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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밤 너에게 편지를 쓴다

어쩌면 나의 어린 시절에 쓰는 작별 편지

처음 만났을 때 너는,

사랑인 줄 알았더랬다.


사랑하는 사람의 냄새와

사랑하는 사람의 표정과

사랑하는 사람의 웃음을 내게 보여주었다.


나를 웃게 하고,

지친 나를 위로하고,

나로 인해 웃는 너로 말미암아 매일 벅차올랐다.


시간을 빠르게 돌리며,

뜨겁게 달궈진 공기의 대류처럼

네 주변의 공기는 한껏 팽창하여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깊은 숨을 꾸욱 눌러 타고 내려

가슴을 깊게 누르곤 했다.



시간이 너를 영글게 할수록,

너는 내 거울이고,

아직 자라지 못한 채 내 유년시절이 아련히 일렁인다는 걸 깨달았다.


나의 미숙했던 그림자가 언뜻 네 얼굴에 스치면

눈살을 찌푸리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 잊었고, 다 아물었다 생각했던 그 성장통이 통증이 밀려와

갑작스레 버럭 소리를 토해내 버렸다.


잔뜩 움츠린 너의 어깨와 커다랗게 동그라진 눈동자는 연신 흔들린다.


갑작스러운 고함에 놀라 부랴부랴 너를 당겨 안아보지만

너와 나의 밀착한 가슴 사이로 유독 찬 공기가 스민다.

너의 떨림이 이내 잦아들기를 바라지만,

그마저도 놀란 가슴을 겨우 진정하던 어린 나의 앞에서

나를 바라보던 아빠의 굳은 눈빛 같아 보일까

서둘러 눈을 꼭 감았다.


어느덧 너는 몇 해를 자랐고,

어느새 나의 유년인 듯 안쓰럽게 바라보던 잔상들을 걷어져 있었고

너는 너의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

세상 무엇보다 너의 감정이 가장 소중하고

그때의 나와는 달리 너 자신이 보호되어야 함을 알고 있다.


너의 얼굴에서 자신의 흔적을 보는 내 마음을 다 이해하듯,

아빠라는 이유로 너는 나를 사랑하고, 늘 껴안아준다.


너와 함께 하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지만,

매일 특별한 계기 없이 툭탁거리다 작은 다툼이 고성으로 변화하는,

아내가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눈빛을 하는 그 순간.


작지만 울먹임을 참고 힘겹게 입을 열고 나오는

제법 단단한 너의 목소리에

이제 너는 나에게서 시작되었지만,

나와는 다른 존재라는 자명한 사실을 깨닫는다.


너는 그렇게 현명하게

나를 일깨워준다.



오늘도 내 곁에서 잠든 너를 보며 너를 꼭 안아 내 안에 널 각인한다.

 목소리를 내는 입술,

너의 감정으로 세상을 보는 너의 눈,

내 목소리를 들으면 땅을 박차고 달려와주는 굳센 다리,

세상 가장 크게 벌려 나를 안아주는 두 팔.


굳이 나를 투영했던 나의 거울을 걷어내고

너를 너로 바로 본다.  


매일 밤 자기 암시의 주문처럼 너에게 남기는 사랑의 말은

나의 진짜 사랑의 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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