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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의 소중함, 책읽기의 즐거움 뭣이 중헌디

35개월 아들의 독서법

저녁 9시 다가오면 우리 집에서는 숫자를 묻는 대화가 꼬리를 잇는다.


"아들, 지금 몇 시니?"

"아빠 짧은바늘이 9에 갔어요?"

"잠은 몇 시에 자야지?"

"오늘은 며칠이고, 지금 자고 나면 며칠이 되지?"

"1번 치카치카를 해요, 2번 방에 들어가요, 3번 책을 골라요...."


앙꼬가 말을 하기 시작했던 14개월 전후부터 엄마, 아빠만큼이나 앙꼬가 많이 한 말은 숫자였다.

말을 하는 것도 신기하게 여겨지던 초보 엄마 아빠에게 1부터 10까지 수를 말하고, 글자와 숫자 중 숫자를 먼저 구분했던 것 같았으며, 영어와 일본어, 프랑스어의 낯섦을 지우기 위해 우리 부부는 늘 숫자를 기제로 활용했고 앙꼬에게 그런 시도는 늘 유효했다.(물론 그 외국어들은 숫자를 읽는데서 크게 발전하진 않았다.^^;)

1에서 10으로, 10에서 100으로, 숫자는 시곗바늘과 자동차 번호판으로, 아파트 동호수로, 버스번호로 이어오던 숫자에 대한 관심은 어느덧 잠자기 전 읽어야 하는 책의 숫자로 옮겨왔다.

그리고 늘 그렇듯 잠자리에 들기 전 아들과 나는 몇 권의 책을 읽을지를 갖고 지루한 실랑이를 시작한다.


앙꼬군의 취침 패턴은 밤 9시에 불 끄고 방에 들어가서, 책을 읽은 다음 9시 30분부터는 잠자기 위해 노력하다, 10시에 자기로 했지만 대부분 10시 30분이 되어야 겨우 잠이 드는 형국이었다. 워낙 한 번에 자는 경우가 없고, 엄마빠 침대와 본인 침대를 오르락내리락하며 1시간 남짓 시간이 무료하게 흘려보냈다.

그렇기에 그날 밤 읽어줄 책의 수를 정하는 일은 우리 가족의 취침시간을 정하는 중요한 과정이었다.


30개월 이후 고집을 기반으로 한 흥정의 대가가 된 앙꼬는 절대 물러서지 않기 때문에 흥정 마지노선을 최소한으로 잡고 적은 숫자를 앙꼬보다 먼저 외치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은 세 권만 읽자."

한 권이나 두 권은 역효과를 불러일으켜 독서의 최대 숫자인 열 권을 불러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 앙꼬는 이렇게 외친다.

"아홉 권"

보통 내가 제시한 숫자보다 한 권 정도를 더 외치는 것에 비해 오늘은 더 많은 책을 읽어달라고 하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엿보이는 숫자다

좋다. 나도 물러설 수 없다.

"안돼. 세 권"

평소와는 달리 한 권도 양보하지 않은 숫자를 제시했다.

나의 강수에도 불구하고 앙꼬는 일말의 머뭇거림도 자신의 숫자를 외친다.

"아홉 권"

더욱 단호해야 한다. 여기서 밀리면 안 된다.

"세 권!"

좋았어. 흥분하지 않은 목소리 톤에 적당히 위엄이...

자연스러웠다는 자기만족의 생각이 그 끝을 맺기도 전에 앙꼬의 앙칼진 한 옥타브 높은 목소리가 고막을 뚫는다.

"아홉꿔~언!!!"

당황한 나는 언성을 높이고 만다.

"안됏! 세권"

당황한 앙꼬는 울먹이며 떼를 쓰기 시작한다.

"~아호~옵 꿔~언~"

이미 고성 카드를 써버린 내게 다음 카드는 변함없이 단호한 고성과 어쩌면 화다.

"안 된다구. 벌써 9시 15분이 지났잖아. 아홉 권을 읽으면 10시 30분이 넘어간다구."

논리성을 띈 설명도 고성에 묻혀 아들의 설움을 자극했다.

갑자기 아들이 울기 시작한다.

"아홉 권 읽어줘요~~~~"

오늘 밤에는 세권 읽어주고 내일 여섯 권 읽어주겠다는 엄마의 회유도 속수무책 오늘따라 씨알도 안 먹힌다.

왜 그랬을까. 세권 아니면 책을 읽어주지 않겠다고 하고 난 내 침대에 누워버렸고, 아들은 엄마 품에 안겨 '아홉궈언'을 목놓아 외치며 울고 있다.


결국 그날 아내는 앙꼬에게 약속한 아홉 권의 책을 모두 읽어주었고 기분이 좋아진 앙꼬는 평상시처럼 잠들기 전 세레모니로 아빠 엄마의 볼에 뽀뽀를 해주는데, 난 뭐가 그리 속상했는지 등 돌려 자는 척만 했다.


그때 등 돌려 모로 누운 내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

'제때 자기로 한 우리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맞는가, 책 읽기라는 좋은 습관이 들 수 있도록 책을 더 읽어주는 것이 맞는가.'

제법 합리적으로 보이는 이 고민은 지금 생각해보면 애당초 등위가 아니었기에 성립하는 등위의 선택지가 아니다. 생각해보면 아마 앙꼬의 머릿속에는 '9권 읽고 10시에 자면 되잖아' 아니었을까.

생각이 그쯤 미치자 아들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잠잘 시간 아들의 에너지가 넘쳐난 것이 아들 탓은 아니잖나. 아들이 더 많은 책을 읽고 싶은 것 역시 충분히 채워줘야 하는 아들의 욕구 아니던가. 더 많이 놀아주고 제때 잘 수 있도록 잘 이끌어 주되, 읽어달라는 책은 충분히 읽어주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날 이후 나는 아들에게 날이 밝을 때 책을 더 읽어주려고 하고 있고, 잠자는 준비시간을 더욱 늘려 10권 정도의 책을 충분히 읽어줄 수 있는 타이밍에 안방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잠은 10시에 자는 것으로 하고 있다.


'프랑스 아이처럼'이란 육아 관련 서적을 보면 프랑스 엄마들은 다른 것들은 몰라도, 취침시간 엄수와 식사 예절은 엄격히 지키게 한다고 적혀있다. 우리 부부 역시 그 두 가지는 꼭 잡으려고 했지만, 앙꼬의 3년 육아 중 가장 정돈되지 않은 두 과제가 식사와 수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앙꼬는 섬세한 감정과 집중력 있는 모습으로 우리 부부에게 큰 행복을 주고 있으므로 그 둘의 큰 걱정은 아니다. 다소 피곤할 수는 있지만...


3년이나 아들을 키웠지만 거의 매 시간 다른 종류의 인격체를 맞이하는 것 같고, 요즘의 아들은 미운 4살이라기보단 꽤 얘기할만한 상대로서의 4살이다. 어떤 아이인가는 무엇에 반응하는 아이인가와 상통하는 부분 있다 믿는데, 난 앙꼬가 본인의 행복과 만족감을 직감하고 그에 명민하게 반응하는 아이이길 희망한다. 어느 정도의 규칙 속에 약간의 예외적인 의사 표시한 그 내용이 앙꼬가 갈구하는 행복의 길이라 믿고 그 만족감을 채워주고자 한다. 물론 가족이란 울타리 내에서 말이다.


2017. 07. 14. 워킹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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