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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화수 Nov 13. 2018

왜 눈먼 자들은  어두운 권력에 굴복하는가  

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를 다시 봐야 하는 이유

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 줄리안 무어, 마크러팔로 주연,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 2008년


평범한 어느 날 오후, 운전을 하던 한 남자가 갑자기 도로 위에 차를 세운다.

갑자기 눈 앞이 뿌옇게 흐려지면서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되는 상황. 이후 이 남자를 집에 데려다준 이도, 그를 간호한 아내도, 그가 들른 병원의 환자들도 모두 같은 증상으로 눈이 멀게 된다.

전염병과 같이 온 도시에는 눈먼 자들이 속출하게 되고 정부는 긴급히 수용소를 만들어 눈먼 자들을 한 곳에 몰아넣는다.


그를 치료했던 ‘의사(마크 러팔로 분)’ 역시 눈이 멀어 이 수용소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의사의 부인(줄리안 무어 분)’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전염되지 않았지만 눈먼 남편을 돌보기 위해 자발적으로 수용소에 수감된다.


영화 '눈 먼 자들의 도시' 중에서


갑자기 눈이 멀어버린 이들이 한 데 모여 있는 수용소.

전염이 두려워 누구도 이들 곁에 다가가지도 도움을 주지도 않는다. 심지어 전염을 예방한다는 이유로 군인들은 외벽을 지키며 이곳을 이탈하려는 이들을 가차 없이 사살한다.


화장실을 가려면 서로의 어깨에 손을 얹어서 줄을 지어 가야 하고, 작은 장애물에도 넘어지고 서로 부딪혀서 부상을 입는 일이 속출한다. 잠시 자신의 자리를 떠났다가는 다시 돌아오지도 못하는 극도의 혼란한 상황.

이 공포와 불안감으로 점철된 공간에서 의사의 부인은 묵묵히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돕는다. 오직 자신만이 볼 수 있다는 부담감과 홀로 그들을 돌보기에는 힘에 붙이는 상황에서도 그녀는 있는 힘을 다해 눈먼 자들을 돕는다.


영화 '눈 먼 자들의 도시' 중에서


눈을 감는 게 두려워?
아니, 나는 눈을 뜨는 게 더 두려워...

점점 지쳐가는 그녀...

수용소에는 점점 식량과 의약품의 공급이 줄어든다. 공급을 늘여달라는 그녀의 호소에 군인들은 총격을 가하며 위협한다.

앞을 볼 수 없다는 불안감과 공포에 굶주림과 고통이 더해진 수용소.

눈먼 이들은 이제 화장실을 찾아 나서지 않는다. 나도 그들을 볼 수 없고, 그들도 나를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익숙해지면서 아무 곳에서나 용변을 보고, 아무 곳에서나 먹는다. 심지어 상대가 누구인지 확인하지 않고 성관계를 맺기도 한다. 수치심이 사라진 공간.

오직 앞을 볼 수 있는 그녀만이 이 모든 광경을 목격한다.


영화 '눈 먼 자들의 도시' 중에서


이 야만의 공간에 새로운 권력자가 등장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앞을 보지 못했던 자들. 어두움에 익숙한 자들이 갑자기 앞을 못 보게 된 이들을 지배하고 정복한다.


모든 식량과 의약품은 제3병동이 관리한다.
살고 싶으면 값나가는 걸 가져와!



말도 안 되는 이 요구에 눈먼 자들은 어쩔 수 없이 순응한다.

끼고 있던 반지와 목걸이를 빼고 값나가는 시계를 풀어서 먹을 것과 바꾼다.

의사는 이 부당한 요구에 저항해보지만 무기력하기만 하다. 실망감에 빠져있는 의사에게 한 여인이 다가와 위로하고, 둘은 알 수 없는 끌림으로 관계를 맺는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의사의 부인.


아무 말도 하지 마.
이해할 수 있으니까...


영화 '눈 먼 자들의 도시' 중에서


이제 음식과 바꿀 귀금속도 다 떨어졌다. 어두움의 권력자들은 이제 다른 것을 요구한다.


바칠게 떨어졌다고?
그럼 대신 여자를 바쳐라!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이 요구에 눈먼 자들은 고민하고 갈등한다.

자신은 절대 이러한 요구에 응할 수 없다는 여성, 굶어 죽기 전에 누구든 선택해야 한다는 남성, 자신이 먼저 가겠다고 나서는 여성, 그 여성을 따라나서는 다른 여성, 존엄성은 값으로 칠 수 없다는 남성, 난들 뭐 다르냐며 가겠다는 여성, 더럽고 역겹다는 그 여성의 남편...


