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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마키 Sep 12. 2022

있는 그대로 봐줘요

MBTI 이제 지겨워요

몇 년 전부터 MBTI 성격 유형검사 붐이 일어나더니 아직까지 유행이다. 예전에 4개의 혈액형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도 이해 안 갔는데 MBTI도 고작 4개의 알파벳으로 성격을 구분하다니.

나는 어릴 때부터 최신 문물에 아주 느린 사람이었다. 친구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시작할 때도, 싸이월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순으로 바꿀 때도 제일 마지막 순서로 뒤늦은 활동을 했다. 이런 내가 한창 MBTI  유행일 때도 잘 몰랐다. 한 번은 직장에서 20대 중반 인턴분에 나에게 MBTI에 대해 말했다. 나는 들어본 적은 있지만 해본 적은 없다고, 4개의 알파벳으로 여러 경우의 수가 나오는데 그걸 다 외우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인턴은 나에게 T 같다고 말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당시 내가 공감을 잘 못해줬나 보다.

나는 혈액형과 MBTI는 취급을 안 하면서 어릴 때부터 별자리는 좋아했다. 나는 4월생이라 양자리인데 그것도 '산양자리'이다. '양자리 여자와 **자리 남자'와 같이 나와 맞는 궁합을 찾아보고 상대 생일을 알아내 성격을 파악하려 했다. 나는 사자자리와 사수자리가 맞는다는데 만나본 적은 없다. 나는 인턴에게 별자리에 따른 성격도 있다면서 무슨 별자리냐, 원래 별자리가 12개인데 이번에 '뱀주인자리'가 추가되어서 13개가 되었다는 내 관심사를 주저리 얘기하니 MZ세대는 듣는 둥 마는 둥.


1년 전부터 지금까지 심심할 때마다 MBTI 검사를 해보면 다양하게 나왔다. ISFP, INFP 이 두 유형만 빼고 웬만하건 다 나온 것 같다.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외향형으로 나온 검사를 올리면 '너는 내향일 줄 알았는데'라는 반응과, 검사를 하면 매번 다른 유형이 나온다는 스토리를 올리면 '난 항상 한 가지만 나오는데 다양하게 나오는 사람들 이해가 안되더라'라는 마상(마음의 상처)의 답변을 보내온다. 다들 MBTI에 맹목적이다 보니 나도 어느 순간 '****여자와 ****남자' 궁합을 찾아보고 다른 유형의 장단점도 찾아보게 되었다. 그러다 문득 사람 안에는 천사와 악마가 공존하고 상황에 따라 다른 자아가 나오고 성격은 3년 주기로 바뀐다는 속설을 생각하게 되었다. (최근 몇 년 동안 아주 어릴 적 친구들을 만난 적이 있다. 다들 어릴 때 성격 그대로라며 말했지만 사실 10년이면 강산이 몇 번이나 변한다. 예전 그 친구가 아닌 새로운 사람인 것이다.) 

이렇듯 사람은 여러 성격들이 내재되어 있다. 한 가지 유형으로 사람을 규정하는 게 말이 되나? 어린아이처럼 너는 이거고 나는 이거야라며 엑셀로 분류할 일인가? 그날 기분에 따라 다르게 선택하는 게 있을 테고,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기 때문에 그 결과에 따라 다른 유형이 나올 수 있다. 나는 원체 설명하는걸 귀찮아하기에, 응 나는 이중인격인가 봐~ 다중인가 봐~라며 때우는데 어떤 사람이 마음의 위로가 되는 고마운 말을 해줬다. '그건 다중인격이 아니라 어느 쪽에나 다 무던하다는 얘기예요. 상대를 잘 맞춰준다는 얘기죠.'    

ESTJ, ENFJ, ISFJ, INTJ 등 설명을 보면 다 나 같다. 나 말고도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 외향 E/ 내향 I

난 외향, 내향 반반이다. 엄마도 내게 넌 막 외향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막 내향도 아니라고 했다. 친한 대학 친구들 중에서도 나를 E로 보는 친구, I로 보는 친구들이 있다. 

