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그림이라는 판타스틱한 너의 또 다른 언어

그림과 춤으로 더 많은 감정을  


아들이 전국 미술대회에서 입상을 했습니다.  


입상 했다는 사실도 기뻤지만, 아들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이 한 가지 늘어난 것 같아 더욱 기뻤습니다. 이제 아들의 그림 속에서도 아이의 생각과 기분을 읽어낼 수 있기란 기대를 갖게 됩니다.


사실 아들은 말을 전혀 할 수 없던 갓 태어난 순간에도 눈빛과 울음으로 많은 얘기를 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그 눈빛만으로도 이미 제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말은 해준 것처럼 느껴집니다.


아들이 태어난 후 처음으로 맞은 나의 생일날,

편도 2시간 거리의 퇴근 시간을 달려 지쳐 돌아온 제게

아들은 옆자리 부스터에 앉아 생일 축하 노래 대신

그 작은 손으로 제 검지 손가락을 꼭 잡아주었습니다.

절대 놓치지 않을 것 같은 굳게 잡은 작은 주먹의 힘과 촉감을 잊을 수 없습니다.


처음으로 나를 아빠라고 불러주었던 그 입술도,

아빠 너무 좋아라고 하며 나를 안아주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그 품도...  

해를 거듭할수록 매번 지금까지 보다 큰  감동은 없을 것 같았지만 아이의 감정 표현 방법은 언어에 국한되지 않고 지속 성장하는 것 같습니다.


여덟 살이 된 지금, 그림이 아들의 또 다른 소통 언어가 된 것처럼 느껴집니다.



표정과 몸짓은 아이들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가장 쉬운 언어로 특히, 사내아이의 에너지는 언어보다 몸짓으로 발산되는 것이 직관적이고, 오해가 적습니다. 단, 이 몸짓을 읽어내려면 부모의 집중력 높은 관찰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기쁨은 단어보다 감탄사로 먼저 표현합니다. 이때 아이와 함께 소리 높여 웃으면 공감대가 깊어집니다.

슬플 땐 주로 눈빛으로 말하는 것 같습니다. 슬픔을 토해내기 전 미리 알아채고, 꼭 안아주면 제품 안에서 슬픈 눈빛부터 훔치며 더욱 꼭 안깁니다.

아이의 두려움은 경직된 어깨가 먼저 반응합니다. 잔뜩 움츠러든 어깨를 살포시 끌어 잡아주면 떨림을 서서히 잦아드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순간의 사소한 몸짓의 변화를 감지하기 위에서는 스마트폰을 내려두고, 아이와 눈을 맞추고 노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죠.



아이의 몸짓은 율동과 춤으로 진화했습니다.

손동작 같은 정적인 몸짓은 몸 전체를 쓰는 커다란 동작과 리듬을 하는 율동으로 분화됩니다.

어려서부터 몸을 잘 쓰는 방법을 배우면 자신을 컨트롤하며 표현하게 되는데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시작한 축구와 자연스럽게 노출된 음악에서 시작된 춤은 아이의 표현법의 성장에 큰 도움을 줬다고 믿고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KPOP 아이돌 팬인 엄마와 아빠의 영향으로 아이돌 음악과 영상을 즐기는 아들에게 춤은 흥겨움을 표현하는 최상위 표현이자 가장 멋지게 자신을 보이게 만드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어떤 장소에서든 흥이 나면 춤을 추고, 스트레스 해소로도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을 들으며 30분 넘게 춤추고, 어떤 때엔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앞에서 공연을 선보이기까지 하죠.

한껏 춤을 추고 나면 스트레스 없이 숙제도 잘하고, 잠투정 없이 잠도 잘 자는 것 같습니다.


춤을 추면 어디서든 자신만의 공간을 갖게 된다.



몸짓과 춤. 그리고 초1 절정의 수다로 자신의 감정을 능숙하게 표현해내던 아들은 얼마 전부터 '그림 그리고 놀자'는 얘기를 자주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가장 좋아하는 책 'captain underpants'를 만나고난 다음의 일 같네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재밌다고 생각하는 '똥, 방귀' 등의 저지당했던 것들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그림으로 표현해도 혼나지 않는다는 게 좋았던 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우리는 어른의 생각과 기준으로 아이가 생각을 표출하기 전에 생각을 정제하는 것을 먼저 가르치려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아이에게 '캡틴언더팬츠'는 딱 좋은 해방구 같은 거였을 것 같아요.

그 이후 아들은 그림으로 자신이 생각한 것들을 표현해내기 시작했습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듯, 아들의 그림은 졸라맨으로 시작했습니다. 스케치북 한가득 똑같은 모양의 졸라맨을 채우기가 다반사였어요. 졸라맨 머리 위 번호가 100번이 넘고, 200번이 넘어도, 스케치북 10권을 하루 만에 다  졸라맨 그리기로 채워도 그림 그리기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유튜브에서 움직이는 졸라맨들의 다채로운 표정을 보더니 그다음부터는 형형색색 기괴한 아크로바틱 몸 짓과 같은 것이 하나 없는 표정들을 묘사하기 시작하더군요.

표정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아들은 그 감정에 이름을 붙여주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이 그려낸 각양각색의 졸라맨의 감정들





아들은 늘 '아. 구름 먹고 싶다'라고 입버릇처럼 얘기하곤 했습니다.

이번에 아들이 입상한 그림을 보고, 아들의 그 평소 생각이 그대로 반영된 그림이라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대회에 해당 그림을 출품하기 위해서는 그림의 설명을 넣는 칸이 있는데, 아들은 그림을 자세하게 설명해주지 않았습니다. 이미 그림 속에 다 그려놨는데, 뭘 더 설명하냐는 마음이었겠죠? :)


아들이 평소 입버릇처럼 내뱉던 얘기들을 하나하나 되살려 그림 설명을 적어봤습니다.  


하늘의 구름을 바라볼 때면 입을 크게 벌려 구름을 입안 가득 넣고 싶어요.


구름은 무슨 맛일까, 구름을 폭신폭신할까, 구름으로 옷을 입을 수 있을까.

엄마, 아빠와 높은 산에 올랐을 때 더 높은 산봉우리에 구름이 걸려있었어요.

거기까지 가서 직접 구름 한가득 먹고 싶었지만, 너무 높아서 거기까지 가지는 못해서 아쉬웠어요.

그런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어요.


높게 솟은 나무 끝에 걸린 구름에 올라 아이스크림 콘처럼 구름 떠먹을 거예요.

내가 구름을 폭 하고 뜨면, 구름이 부서지며 물이 되어 비가 되어 내릴 것만 같아요.

구름이 맛있으면 구름 맛 팝콘 가게를 열어 더 많은 사람이 먹을 수 있게 해 줄 거예요.


구름까지 올라온 새소리 들으며 잠에서 깨면 얼마나 기분 좋을까요.

어딘가는 분명히 있을 구름 마을 사람들과 함께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답니다.


구름같이 몽글몽글한 아들의 마음을 가슴 가득 넣은 듯한 포근한 느낌이 드는 하루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옛날 옛적에 워킹맘, 2020 워킹대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