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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하는 아빠로 사는 것: 워킹대드 인터뷰

milk,2021년 6월호

2021년 6월호 milk매거진 정재원기자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인터뷰기사를 싣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워킹대드라는 이름으로 아들과 관계하는데 많은 공을 들이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인터뷰 할만한 내용이 있을까해서 고민스러웠던 것도 사실. 이때 평소 나의 SNS을 팔로우하던 지인분께서 SNS내용 중심으로 인터뷰하면 충분할 것 같아 추천했다는 얘기에 지금까지 나의 육아법을 정리해보자는 마음으로 인터뷰에 응하게 되었다.


해당 인터뷰를 계기로 나의 워킹대드 육아이야기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과 나눌 거리가 된다는 생각을 갖게됐고, 브런치도 다시 용기내어 시작하게 되었다.

브런치에 해당 인터뷰를 옮기기 위해 다시 읽어봤는데 만연체의 두서없는 인터뷰 답변지를 찰떡같이 정리해주신 정재원기자님에게 다시 한번 고마움을 느낀다.


The Greatest Title, Working Daddy


MILK) 반갑습니다. 밀크 독자들에게 가족을 소개해주세요.

WorkingDad(이하 WD)

결혼 14년차 마케터 엄마 아빠와 8살 재준이, 이렇게 세 식구입니다.


MILK) 아빠가 지향하는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은 어떤 모습인가요?

WD.

‘지금 꽂히는 것’에 몰두하는 편이에요. 저희 부부는 좋아하는 것이 생기면 엄청난 추진력을 발휘합니다. 아이도 이런 점을 닮은 것 같고요. 다섯 살 때부터 국기에 홀딱 빠진 아이는 처음 사준 103개의 국기 카드를 이틀만에 마스터했어요. 지금은 자치령 국기를 포함한 240개 국기 카드를 좋아합니다. 저는 아이의 관심이 한 쪽으로 치우치기 보다 방향에 맞는 길을 찾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아이가 국기 카드를 통해 각 나라의 면적, 인접 국가, 인구 수, 고도 등 여러 정보를 알게 되더니 한 층 더 다양한 정보를 궁금해하더라고요. 대륙 별 지도 그리기, 모양과 특성에 따라 국기 카드 분류하기 등은 매일 밤 가족이 함께 하는 루틴입니다. 국기에 대한 아이의 흥미가 언제 끝날지, 또 다른 어떤 것에 관심을 둘지 모르겠지만 그때도 지금처럼 같이 즐기며 도와줄 생각입니다.


MILK) 아빠로서 육아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WD.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육아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태교로 책도 자주 읽어주고 부모 교육도 많이 들었어요. 아이들의 일반적인 발달 과정을 알아야 부모로서 불안감이 줄어들 것 같았거든요. 하지만 아들의 자아가 또렷해지고 원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이 명확해질수록 ‘아이를 관찰하는 것’이 육아에 가장 중요한 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아이가 10개월일 때 비슷한 달에 태어난 친구와 과자 잡기 놀이를 했습니다. 친구는 바로 기어가서 과자를 잡는데 아들은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더라고요. 처음엔 왜 바로 과자를 잡지 않는지, 혹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재준이는 그저 어떤 상황이 주어졌을 때, 이를 응시하고 판단하는데 시간이 필요한 아이였던 거죠. 이 때 비로소 육아 책과 조언은 참고사항일 뿐 해답은 결국 아이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더 관심을 갖고 아이의 관심사와 사소한 변화들을 읽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MILK) 바쁜 워킹대디신데요. 퇴근 후 이어지는 아빠의 육아는 더 큰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아요.

WD.

회사에서 집에 돌아오자마자 바로 육아모드로 전환되지는 않더라고요. 아마 많은 워킹 대디들이 공감하실 거라고 생각해요. 퇴근 후 몰려오는 피곤함, 회사에서 짜증나는 일이 평소보다 많았던 날이면 이미 인내심이 바닥났을 때도 있으니까요. 육아에 꼭 필요한 게 인내심인데 말이죠. 그래서 나름대로 회사원에서 아빠로 원활하게 모드를 전환하기 위해 퇴근길 루틴을 만들었는데요(하하). 출,퇴근 시 1만보 정도를 걸으면서 보고 싶었던 영상들을 봅니다. 주로 영화를 보지만, 스트레스가 많은 날은 되려 오은영 박사의 ‘화내지 않고 육아하는 법’같은 영상을 자기 암시처럼 틀어놔요.

또는 평소에 아이와 같이 볼 책을 생각해두거나 새로운 책을 주문하기도 해요. 퇴근길에 아이의 관심사와 관련된 책들을 발굴하는 재미 또한 쏠쏠하답니다.



MILK) 주말에 아이와 보내는 일상의 루틴도 궁금해요.

WD.