예전에 고작 21-22살일 때 일이다. 동네에서 데이트를 하는데, 코스처럼 유명한 맛집인 청수우동을 먹고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면 또 다른 유명한 패트릭스라는 와플가게가 위치해 있다. 와플가게는 동네에 1호점, 2호점이 있는데 외국인 형제가 나누어 운영을 한다. 그 사실을 몰랐던 내가 사장님을 보고서 '어? 2호 점에도 비슷하게 생기신 분 있는데 두 분이 형제세요? 오 어쩐지~ 닮았다 생각했어요~ 한국에 온 지 오래되셨나 봐요~ 와플 진짜 맛있어요!!'라고 오지랖 부리는 대화를 했더니 옆에 있던 친구가 왜 이렇게 아줌마 같냐며 핀잔줬던 기억이 있다. 재수해서 들어간 학교도 동갑친구들이 나보다 1년 선배였으니 학교에서 마주치면 한때 개그우먼 안영미가 했던 톤처럼 '선배님~ 밥 사 주세요~~ 선배잖아요~~ 밥 사 줘요 밥~'이라며 동갑에게 선배님이란 호칭을 써가며 치근덕댔다. 싸이월드 다이어리도 오랜만에 봤더니 어찌나 심심했는지 나에게 다 연락하라고 썼다. 여의도 오면 무조건 '서글렁탕' 사주겠다 말하고, 친구가 sns에 여의도 온 걸 올리면 여의도면 무조건 나지 왜 연락 안 하냐며 서운해한다. 최근에 학교에서도 보조연구원과 포스터를 붙이러 다닐 때가 있었는데 아는 얼굴이 보일 때마다 다가가서 인사하고 악수했다. 오랜만이라며 근황 물어보고 언제 밥 한번 먹자고 나는 빈말 싫어하니 꼭 약속 잡자고. 그랬더니 보조연구원이 살며시 내게 MBTI를 물었다.

사람 좋아하고 관심 많고 챙겨주는 걸 좋아하고 내게 관심 가져주면 멍뭉이처럼 꼬리를 흔든다. 혼자 자취하는 친구나 결혼한 친구에게 디저트, 반찬, 귤 등 챙겨주는 걸 좋아한다. 외향, 내향을 떠나서 오지랖 선택 부분은 없나?

- 직관 N/ 현실 S

이 부분도 반반이긴 하지만 N의 경우가 더 크려나? 중학생 때부터 하찮은 나의 정신세계로 고차원적으로 깊이 생각할 때마다 나의 영혼은 원대한데 작디작은 여자아이 육체에 갇혀있다고 생각한 적 있다. 지금 생각하면 딱 중2병이다. 옛날에 핸드폰으로 하는 뇌구조 테스트가 유행일 때 아래의 이미지와 같이 나왔다.

지금과 별반 다를 것 없이 삽질도 잘하고 터무니없는 이상을 좇는다는 얘길 듣는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특이하고 또라이란 얘기를 종종 들었다. N은 상상이고 S는 현실이라 하지만, S는 현실이 아닌 감각형이라 한다. 경험에 의존해 안정을 추구한다. 어떤 제품을 조립할 때 설명서를 기반으로 처리한다고 한다. 보통 여자애들은 '만약에~ 이럴 거야? 저럴 거야?'라는 놀이를 많이 한다. 나의 창의력으로 정말 힘든 놀이이다. 일어나지 않을 일들에 관심 없는 나는 그럼 S의 경우가 더 크려나?


- 감정 F/ 사고 T

내 바운더리 안에 든 사람 위주로 갈리는 것 같다. 내가 하는 말에 상처를 입진 않을지 눈치 보고 생각을 많이 한다. 연락조차 전송을 누르기 전에 썼다 지웠다를 반복. 보내 놓고 또다시 전송취소를 누르기도 한다. 나도 그랬는데 너도 그랬던 적이 있었다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상대방의 사연에 푹 빠져 공감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린다. 희생과 고생을 사서 하는 타입. 하지만 바운더리 외에서는 약한 모습을 들키기 싫어한다. 겉으론 나를 강단 있고 냉정하게 본다. 뚝심 있고 은근 깡이 있다고도 한다. 외유내강이라 듣지만 사실 외강내유이다. 나를 잘 알고 편안한 사람에겐 마음을 표출하고 풀이 죽거나 모든 의욕이 사라진 모습을 보인다. 나를 시간적으론 오래되었지만 단편적으로 아는 관계에선 일과 생활면에서 열정과 욕심 있는 사람으로 본다. 이런 이야기를 편한 친구에게 말하면 '응? 너가?'. 그리고 내 감정보다 남의 감정을 먼저 챙겨주는 일이 많아서 다정함이나 칭찬, 애정표현을 듣는 것에 상당히 취약하다. 이는 내 사람 한정으로 그 이외엔 쓸데없는 감정낭비, 시간낭비를 싫어한다. 간혹 영혼이 없다고도 들어서 정말 영혼과 성의 없는 사람들을 단번에 알아본다. 관계 유지에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티가 나는 법.


