잘하는 사람이 분야의 탑이 되는 것이 아니라 버티는 사람이 탑이 되는 것이기에 10년 바라보고 차분하고도 꾸준하게 열심히 준비하겠다는 마인드로 해야 한다"라고 하셨다. 그때는 머리로 들었지만 마음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만뒀다. 


선생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5년이 지나서야 이해가 되었다. 모든 분야가 깊이 들어가면 쉽지 않다 한다. 상황은 나빠질 수도 있고 좋아질 수도 있다. 상황에 관계없이 내가 하고 싶었던, 아니하고자 했던 것을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했던 사람은 잘될 수도, 안될 수도 있다. 그러나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그 세월 동안 하고자 했던 것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사실 손해가 아니다. 잘된다면 더 좋은 것이다. 그리고 어떤 분야든지 어려움이 있다. 이겨내는 경험은 삶에 있어서 꼭 필요하다. 그러기에 그냥 직진하기로 했다. 

UX 데이터를 분석하고 설계한 뒤 개발하는 디발자

로 향해보기로 했다. 어디 한번 포기 안 해보기로 했다. 될 때까지 해보기로 했다. 어렸을 때부터 여러 나라로 이직을 하며 커리어를 쌓고 싶다는 생각을 꿈꿨다. 이것들은 그 꿈을 이루기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개발을 사랑하는 주변 개발자의 모습을 보면 코드로 뚜닥뚜닥 치면서 몰입하고 자신의 분야를 신나게 떠드는 그 모습이 너무 멋있어 보였다. 그렇지만 큰 그림을 보고 기획하고 심미성을 추구하는 내 디자이너적 성향을 그대로 담아내고 싶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몰라도, 가다가 더 맞는 길을 찾을 지라도 일단은 이 방향으로 가기로 했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건 더 이상 이것저것 맛만 보다가 마는 루틴을 그만 둘 필요가 있었다. 더 이상 스스로 경제적 책임을 지지 못한다면 그건 무책임하고 나태한 모습일 뿐이다.


일단은 UX 디자이너든 개발자든 뭐라도 기반을 쌓아야만 했다. 커뮤니티에 들어가면, 실제 구직 시장을 보면 기가 죽어버려 꿈도 못 꿀듯한 환경밖에 보이고 들리지 않지만 그냥 칼을 뽑았다면 무를 베어서 무생채를 해 먹더라도 해보기로 했다. 조금씩이라도 포기하지 않고 시도해보고자 하였다. 그래서 뭔가라도 되면 적어도 같은 고민을 한 누군가의 위로는 될 수 있지 않을까 했다. 


그래서 그 성장의 먼 여정을 한 줄 한 줄 적어보고자 한다. 


2019. 시작하는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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