주말에는 가급적 주양육자가 되려고 노력해요. 아이가 다섯 살 때부터 주말 축구를 하는데 아들과 오롯이 몸을 맞대고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 행복합니다. 아이와의 대화 소재와 에피소드가 쌓인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죠. 좋아하는 친구가 생겼는지, 급식은 맛있는지, 요즘 힘든 것은 무엇인지 얘기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 뿌듯합니다. 육아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뿌듯한 순간이 있다면요. 2019년 12월에 육아휴직을 했어요. 팬데믹으로 아이의 유치원 등원이 중단되면서 눈뜨고 잠들 때까지 아이와 시간을 보냈어요.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때마침 저처럼 아이들 등원/등교가 중단되어 멘붕인 지인들이 있었는데, 그 아이들 3~4명을 모아 저희끼리 일명 ‘긴급 돌봄 유치원’을 열었어요. 보통 때처럼 부모들이 회사를 다니며 이 문제를 해결하긴 어렵다는 걸 알기에 제가 중심이 되어 작당한 거죠. ‘긴급 돌봄 유치원’은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식단을 준비해 아이들을 먹이고, 정해진 프로그램을 만들어 시간을 보냈습니다. 함께 할 수 있는 놀이를 찾고 요리를 하면서 느꼈던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무엇보다 다른 아이들과 함께 있는 재준이의 리액션, 관계 맺기를 직접 볼 수 있었다는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아들은 아직도 그 때 했던 놀이들을 하자고 조를 정도이니 제 노력이 헛되지 않은 것 같네요.


MILK) 아빠의 육아휴직,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닐텐데요.

WD.

이 모든 게 제가 육아휴직이 가능한 회사에 다니고 있기 때문이고,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제도적으로 아빠들도 육아휴직을 할 수 있지만, 보직을 갖고 있는 고연차 직원이 장기간 자리를 비운다는 것은 웬만한 직장에서는 불가능한 일이거든요. 저희 회사도 보직자의 육아휴직은 출산휴가와 연계한 경우를 제외하면 거의 처음이라고 들었습니다. 경험자로서 생각해볼 때, 아빠들도 육아휴직을 통해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물론 현실적인 문제(회사에서의 성장 트랙 이탈, 생활비의 감소 등)를 감수할 수만 있다면 말이죠.


MILK) 아빠와 아이의 소중한 이야기가 담긴 인스타그램 피드들 참 인상 깊었어요. 특히 여행과 관련된 피드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WD.

여행의 묘미는 낯선 환경과 돌발 상황을 즐길 줄 아는 여유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아이에게 여유는 어른과 달라서, 그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때 가능한 것 같아요. 저는 먼저 캘린더에 여행 날짜를

동그라미 쳐서 지속적으로 여행을 갈 거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자칫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가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줄 수 있기 때문에 그 변화를 미리 인지시켜주고 기대감을 높여주려는 거죠. 여행지에 대한 정보와 책자, 관련된 영상과 책을 보여주기도 해요. 마지막으로 모든 것을 놀이의 소재로 만듭니다.

아이에게 가보고 싶은 지역을 고르게 한 다음, 실제 여행지에서 랜드마크를 찾게 한다거나 지루할 수 있는

공항 대기시간에 항공 티켓을 가지고 노는 등의 즉흥 놀이는 가족 모두에게 재미있는 추억이 되지요.




MILK) 가장 인상 깊었던 여행과 에피소드를 소개해주세요.

WD.

아이가 생후 6개월 때 베트남 다낭으로 여행을 다녀왔어요. 워낙 어린 아이와 함께 갔기 때문에 리조트와 해변에만 있었던 휴양 여행이었지만, 함께한 첫 번째 여행이라 기억에 많이 남네요.

다섯 살 아이와의 캐나다 여행도 잊을 수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아이는 시차적응에 실패했지만 그 덕분에 생긴 에피소드들이 많아요. 아이와 함께 찬 밤이슬을 맞으며 밴쿠버와 빅토리아의 산책길을 걷던 일, 새벽 6시에 먹었던 조식과 그 때 나누었던 이야기들은 소중한 기억으로 각인되어 있어요.

무엇보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다녀온 전주와 공주는 ‘이제 아들과 단둘이 여행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했어요. 특히 공주 박찬호 뮤지엄에서 아이가 LA 다저스 경기장과 관련된 추억을 이야기하는데 마치 막연히 꿈꾸왔던 아빠와 아들의 한 장면 같더라고요.


MILK) 다음 계획하고 계신 여행 장소 또한 궁금합니다.

WD.

매월마다 ‘아빠 어디가’를 해볼까 합니다. 아이만 승낙한다면 1박2일로 다녀올 수 있는 여행을 최대한 많이 해볼 생각이에요.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을 때 많이 보내려고요. 할아버지, 할머니의 고향이나 엄마가 어렸을 때 살았던 곳들을 계절에 맞게 다녀오고 싶기도 해요. 특히 아버지의 고향에 3대가 함께 다녀오면 의미있는 여행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제가 두 사람의 수발을 드느라 힘들겠지만요(하하).


MILK) 아빠와의 여행이 아이에게 어떤 시간으로 정의되길 바라시나요?

WD.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고 대응 방안을 찾는 연습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그 안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여유와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고 배척하기 보다 일단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경험의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어요.


MILK) 마지막으로 아빠가 그리는 재준이의 미래가 궁금합니다.

아빠에게 재준이와 함께 하는 모든 순간은 힐링 그 자체입니다.

재준이가 어떤 아이로 자라기를 기대하기보다 지금처럼 친구 같은 아들로 함께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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