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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화수 Oct 07. 2018

운명에 체념하지 않을 수 없었을까

영화 '관상'을 다시 봐야 하는 이유


영화 '관상', 한재림 감독, 송강호, 이정재, 백윤식, 조정석, 이종석, 김혜수 주연, 2013년




얼굴만 보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천재 관상가 '내경(송강호 분)'

뛰어난 재주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처남 '팽헌(조정석 분)'과 아들 '진형(이종석 분)'과 산속에 칩거하며 살고 있다.


약초와 산나물을 캐고 가끔 닭 한 마리를 함께 나눠 먹는 것을 행복으로 여기며 소박한 삶을 이어가던 그들. 총명한 아들 진형은 과거시험을 통해 관직에 오르고 싶어 하나 내경은 이 점이 못마땅하다. 선대의 잘못으로 멸문한 가문에서 아들이 관직에 오른다는 것이 얼마나 험한 일일지 모르지 않았기 때문. 하지만 진형은 관리들의 부정과 부패로 민초들이 고통받는 삶을 목격하며 반드시 관직에 올라 이들을 보살피겠노라 다짐한다.



영화 '관상' 중에서



그러던 어느 날,

소문을 듣고 찾아온 관상 보는 기생 '연홍(김혜수 분)'의 제안으로 내경은 연홍의 기방에서 사람들의 관상을 봐주기로 한다. 용한 관상쟁이로 한양 바닥에 소문이 돌던 무렵, 내경은 '김종서(백윤식 분)'로부터 사헌부를 도와 인재를 등용하라는 명을 받고 입궐한다. 그 무렵 아들 진형도 과거에 급제해 관직을 받는다.

 

과거 준비할 때 무엇이 가장 힘든 것이었소?
운명에 체념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영화 '관상' 중에서



김종서는 내경에게 '수양대군(이정재 분)'이 역모를 꾀하고 있으니, 그의 관상을 살펴 역모를 막아내야 한다고 주문한다. 수양대군 역시 내경을 자신의 편으로 포섭하려고 회유한다.

그저 자신과 가족 그리고 가문의 안위 만을 도모하던 내경에게 거대한 권력의 충돌은 두려운 일.

하지만 갈등하던 내경이 결심을 굳이게 된 건 아들 진형과의 대화로부터였다.


하고 있는 일이 보잘것없지 않으냐...
아니옵니다.
비록 작은 일이지만
이 일로 어려운 양민들을 도울 수 있고
선대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보람을 느낍니다
그래...
그럼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구나...



영화 '관상' 중에서



내경은 김종서를 도와 수양대군의 역모를 막기 위해 힘쓴다.

하지만 수양대군의 곁에는 시대의 책사 '한명회(김의성 분)'가 있었고, 김종서와 내경의 모든 노력들은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김종서 역시 수양대군의 철퇴를 맞고 죽음에 이른다.  


 

영화 '관상' 중에서



김종서를 도왔다는 이유로,

내경의 아들 진형은 두 눈이 뽑힌 채 수양대군에 의해 죽음을 당한다.  


다시 외딴섬으로 떠난 내경.

그를 한명회가 찾아와 다시 회유하려 든다.


난 사람의 얼굴을 봤을 뿐
시대의 모습을 보지 못했소
시시각각 변하는 파도만 본 격이지...
바람을 보아야 하는데...
파도를 만드는 건 바람인데 말이오.
당신들은 단지 높은 파도를 탔을 뿐이오.
우리는 단지 낮게 쓸려가는 중이었소만...
언젠간 오를 날이 있지 않겠소.
높이 오르는 파도가 언젠가 부서지듯이...






한 대형교회의 부자세습이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다.

그 교회 원로목사는 어렵게 교회를 개척해 크게 성장시켰고, 많은 이들을 구제하고 도우면서 존경을 받았었다.

그의 은퇴가 가까워지며 후계에 대해 사람들이 궁금해할 무렵, 그는 공사석을 막론하고 "결코 세습하지 않겠다"라고 단언했었다.

반듯하게 성장해 목회자가 된 그의 아들 역시 "세습하지 않겠다"라고 공언했다. "세습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인가라는 논쟁 이전에 시대가 세습을 용인하지 않는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바르게 응답해야 한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결국 세습을 '했다'.
혹은 '받아들였다'.
말은 다르지만 결과는 같다.


왜 이들에게 고민이 없었겠는가. 세습을 하면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 왜 예측하지 못했겠는가.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을 걱정했을 것이다. 자신이 교회를 개척하고 지금까지 오면서 겪었던 많은 어려움들을 떠올렸을 것이다. 할 수 있다면 아들에게는 이러한 어려움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어떻게든 수고를 덜어주고 싶었을 것이다. 모든 아버지의 마음이 그러하듯...  

아들은 아버지를 걱정했을 것이다. 한 평생을 헌신해 이룩한 아버지의 업적을 지켜드리고 싶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하셨던 일들이 앞으로도 계속 지속되길 바랐을 것이다. 아버지가 은퇴한 이후에도 지금처럼 부족함 없이 사역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고 싶었을 것이다. 모든 아들의 마음이 그러하듯...

그러해서인지 결국 세습은 이루어졌고, 많은 이들로부터 비난과 책망을 받고 있다.


이런 기대는 허망한 것이었을까...

누군가 이들에게 세습하는 것이'운명'이라고 이야기했다면,


 '운명에 체념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답할 것이라는 그런 기대...


"이 시간은 내가 개인적으로 우리 가족과 후손들에게 조용히 하고 싶은 말을 몇 마디 남기려고 한다. 나는 솔직히 우리 자손들에게 남길 유산은 하나도 없다. 문자 그대로 나는 내게 속한 집 한 간, 땅 한 평도 없는 사람이다. 그것은 이미 너희들도 알 줄 생각한다. 내가 그동안 교회, 혹은 학교 재단 법인 이사장으로서 내 이름으로 혹 등록된 재산이 있기도 하였고 아마 현재도 더러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다 공적인 재산이고 내 것이 아니다. 이미 대강 다 알 줄로 생각하지만 나는 본래 내 몸을 하나님께 바칠 때에 그저 온전히 모든 것을 바치기로 결심하였다. 나는 주님을 따르는 한 종으로서 언제나 주님의 말씀이 내 귀에 들려온다. '공중의 나는 새도 집이 있고 여우도 굴이 있지만 나는 머리 둘 곳이 없다'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이 기억되어서 이러한 주님을 따르는 나로서 무슨 재산을 소유한다고 하는 것은 어딘가 모르게 부끄럽게 생각이 된 까닭이다.(중략) 이 세상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그저 나그네가 길 가는 것과 같다. 길을 가면서 꽃씨를 뿌리면 내가 지나간 길에 꽃이 많이 필 것이다. 항상 좋은 씨를 뿌려라. 꼭 심은 대로 거두게 될 것이다" - 한경직 목사의 유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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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 매거진 '이 영화를 다시 봐야 하는 이유'는 영화의 내용과 의미를 충실하게 전함으로써 영화를 보았거나 혹은 보지 못한 이들에게 '읽는 영화'로서의 재미를 선사함과 동시에 그 영화의 메시지가 우리에게 주는 사회적 의미를 되짚어보는 데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영화는 허구적 상상력의 집약체이지만, 그 허구는 현실로부터 벗어날 수 없으며 그 상상력도 인간의 심리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영화가 바라보고 있는 나름의 현실, 그리고 인간의 심리를 되짚어보는 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때로는 묵직한 울림을 주기도 하고, 흥미로운 통찰과 관점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영화를 읽으며, 사람과 세상을 알아가는 재미를 함께 누렸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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