- 계획 J/ 탐색 P

초등학생 때 방학과제로 주는 그림일기를 개학 전에 몰아서 급하게 처리했던 추억이 생각난다. 중학생과 고등학생 땐 입시하느라 어쩔 수 없는 계획형 쳇바퀴에 살았다. 이후 자유분방함의 대명사 대학생이 되었을 땐 다시 초등학생 때로 돌아갔다. 아무 생각 없이 다녔다. 그래도 무슨 일을 계획하거나 앞두고 있을 때 또는 상대방 생일일 때는 최소 3개월 전부터 준비한다. 하지만 퇴사 후 혼자 여행을 계획하고 제주도를 갔을 때 그때 깨달았다. 나는 계획형의 인간인 줄 알았는데 은근 즉흥적인 사람이었구나. 하지만 지인들과의 약속은 무조건 J에 가깝다. 약속은 신뢰로, 어떤 사람이 계속 약속을 미룬다? 그건 만나기 싫기 때문에 미루고 미루는 것이다.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명확하게 아는 사람이 부럽다. 어쩌면 나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반반일 수도 있다. 아는 동기 오빠가 내게 허접한 연애 관련 조언을 해준 적 있다. 자기는 지금까지 몇 번의 연애를 해왔으니 잘 안다며 자기는 좋아하고 싫어하는 게 분명하단다. 그러면서 내게 그 지점에 대해 잘 모르는 점을 지적했다. 내가 볼 땐 사회화가 덜 된 성격에 여자에 대해 모르는 쑥맥이다. 연애는 처음 만나는 상대와 하기 때문에 손가락으로 세는 이전의 연애 횟수와는 상관없다. 이성을 정말 많이 만나본 사람조차 이성에 대해 잘 모른다. 사람마다 개성있는 장단점이 있고 각자만의 무한한 매력이 있다.  

나는 MBTI에 맹목적인 사람이 불편하다. 그걸로 상대방을 평가하기 때문이다. 이 유형은 자기와 맞고 저 유형이라서 안 맞고 싫어한다. 자기는 **라며 합리화한다. 개인적인 견해로 너무 편협한 생각이 아닌가 싶다. '이럴 거고 저럴 거야'라며 회피하기보다 사람 안에는 다양한 자아가 존재한다는 걸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봐주는 게 어려울까? 진심으로 터놓는 관계는 사막의 오아시스같이 찾기 어려운 걸까? 간혹 인간관계에서 회피하고 숨어버리는 식은 마음으로 돌아오는 대답을 들으면 기분이 상해버린다. 그저 진심이 묻어나고 느껴지기만 하면 될 텐데. 이 사람과의 깊이는 여기까지라고 치부하고 점차 거리를 두게 된다. 아직까지 이기적인 마음에 상처받는 게 두려워서 다가가다 멀어지다를 반복한다. 

나조차도 편협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동갑인 남사친과 대화를 하다가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사람은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지. 별거 아닌 말이 마음속 울림으로 남아 나의 브런치 소개글에도 적었다. 외적인 것이 아닌 어른스러운 생각과 말에 한눈에 빠져버린 순간이었다. (그래서 그 친구를 보기 위해 즉흥으로 뉴욕행 비행기 티켓을 끊은 적 있다. 그때 보지 못했던 타이밍이란) 


살아가면서 아무리 그 사람이 싫다고 해도 그의 다른 면을 보려고 노력할 때가 있다. 미워하던 사람이 의외의 모습을 보이면 굳어있던 마음도 갈대처럼 휘청인다. 단순한 나는 어렸을 때부터 별 관심이 없거나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내게 초콜릿 먹으라고 건네주거나 비온다고 우산 챙겨주면 그 사람을 좋게 보기 시작한다. 이렇고 저렇고가 우유부단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지겹고 시시한 거로 단정짓지 말고 내 안에 여러 가능성이 있으니 지금 이 순간 진심인, 있는 그대로 날 바라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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