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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희 Oct 22. 2021

행복이 뭐, 별건가

TV 보는 걸 좋아한다. 특히 좋아하는 프로는 몇 번이고 돌려보는 편이다. 최근 즐겨보는 프로는 <밥 블레스 유>이다. 최화정, 이영자, 송은이, 김숙이 나와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수다를 떤다. 그리고 시청자가 올린 고민에 어울리는 음식을 추천해준다.


얼마 전엔 이런 사연이 있었다.


"어느덧 취업 전선에 뛰어든 지 무려 3년째. 매번 합격의 문턱에서 실패를 맛본 1인입니다. 이제야 늦은 복이 터지나 봐요. 오랜 취업 준비 끝에 가장 원하던 회사 두 곳에서 합격 통지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기쁜 날, 뭘 먹으면 좋을까요?"


이영자는 뭘 먹어도 행복할 거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송은이는 마트에서 드라이 에이징 된 소고기를 사서 집에서 구워 먹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예쁜 접시에 담아 와인과 함께.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소확행. 소고기가 주는 확실한 행복이 아닐까.


"행복이 별건가, 이런 게 행복이지."


<밥 블레스 유>에서 이영자가 자주 하는 말이다. 행복이 거창한 게 아니라 좋은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함께 하는 이 순간이 그녀는 행복하다고 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아차 싶었다. 나는 그동안 내 행복의 기준을 너무 높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행복을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 감정을 느끼는 순간도 줄어든다. 반대로 아주 작은 것이라도 내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렇게 생각하니 나도 행복을 느끼는 순간들이 많다. 최근에 느낀 행복은 이런 거다.   

1. 며칠 전부터 비빔국수가 너무 먹고 싶었다. 여름이 되니 새콤한 게 당기나 보다. 나가서 사 먹으려니 살짝 귀찮기도 하고 날이 너무 더워서 먹기도 전에 지칠 것 같았다. 그래서 직접 만들어 먹기로 했다. 마침 집에 소면도 있기도 하니까. 네이버에서 '백종원 비빔국수'를 검색하니 레시피가 주르륵 나온다.


우선 김치를 송송 썰고 설탕과 고춧가루, 간장, 고추장을 넣어 양념해준다. 양념장이 완성되면 소면을 삶아준다. 소면을 삶을 때는 물이 끓어오를 때 중간에 찬 물을 두어 번 넣어주면 더 쫄깃해진다. 다 삶아지면 찬물에 얼른 헹군 후 양념장을 비비면 끝.


호로록 한입에 탱탱한 면발이 따라온다. 새콤달콤하면서도 끝은 매콤한 양념장이 여름에 지친 입맛을 자극한다. 내가 만들었지만 (99.999%는 레시피의 도움을 받았지만) 맛있는 한 끼였다.  



2. 올 여름 휴가를 가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가지 않았다. 한창 휴가철이라 사람이 몰릴게 뻔하기 때문이다. 대신 집 근처 스타벅스로 카캉스를 왔다. 더울 때는 역시 에어컨 빵빵한 곳이 최고의 피서지이다.


서둘러 자리를 잡고 시원한 아이스라떼를 주문했다. 그리고 달달한 녹차 팥 카스테라도 함께. 녹차와 팥의 조합이라니 맛이 너무 궁금하다. 노트북을 켜고 요즘 다시 정주행 중인 <식샤를 합시다 시즌2>를 보았다. 달달한 디저트를 먹으며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니 이 곳이 진정 천국이 아닌가 싶다.



오늘은 샤워를 마치고 막 뽀송뽀송한 상태에서 선풍기 바람을 쐬며 천도 복숭아를 먹었다. 너무 딱딱하지도 말랑하지도 않아 한 입 베어 물으니 과즙이 쭉 하고 삐져나온다.  “아 행복하다.”  행복이 뭐 별건가, 이런 게 행복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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