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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슨한 빌리지 Aug 05. 2019

내 인생은 이제부터야

60. 박막례·김유라,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

*한 달에 한 주제를 정해서 책 2권과 영화 2편을 봅니다.
*매주 발제/녹취가 업로드됩니다.
*7월의 주제는 [여행]입니다.


*7월 주제 [몸] 일정표

- 영화  〈델마와 루이스〉(1991), 리들리 스콧

- 책 『대도시의 사랑법』(2019), 박상영
- 영화 〈안경〉(2007), 오기가미 나오코
- 책 『박막례, 이대로 죽을순 없다』(2019), 박막례·김유라


0. 들어가며


인생이라는 게 참...
세상에서 내 인생이 제일 불쌍하다 싶을 정도로
힘들었는데 말이여.

그때도
그 시련이 나한테 올 줄 알았는감?

인생은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구먼.

일흔한 살에
이런 행복이 나한테 올 줄 알았는감

ㅡ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 에필로그 중에서


할머니와 손녀가 친구처럼 해외여행을 다니는 모습은 확실히 낯선 장면이었다. 노인의 여행을 떠올릴 때면 생각하는 흔한 이미지들. 이를테면 단체 효도 패키지 관광이나 자식에 손주까지 거닌 대가족의 일원으로 참여하는 여행과는 결이 달랐다. 박막례 할머니와 손녀 김유라의 여행은 '노인'과 '여행'이라는 두 가지 프레임을 보란듯이 깨버린 새로운 이야기였다.



1. '할머니 일반'의 서사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 알라딘 책 소개 카드 뉴스 中


그러니까 내 말은 우리 할머니처럼 살기 싫었다는 거다.
그녀는 70 평생을 아버지 때문에, 남편 때문에, 자식들 때문에
허리가 굽어라 일만 하시다가 
"박막례 씨, 치매 올 가능성이 높네요."
라는 말을 들어야 하는 불쌍한 인생.
할머니가 병원에서 치매 위험 진단을 받은 날,
내 나이 스물일곱이었고 인생은 진짜 불공평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  하프타임 中


이제는 신화(?)가 된 Korea Grandma 박막례 채널의 시작은 한 여행에서부터였다. 손녀 유라씨는 할머니가 치매 위험 진단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단둘이 여행을 가야겠다고 결심한다. 여행의 이유는 인터넷 치매 환자 카페에서 발견한 한 문장 때문이었다.


치매는 의미의 병입니다.


자신의 존재가 더 이상 큰 의미가 없다고 판단할 때 서서히 기억을 잃어간다는 내용의 글을 읽고 김유라 PD는 할머니가 왜 살아야 하는지, 왜 존재해야 하는지 당신 삶의 의미를 찾게 하고 싶어 '자유여행'을 기획한다. 여행지가 '호주 케언스'가 된 까닭은 호주 관광청에서 일하는 지인이 할머니와 함께 할 수 있는 액티비티가 많다는 말을 해줬기 때문이라고 한다.


책의 전반부에는 60페이지 남짓한 적은 분량에 박막례 할머니의 70년 인생사가 담겨 있다.


1인 크리에이터 박막례 할머니 - 이미지 출처 : 한국콘텐츠진흥원

막내 딸로 태어나 '막례'가 된 사연부터 집에서 공부를 배우지 못하게 하여 서러웠던 어린 시절, 결혼 후 산전수전공중전까지 겪으며 과일, 떡, 꽃 리어카장사부터 안해본 일이 없었던 아픈 이야기들, 동향 동생으로부터 사기당한 이야기, 용인의 자매식당을 내고나서의 에피소드까지 늘어놓으면 수십 권이 될만한 이야기를 짧고 진솔하게 정리한다.

배움에서 소외되고, 가사노동을 하는 와중에 가정을 돌보지 않아 자식들의 생계까지 책임져야했던 '어머니'서사는 유튜브의 즐겁게 새로운 것들을 즐기는 '크리에이터 박막례' 서사의 밑바탕이 되었다. 인과적으로 이렇게 살아왔기에 지금의 박막례 할머니가 나왔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전반전'의 서사는 비슷한 시대의 수많은 어머니들의 겪어온 보편적이라면 보편적인 이야기이고 그렇기에 '할머니'라는 이미지는 '시골이나 집에 계시는, 밥을 해주시는, 효도 관광을 가시는, 보호받아야 하는' 같은 할머니 일반으로 개념화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김유라PD가 '자유 여행'을 선택한 이유는 자신의 할머니가 '할머니 일반'으로 늙어가는 것을, 자기 자신이 먼 미래에 맞이할 '할머니 일반'이 되어갈 것을 거부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더불어 김유라PD가 퇴사 카드를 꺼낸 것도 비슷한 맥락일 것 같다. '할머니 일반'의 서사에서 자식들, 스페셜리하게 효자/효녀 캐릭터들의 전형적인 에피소드 중에는 '있을 때 잘할 걸'이 있다. 대충 예상은 했을 것이다.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지만 일을 하느라고 가족에게 소홀해 때를 놓치는 이야기는 길거리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면 열에 한 명을 나올만한 일반적인 이야기다. 때문에 김유라PD는 때를 놓치지 않기로 마음 먹은 것이고 결과적으로 할머니와 자신의 인생을 바꾼 기회를 잡게 된 것이다.