그럼 당신은 먹지 마! 앞으로...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의사의 아내도 자원한 여성들의 대열에 합류한다. 그렇게 8명의 여성들은 자신의 몸을 바쳐 자신과 다른 이들의 식량을 구해온다. 참담함 속에 다시 상황이 진정되는 듯했지만, 이 과정에서 한 여성이 극악한 폭력 속에 무참히 숨진다.

의사의 아내는 더 이상의 야만을 참지 못하고 날카로운 흉기를 들고 여성을 살해한 자를 찾아가 그를 죽이고 돌아온다.


영화 '눈 먼 자들의 도시' 중에서


어둠의 권력자들과 눈먼 자들은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 속에서 대립한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눈먼 자들은 의사의 아내를 어둠의 권력자들에게 넘겨주고 다시 그들에게 굴복하고 순응하자고 한다.


우리는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


이제 의사의 아내는 더 이상 참지 않고 수용소에 화재를 일으킨다.

그리고 자신이 아끼는 이들의 손을 잡고 수용소를 탈출해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다.

 

영화 '눈 먼 자들의 도시' 중에서





이 영화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포르투갈의 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볼 수 없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


두려움이다. 정확히 말하면 알 수 없음에서 오는 두려움이다.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전혀 알 수 없고, 나에게 닥칠 위험을 미리 감지할 수 없는 상태가 그 두려움의 뿌리다. 나는 볼 수 없는데 감시자는 나를 볼 수 있다는 이 극한의 두려움을 이용해 영국의 공리주의 사상가 제레미 벤담은 원형감옥 '파놉티콘(panopticon)’을 설계하기도 했다.


제레미 벤담이 설계한 원형감옥 '파놉티콘', 중심의 감시탑은 어둡고, 각각의 방은 밝다. 감시자는 수감자를 볼 수 있지만 수감자는 감시자를 볼 수 없다.


불안과 공포는 '의존(dependence)'을 불러오고 의존은 '권력관계'를 형성한다.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사람들은 스스로의 이성적 사고와 판단을 유보하고 자기를 대신해 두려움을 해소해 줄 누군가를 찾는다.


두려움을 의존을 통해 해소하려 할 때
'독재자'가 탄생한다.


'독재자는 대중의 두려움을 먹고 산다'라고 했던가. 그래서 독재자는 자신이 독재를 하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단지 '당신을 위협하는 적이 있다'라고 말한다. 그 적으로부터 당신을 지켜주겠다고 말한다. 다만 그 적이 누구인지는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대신 그 적의 실체를 알려고 하면 '배신'이라는 딱지를 붙인다.


두려움이 클수록, 무지가 깊어질수록 독재는 쉽다. 이 권력에 부역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는 자들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들은 독재자의 그늘에서 기생함으로써 구축된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체제 유지에 앞장선다. 이들은 공포를 조장하고, 갈등을 부추기며 폭력적 수단을 앞세운다. 이 때문에 개인의 생각은 말살되고, 자유는 위축되며, 존엄은 훼손되지만 독재체제는 흔들림 없이 유지된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눈을 뜬다는 것...


세르비아 독재자 밀로셰비치를 권좌에서 끌어내린 비폭력 저항운동단체 '오트포르'의 리더였던 스르자 포포비치는 그의 저서 '독재자를 무너뜨리는 법'에서 이렇게 말했다. "밀로셰비치의 독재는 결국 두려움을 먹고 자라는 것이었다. 이웃에 대한 두려움, 감시에 대한 두려움, 경찰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이 모든 것에 대한 두려움. 그러나 공포의 시절 우리 세르비아인들은 두려움의 가장 큰 적수가 웃음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눈을 뜬다는 건 결국 그 누구도 완벽하게 볼 수 없다는 걸 깨닫는 것 아닐까? 나의 두려움은 누군가를 의존해서 해소될 수 없는 것이라는 걸 알게되는 것 아닐까? 그래서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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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 매거진 '이 영화를 다시 봐야 하는 이유'는 영화의 내용과 의미를 충실하게 전함으로써 영화를 보았거나 혹은 보지 못한 이들에게 '읽는 영화'로서의 재미를 선사함과 동시에 그 영화의 메시지가 우리에게 주는 사회적 의미를 되짚어보는 데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영화는 허구적 상상력의 집약체이지만, 그 허구는 현실로부터 벗어날 수 없으며 그 상상력도 인간의 심리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영화가 바라보고 있는 나름의 현실, 그리고 인간의 심리를 되짚어보는 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때로는 묵직한 울림을 주기도 하고, 흥미로운 통찰과 관점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영화를 읽으며, 사람과 세상을 알아가는 재미를 함께 누렸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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