2. 노인의 자유 여행


유튜브 채널 <박막례 할머니>  유럽여행 편 캡쳐

케언스 여행에서 박막례 할머니는 많은 것들에 도전했다. 스쿠버 다이빙, 헬맷 다이빙, 워터파크, 캥거루 체험, 카지노까지 '노인'이라면 지레 주변사람들이 만류하는 액티비티들을 즐기며 수행했다. 가족끼리 돌려보고 할머니께서 두고두고 보시라고 브이로그처럼 찍은 3분 29초의 영상은 여행의 미치다 채널 등 다양한 곳에서 화제가 되었고 2019년 7월 현재 110만 조회수를 기록하는 '대박영상'이 되었다.

책에는 이 영상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담겨있다. 이를테면 영상에서는 스쿠버다이빙 체험을 하러가서 2분 만에 물에서 나와 앓았다고만 나오는 장면에서 할머니는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진술한다. 누군가한테 밀쳐져서 멀리 떠내려가는데 수영을 못해 물에 빠졌더라고 안전교육때 배운 손을 위로 들라는 것만 생각하면서 살려달라고 했더라고 그때를 회상한다. 다행히 여행사 직원이 할머니를 발견하고 구조가 되었고, 그렇게 호주 여행은 악몽이 될 뻔했다.

여행을 진저리 나는 경험으로 끝마칠 수 있는 상황이다.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사람이 다음으로 예정된 '헬맷 다이빙(헬맷을 쓰고 바다 속을 걷는 액티비티)을 들어갈 수 있겠는가. 하지만 박막례 할머니는 스스로의 여행을 개척해낸다. 용기를 내어 다시 바다 속으로 들어갔고 이렇게 말한다.


오메, 안 들어갔으면 진짜 후회할 뻔했시야?
그 가이드 아저씨 말이 맞았시야? 
세상천지 그렇게 큰 물고기 처음 봤다! 
진짜 숨쉬기도 편하고, 사진 찍기도 편하고, 내 안방같이 바닷속을 걸어다녔다. 

세상에, 세상에! 이런 세상이 있구나. 
이런 바다가 있고, 이런 물고기가 있고... 
나는 진짜 바보였구나.
-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  1. 이 모든 것의 시작, 호주 케언스 中


할머니의 용기있는 한 발은 스스로가 주인공일 수 있게 하는 멋진 행동이었다. 앞서 언급한 노인하면 떠오르는 여행, 가령 패키지 관광이나 대가족의 일원으로 떠나는 여행은 '수동적인 여행'이다. 때 되면 제한 시간에 맞춰 관광지를 보여주고, 시간 되면 예정된 밥집에서 밥을 먹고, 차에서 콩떡같은 간식을 나눠먹으며, 때로는 원하지도 않는 옥장판 가게에 들려야하는 여행. 아니면 가족 구성원 모두가 할머니를 '모시고'가는 여행. 여행에서 노인은 주체보다는 배경이 된다. 때문에 박막례 할머니의 '자유 여행'은 특별한 것이고, 예약한 액티비티들을 즐기는 노인의 모습은 더더욱 특수한 것이다. 이후 할머니는 카트 체험, 패러글라이딩, 빌딩 등반(?) 등 몸 성한 젊은 사람들도 용기내기 어려운 액티비티에 기꺼이 참여하고, 그것을 즐긴다. 내 인생은 이제부터야! 라는 그녀의 말마따나 주인공이 된 '막례쓰'는 당당히 스포트라이트를 즐기며 포커싱된다.


3. 일상도 여행처럼


유튜브 채널 <박막례 할머니> 서브웨이 광고 캡쳐

할머니의 여행은 여행지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녀에게는 일상이 여행이고 모험이다. 비단 광고일지어도 작성시점 가장 최근 콘텐츠인 <써브웨이에 간 막례 할머니>편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어 간판의 가게에 들어가는 일, 주문할 것이 많은 복잡한 가게의 룰을 체험하는 일은 할머니께는 어려운 미션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이전에도 그래왔듯이 당당하게 도전한다. 주문하는 일도, 처음 먹어보는 샌드위치를 먹는 일도 두려움없이 진행된다.(영화관에 가는 일이나 맥도날드에서 무인주문대를 이용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편집된 영상과는 다르게 책에서는 이따금 할머니의 주저함이 드러나는데, 대개는 '이걸 내 나이에 해도 되는 걸까?'라는 것들, 이를테면 놀이공원의 고령자제한이나 민소매를 원피스를 입는 일 같은 것들이다. 이런 대목들 그리고 서브웨이 광고 영상에서 영어 간판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 나는 노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본적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에겐 아무렇지도 않은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용기를 내어 들어가야하는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은 꽤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박막례 할머니의 콘텐츠는 매순간이 여행같이 연출된다. 해보지 않은 일을 하기에 늦은 나이는 없다는 것을 증명하듯, 할머니는 도전한다. 그리고 그 순간을 몸에 새긴다. 안전한 길을 택하고, 익숙한 길을 택해온 나는 책을 읽으며, 그리고 유튜브 영상을 보며 반성하게 된다. 나 스스로를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과소평가한 것은 아닌지, 스스로 주체가 될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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